나는 도대체 왜 PR이 좋은가
나는 도대체 왜 PR이 좋은가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1.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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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에 선 ‘PR인’ 김주호

“‘세상을 바꾸는 PR의 힘’을 추구합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PR을 향한 김주호의 시선은 이 한 줄의 문장에 함축된다. 언론홍보 중심의 국내 PR환경에서 27년간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숱한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김주호란 이름 석 자는 업(業)으로서 PR을 하는, 또 하고자 하는 국내 PR인들에게 굵은 선으로 남았다.

김주호는 이제 제일기획 마스터라는 오랜 적을 떼고 새로운 PR여정의 시작점에 섰다. “평생 할 일의 터전을 닦아놨기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PR을 하겠다”고 말한다. 이종혁 광운대 교수가 김주호가 걸어온 궤적을 함께 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귀를 기울였다.

김주호 제일기획 마스터
김주호 제일기획 마스터. 사진=성혜련 기자

김 마스터께선 PR을 직(職)이 아닌 업(業)으로 받아들이면서 에이전시에서만 한 우물을 판 국내 유일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십년간 인하우스(일반기업) 홍보인으로 살아온 분들은 많지만, 에이전시 한 곳에서 전문PR을 꾸준히 해온 분은 드문 것이 현실이니까요. 업으로서 PR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을 회고하신다면.

제 포지션이 약간 특별하기는 했던 것 같아요. PR만을 꾸준히 해왔지만 그룹 홍보실장 모임의 멤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PR회사 사장단에도 속하기 힘든.(웃음) 국내에 저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제 책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썼지만 저는 ‘PR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그 힘을 발휘하려고 애쓴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PR을 작게 보면 기사 잘 나가서 상품을 많이 파는 것이지만 요즘은 좋은 정책을 입안, 실행해서 국민들이 혜택을 보는 것으로 역할과 기능이 확장되지 않았습니까? 그 관점에서 저는 PR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라고 믿고, 지금도 그 생각을 갖고 업으로서 PR을 하고 있어요.

PR회사란 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광고회사에서 PR의 씨앗을 심어왔기에 국내 PR시장·산업의 도입기와 성숙기, 성장기를 두루 거쳤다고 해도 무방한데요. 국내 PR의 성장을 단계별로 나눠본다면? 또 20~30년 전과 비교해 PR의 위상은 어느 정도 높아졌나요?

 

국내 PR을 돌아봤을 때 개인적으로는 4가지 포인트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제가 제일기획에 입사해 PR업무를 하던 1987년이에요. 당시 국내엔 PR회사가 네 곳 정도 밖에 없었어요. 제일기획 PR팀도 지금의 PR회사와 똑같이 연간으로 대행 계약하고 서비스하던 시절이었죠. 2~3년 간 열심히 신문사나 방송국 다니면서 기사내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미국 PR회사 에델만과 제휴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홍보를 시작했어요. 삼성그룹 내에도 해외 홍보 담당자가 1명밖에 없던 때였기에, 조금 과장하자면(웃음) 에델만과 함께 삼성의 해외 홍보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90년대 후반 무렵엔 삼성의 스포츠마케팅에 본격 가담했어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PR과 연계해서 IMC 차원에서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까지 기존 스포츠마케팅 활동을 더 큰 IMC 플랫폼으로 확장해서 PR적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했고요.

이 4단계를 거치며 PR회사의 역할들도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엔 순수하게 퍼블리시티 즉, 언론관계 중심이었다면 점차 정부·정책PR 컨설팅이라던지 온라인PR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실제 정부PR이나 지자체 행사 등은 국내 PR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미국처럼 PR회사들이 정책입안이나 의회로비 등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진 못하는 실정이에요. 앞으론 중요한 국가행사나 정책, 선거 등에도 PR의 역할이 더 깊숙이 자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PR은 사랑을 하는 과정”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지금 광고회사들이 하는 업무를 보면 솔직히 광고라기보다 PR로 방향성이 틀어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광고회사 내 PR의 정체성도 모호해진 듯하고요. 현 시점에서 PR 자체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기 위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PR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종혁 교수(왼쪽)와 김주호 마스터. 사진=성혜련 기자

