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비하’ 포스터, 공감 없는 공익이 가져온 논란
‘외동비하’ 포스터, 공감 없는 공익이 가져온 논란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01.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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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취소 촌극 벌어져…“이슈대응 아쉽다”

[더피알=안선혜 기자] 외동아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성이나 인간적 발달이 느리고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다?

한국생산성본부 주최 포스터 공모전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작품이 금상을 수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해 5월 저출산을 주제로 GTQ(그래픽기술자격시험의 일종)포스터 공모전을 개최, 한 달 뒤인 6월에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작품을 금상에 선정했다. 이어 같은 해 8월 11일부터 사흘간 경복궁 제2 전시관에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수개월 전 일이지만 해당 포스터가 주부 및 육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최근 확산되면서 누리꾼들은 외동 비하 논란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

▲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지난해 5월 개최한 gtq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아래는 문제가 된 문구를 확대한 모습.

이 포스터는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메인카피와 함께 시들어버린 외떡잎 싹과 싱싱한 쌍떡잎 싹을 대조해 보여준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메인카피 아래에 적시된 문구다. ‘외동아에게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성이나 인간적 발달이 느리고 가정에서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이루어 보았으므로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습니다’라는 편견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이 기재돼 있던 것.

한 누리꾼은 “왜 이러는 걸까요? 정말. 일 너무 쉽게 하네요. 사람 마음에 상처 주는 캠페인은 오히려 독인 것을.”이라며 포스터에 담긴 메시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한국생산성본부는 8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해당 포스터의 시상 취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사과문에서 “공모전에서 수상한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작품이 ‘한 자녀’를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수상작 선정에 있어 정성이 부족하고 ‘한 자녀’ 가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전했다.

GTQ 포스터 공모전은 그래픽 기술역량이 뛰어난 청년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한국생산성본부가 기획한 것으로, 지난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그래픽 기술과 관련한 공모전이나 사회적 이슈를 매년 주제로 선정해 공익적 차원의 포스터 제작을 진행해왔다.

한국생산성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금상 수상 취소 문제는 수상 당사자와 현재 협의 중에 있다. 이 관계자는 “그래픽 자격증과 관련한 공모전이다 보니 심사위원들 역시 그래픽 활용 차원을 중점으로 심사했다. 때문에 메시지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며 “사회공헌 차원의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되어 굉장히 송구스럽다”고 전했다.

성급한 대책보단 과정에 대한 설명 필요

정부 유관기관에서 발표한 포스터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피임 포스터도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었고,(관련기사: “피임은 셀프” 눈길 끌면 무조건 OK?) 그에 앞서 지난해 2월 문제가 됐던 국민연금공단의 홍보 포스터는 폐지를 줍는 노인을 비하하는 듯한 시선에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관련기사: 국민연금 광고 공모작 논란, “문화적 특수성 ‘몰이해’에서 비롯”)

이와 관련 김병희 서원대 교수는 “보통 공모전을 진행할 때 해당 콘텐츠가 발생시킬 수 있는 부정적 이슈에 대한 검토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며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 포스터 같은 경우 어느 한 쪽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메시지 전달이 이뤄지다 보니 논란의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며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우선 표현해야 할 것과 표현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심사위원 선정에 있어서도 비주얼, 카피 등 여러 분야 전문가를 고루 포함해 다방면에서 재차 검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이슈 내지는 위기에 대처하는 기업 및 기관의 자세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11명의 수습사원을 채용 탈락시켰다가 언론보도 이후 전원 합격으로 정정한 위메프(관련기사: ‘갑질논란’ 위메프, 대응조치 빨랐지만 커뮤니케이션 핀트는 어긋나)나 공모전 수상작에 대한 시상 취소를 발표한 한국생산성본부나 문제가 발생한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이슈를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송동현 스트래티지샐러드 부사장은 “대형 이슈가 발생하면 유사 이슈들이 미디어를 통해 ‘발견’되는데, 빅이슈를 통해 공분을 사는 과정을 지켜본 기업 및 기관들이 과도하게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어떻게든 이슈를 빨리 잠재우고 싶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카드를 먼저 꺼내 들다보니 대중은 오히려 일을 대충 무마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병희 교수도 여론이 안 좋으니까 회피하고 다시 재선정하겠다는 건 웃기는 코미디로 비쳐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급히 내린 해결책이 핵심 이해관계 당사자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이뤄진 것도 문제다. 위메프의 경우에도 11명의 직원을 전원 채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상당수가 고사(固辭)한 상태로 알려졌고, 한국생산성본부의 경우 수상 당사자와 협의 중이라 밝혔으나 상금 반환 등 복잡한 문제가 얽힐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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