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래, 굳이 내까지 해야 하나요?”
“아름다운 노래, 굳이 내까지 해야 하나요?”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1.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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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쿨한 인디뮤지션 김태춘

[더피알=문용필 기자] 김태춘. TV에 나오는 가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얼핏 보면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 정태춘의 이름이 연상되는 그는 사실 국내에 몇 안 되는 컨트리(country) 뮤지션이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실력파 아티스트다.

그의 노래에는 두 가지 정서가 공존한다. 잔잔한 어쿠스틱 멜로디에 세상을 향한 날선 풍자와 독설, 때로는 욕설이 담긴 가사를 싣는다. 그러나 그의 ‘독설’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가끔씩 씩~ 웃는 미소가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는 서른다섯 살의 마산 출신 뮤지션은 솔직하고 ‘쿨’할 뿐이다. 인터뷰의 생생함을 살리고자 가능한 그의 사투리와 말투를 되도록 ‘원문 그대로’ 실었음을 덧붙여둔다.

▲ 인디뮤지션 김태춘/ 사진: 성혜련 기자

먼저 솔직히 고백한다. 그를 인터뷰하기 전 약간은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절망과 세상에 대한 날선 외침, 성(性)적인 표현과 욕설이 여과 없이 담겨있는 그의 노랫말이 적잖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해를 희망차게 여는 1월 아닌가. 과연 이 시점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맞는 건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한번쯤 만나서 들어보고 싶었다. 왜 세상을 그리도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는지, 자신의 노래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인디뮤지션 김태춘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우선 김태춘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그가 누구인지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한 김태춘은 부산지역에서 ‘일요일의 패배자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2012년 ‘블루스 더, Blue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면서 홍대 인디씬에 입성했다.

2013년에는 첫 독집앨범 ‘가축병원 블루스’를 발표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미니앨범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를 내놓았다. 첫 앨범이 2014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상 후보에 오를 만큼 동료 뮤지션들과 평단에서 인정받은, 실력 있는 뮤지션이다.

‘내 음악은 좋은데 왜 사람들은 안 좋아하노’

눈이 쏟아지던 어느 오후, 자신이 즐겨 찾는다는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춘의 첫 인상은 무덤덤함 그 자체였다. 다소 오버사이즈로 보이는 가죽재킷을 걸치고 앞가르마를 곱게 탄 그는 시종일관 억센 경상도 말투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의 말속에 가장 많이 섞여있는 단어는 ‘그냥’이었다. ‘쿨내 나는’ 그의 언변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먼저 본명인 김태훈 대신 김태춘이라는 활동명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혹시 선배 뮤지션 정태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다양한 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정태춘) 영향이죠. 다른 거는 뭐 그냥 ‘김태훈’이 좀 심심하니까...이름이라는 게 제가 선택한 건 아니잖아요. 여태까지 부모님이 주신 삶을 살았다면 그냥 이름을 좀 바꾸면서 인생을 내 맘대로 살겠다는 뜻도 있고. 복합적이죠.”

▲ 김태춘의 목표는 소박하다.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한다. (사진제공: 일렉트릭 뮤즈)
김태춘이 추구하는 음악은 컨트리다. 컨트리의 고향인 미국 뮤지션들과 견줘도 손색없을 만큼 제대로 된 컨트리 사운드와 창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아이돌이 장악한 국내 대중음악 시장임을 감안해도 ‘비주류 중의비주류’로 인식되는 장르. 왜 컨트리 음악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원래는 어릴 때부터 블루스를 좋아해서 ‘깔짝’거리고그랬는데, 그냥 우연히 이런 음악(컨트리)이 있다고외국인 친구가 가르쳐줬어요. 그때는 듣고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한 몇 년 지나서 다시 들어보니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음악을 좀 찾아듣다 보니까 멋있는 거 같아서 시작한 것 같아요.”

김태춘이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거창했다. 그는 “처음에는 로커가 돼서 이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짱이라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딱 알겠더라고요. ‘(내) 음악이 좋은데 왜 사람들은 안 좋아하노’라는 생각을 했는데, 계속하다보니 ‘내가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서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쉽게 포기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괜히 발버둥치지 말고 편하게 내 하고 싶은 거 하자는 마음가짐인 거죠.”