예전부터 광고회사들도 PR비즈니스를 조금씩은 다 했습니다. 다만 PR부문이 성장할 수 없었던 건 커미션(commission)제로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관련기사: 급변하는 광고산업 Fee시스템 도입 불가피) 지금은 웬만큼 큰 회사들은 피(fee) 구조가 정착됐습니다만, 과거 커미션 제도에선 아무리 PR비즈니스를 열심히 해도 광고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 수밖에요. 자연스레 광고회사 내 PR기능이 축소되거나 없어져서 외부 PR회사로 옮겨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클라이언트에게 혜택을 주면서도 PR이 우선되는 확장성 있는 이벤트를 제안했습니다. 주어진 영역 내에서도 찾고 고민하다 보면 PR적으로 접근하되 더 큰 효과를 내는 일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지금의 PR회사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혼재되면서 에이전시 간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PR회사가 가장 잘하는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영역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PR 고유의 언론관계라든지 위기관리 등이 해당되겠지요. 그런 고유의 역할을 바탕에 두고 다른 새로운 기능들을 묶고 확장시킨다면 PR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정체성을 갖춰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PR전문가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요즘은 PR을 하는 건지, 선전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PR이 혼란기에 놓여 있는 듯한데.

많은 PR학자들이 주장하듯 저 역시 PR을 정의하며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관계를 호의적으로, 가깝게 만드는 것은 ‘사랑을 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해요. 남녀가 만나서 결혼으로 골인하려면 서로 간 마음 상태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PR이 그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즘 불통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실제 일어나는 이슈들을 보면 서로 간에 입장이 균형적이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한쪽에선 이렇게 얘기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저렇게라고 받아들이니 도무지 수용이 안 되죠. PR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이런 관계의 불균형을 비슷하게라도 맞춰나가면서 소통의 문을 넓혀주는 게 아닐까요?

마스터님은 인하우스(기업홍보실) 입장에만 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에이전시 분야에서 서비스만을 대행한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중간자 입장으로 PR계에서 존재감을 다져왔습니다. 그런 만큼 보다 중립적·객관적 관점에서 인하우스와 에이전시 양쪽의 PR 현주소를 평가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양쪽 모두 엄청난 발전을 했어요. 우선 기업PR은 언론관계를 통한 단기적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전략적·장기적 접근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기업에 비해선 여전히 부족(미흡)한 것도 현실이에요. 위기관리만 해도 ‘A to Z’로 많은 훈련을 함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시기만 되면 원칙이 흔들려버리거든요. 몇몇 대기업 외엔 자원이나 시스템이 미비한 곳도 많고요. 기업들이 좀 더 쌍방주의, 균형적 관점, 공익주의를 견지하려는 노력들을 해야겠습니다.

에이전시 또한 성장을 거듭했어요. 1987년 4곳에 불과하던 PR회사 숫자가 지금은 소규모까지 포함해 300여개에 육박할 정도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지요. 질적인 면에서도 헬스케어나 정책홍보 등으로 전문성을 깊이 하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PR이 인더스트리(산업)로 나아가는 데는 부족한 모습입니다.

가령 광고계는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라는 큰 조직이 있고 광고물량으로 이익을 셰어하는 여러 단체들이 존재하면서 업계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합니다. 필요시 정부에 한목소리를 전달하고 학계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너지를 내고요.

반면, PR계는 분명 사이즈는 커졌음에도 이익단체로서 제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가 없어요. 개별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에 대한 숫자가 집계되지 않으니 전체 PR산업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거죠. (관련기사: 한국PR이 ‘산업’이 될 수 없는 이유)

PR회사의 피(fee)가 10년 전 수준과 같다고들 하는데 PR이 산업으로서 정착을 못하고 있으니 개선이 더 어려운 게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얘기일 수 있지만, 각사가 자기 이익을 조금씩 양보하고 한 발짝 물러나서 PR업계의 공동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의 실패 딛고 얻은 ‘평창의 꿈’

지금껏 활동하시면서 제일 기억에 남고, 또 김주호라는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먼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순간이 떠오르네요. 10년 가까이 공을 들이면서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야 비로소 성사됐으니까. 탈락과 유치의 희비가 엇갈리는 해외 현장에 모두 있었는데요, 남아공 더반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평창’을 발표하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관련기사: “평창은 승리를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

국가홍보의 영역에서 표를 유치하기 위해 유권자를 설득하고, 국제사회에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많은 분들이 고생했는데 좋은 결실을 맺어 보람이 컸습니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론칭 무대인 ‘삼성 언팩(SAMSUNG UNPACK)’ 행사도 기억에 남아요. (관련기사: 삼성전자 ‘언팩 티저’ 수수께끼를 풀어라) 삼성 언팩은 스마트폰을 사면 상자포장을 푸는 것을 형상화한 것인데, 클라이언트(삼성전자)와 네이밍에서부터 기획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5~6년 간 계속 협업해왔습니다.

애플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격전의 현장 속에서 온·오프라인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며, 어찌 보면 약간은 스릴도 느꼈던 것 같아요.(웃음) 지금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잘 되는 것을 보면 아주 미약한 부분이지만 함께 했다는 점에서 뿌듯하죠.

또 동서커피문학상, 아시안게임 삼성MVP 어워드 등 처음 아이디어를 내서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십수년이 흐른 지금에도 플랫폼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애착이 많이 갑니다.

김주호 마스터가 활동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00 시드니올림픽 삼성관 기자회견장에서, 2006 토리노올림픽 성화주자로 나선 김연아와 함께, 2011 더반 IOC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확정 후, 2012 EBS에 출연해 PR직업에 대해 소개.

업(業)으로서의 PR과 직(職)으로서의 PR은 굉장히 다르다고 봅니다. 서두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김 마스터께선 업으로서의 PR을 보고 27년간 달려오셨는데,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 PR인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저 역시 직으로 봐서 몇 번의 유혹이 있었습니다.(웃음) 만약 그때 자리를 옮겼더라면 PR전문가가 아닌 전혀 다른 길로 갔을 수도 있겠네요.

대학생들이나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신입들이 ‘도대체 왜 PR이 좋은가’라는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PR이라는 업이 갖는 본질에 접근했기에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상대적으로 기회의 폭이 컸던 제일기획이란 회사에 몸담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도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사이에서 균형적 관점을 유지하며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과정 속에서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에 따르기보다 일 중심으로 결과에 몰입하다 보니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요.

사실 어떤 직장생활을 하던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잖아요.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어느 한 분야에 묶이지 않고 다양하게 경험했다는 점에서 즐거웠습니다. 지금껏 제 손을 거친 제품 카테고리만 해도 1000여개 이상일 정도니까요.

업으로서 PR의 매력은 그런 것 같습니다. 논리를 갖고 펜 끝을 통해 설득하면 각계 사람들과 함께 오픈된 영역에서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점!

PR업무를 하다 보면 조직논리 혹은 자본논리에 의해 한쪽의 입장을 절대적으로 대변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실제 젊은 PR인 중에선 공익적 가치에 반(反)하는 일을 해야 하는 데 따른 내적갈등을 겪는 분들도 있고요. 마스터님은 일과 공익 사이에서 고민했던 적은 없으셨나요? 만약 있었다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 오셨는지.

사람이 사는 사회에 그런 경우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특정 클라이언트와 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클라이언트로부터 옳지 않은 요구를 받았는데 그대로 실행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 그럴 땐 상대방 관점에서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하는 게 좋습니다.

상사의 입장,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고려해 A안과 B안 양쪽을 충분히 다 설명한 뒤, 공익적 방향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물론 결과를 좌우할 순 없겠지만, 공익적 가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느냐는 PR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PR인의 윤리적 가치,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가 있습니다. 걸프전 때인데요.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 내 쿠웨이트 교민들은 PR회사 힐앤놀튼을 고용해 미국 내 참전 여론을 주도한 적이 있습니다.

15세의 쿠웨이트 소녀가 미국 의회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 시민을 상대로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리얼하게 증언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소녀는 쿠웨이트에 있지도 않은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로 밝혀졌어요. PR캠페인을 맡은 힐앤놀튼이 참전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거짓증인을 세운 겁니다. 이 일로 힐앤놀튼은 CEO가 물러나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러야만 했지요.

김주호 마스터가 운영하고 있는 개인 블로그(sugaso.com/20158754724) 메인 화면. 

“단언컨대 쓸 데 없는 경험은 없다”

늘 PR현장에 있으면서도 책으로 기록을 남기고,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학구적 도전을 병행해오셨습니다. 공부하는 PR전문가로서의 롤 모델을 제시해주셨는데, 자기브랜드를 쌓아나가고자 하는 실무자들에게 경험자로서 시간관리 등의 노하우를 귀띔한다면?

지식공유는 주로 강의나 책, 기고, 블로그 등을 통해 해왔습니다. 블로그는 지난 2005년 책을 내면서 가볍게 시작한 건데요. 현재 방문자 100만명을 넘어섰고, 올린 글만도 1300~1400개가량 됩니다. 블로그는 어느 순간 저에게 있어 굉장히 큰 자산이 됐습니다. 강의나 토론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기획서를 쓸 때에도 블로그가 정보의 보고(寶庫) 같은 역할을 해요.

제가 쓴 글은 대부분 얼추 기억하니까 필요한 경우 키워드 검색으로 활용하는 거죠. 지금까진 회사에 있다 보니 여러 여건 때문에 쓰지 못한 부분도 많았는데, 이제 좀 더 시간을 들여 확대·운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혹자는 조금 여유가 있으니 전국을 돌면서 PR 토크콘서트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얘기하기도 해요.(웃음)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론 강의에 있어서도 좀 더 편안하게 오픈해서 하려고 합니다.

시간관리 노하우를 물으셨는데 딴 게 없어요. 시간을 쪼개 쌓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 27년간 해외출장을 다닐 일이 많았는데, 미팅을 하러 가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순간순간을 짧게나마 기록으로 남겼어요. 거리의 옥외광고, 디스플레이 된 마네킹,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등 그 어떤 것에서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어요.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일상에서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구독블로그 글을 훑으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경험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라도 더 경험해야 자기 것으로 축적이 됩니다.

단언컨대 쓸 데 없는 경험은 없어요. 단, 그 경험을 경력으로 가져가는 과정은 쉽지 않기에 한 방향으로 모아 꿰려는 노력은 해야겠지요. 직을 좇기보다 업을 따라 가면서 크고 작은 다양한 경험을 자기 플랫폼 속으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업으로서 PR이란 측면에선 제일기획을 떠나는 지금이 새로운 도전이자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회가 될 텐데요. 10년, 20년을 내다보며 어떻게 이 업을 유지해나갈 것인지, 김 마스터님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요새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네요. 페이스북을 통해, 그리고 전화나 문자로 인사를 전했더니 대여섯 시간 만에 1000통 이상이 몰아쳐서 아직 답장도 다 못했어요.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참 고마웠어요. 그런데 반응을 보니 고참들은 별 걱정을 안 하는데 저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나 주니어들이 오히려 제 걱정을 해주더라는.(웃음)

앞으로? 심플해요. 지금껏 해왔던 일을 계속 할 거예요. 27년간 광고회사에 속한 PR인으로서 제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한 일종의 투쟁을 하며 PR 본질에 집중하려고 많은 생각을 해왔어요. 앞으로도 10년은 더 그러지 않을까요? 어떤 형태가 될 진 몰라도 PR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PR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정해진 패턴대로 머물러 있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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