막 던지는 독설 “테레비 나올 거 아니니까”

앞서 이야기했듯 김태춘은 직설적인 표현과 사회를 향한 불만이 가득 담긴 가사를 잔잔한 어쿠스틱 사운드에 실어 노래하는 특이한 음악세계의 소유자다. 그의 가사에서는 ‘희망’의 코드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은 최근 평단(그는 별로 신경 안 쓴다는)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의 가사 일부.

오늘밤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15번 국도 위에 취한 루돌프와 함께
마주 오는 화물차에 깔려버렸으니
술 취한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같은 앨범에 수록된 ‘사슴 루돌프’라는 곡에서는 루돌프를 산타에게 착취당하는 시베리아 출신 노동자로 묘사했는가하면, 첫 독집앨범 ‘가축병원 블루스’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곡에선 ‘죽도록 매 맞으며 일만 하던 검은 소는 커다란 혹이 생겨 두 눈동자가 돌아가고 한평생 닭장에서 뺏기기 만한 병든 닭은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미쳐간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대한민국은 자유국가 민주국가 평등국가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맘대로 웃고 행동하며 소리칠 수도 없는걸’이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 제목이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참고로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노랫말을 읽어보려면 일부 곡은 ‘성인인증’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알아두시길.

▲ 김태춘이 발표한 두 장의 앨범.(사진제공:일렉트릭 뮤즈)

김태춘은 왜 이런 ‘과격한’(?) 노래를 만들었을까. 그는 단지 “말 그대로 불만이 생기니까 그런 것”이라며 “제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보면 된다”고 얘기했다. 답변에 쿨내가 점점 짙어진다. 어쩌면 ‘우문현답’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바꿔봤다. 자신의 음악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김태춘의 대답은 이러했다.

“제가 이럴 입장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사람들이 약간 불쌍해 보여요. 저를 포함해서요. 뭔가 건방진 이야긴데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뭔가 위로를 주고 싶어요.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 불쌍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해요. 물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이 엿 같은 것을 별로 직시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이를) 직시하자는 거죠.”

이런 생각들은 그의 노랫말에 직설적인 단어로 투영된다. 김태춘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스타일을 안 좋아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이라며 “돌려 말하는 것을 잘 못하는 성품에서도 나오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냥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데 왜 아름다운 노래를 해야 하나요.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는 다른 사람이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굳이 내까지 똑같은 말들을 뱉으면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에는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들도 여과 없이 사용된다. 때로는 특정종교에 대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도 녹아난다. 이에 대해 김태춘은 “전반적으로 모든 종교에 대해 약간 반감이 있다”고 했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마음에 전가시키는 것 같다는 게 그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런 만큼 그의 노래를 모든 이들이 달가워할 리는 없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은 생각해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안한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어차피 제가 뭐 테레비 나와서 대중음악 할 게 아니잖아요. 인디음악은 인디답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멋있잖아요. 굳이 다른 사람들 신경 쓰면서 하라면 그냥 대중적으로 더 어필하도록 노력해야죠. 저는 그런 사람이 안 되고 싶으니까 일단 내 자신에게 충실한 거죠."

그러나 그가 TV에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도 출연했고 KBS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에도 나왔다. 그것도 무려 이효리와의 동반출연이었다.

지난해 발표된 이효리의 5집앨범 ‘모노크롬’에는 김태춘의 곡 ‘사랑의 부도수표’와 ‘묻지않을게요’가 수록돼 있다. 음악적 성향이 사뭇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의 조우는 어떻게 성사됐을까. 김태춘은 별것 없다는 듯 말했다.

“(이효리 씨와) 그렇게 깊은 인연은 없고요. 트위터에서 저에 대한 멘션이 있었는데 (이효리 씨가 제 노래가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연락했다더라고요. 그게 답니다. 자기 앨범 콘셉트와 비슷할 것 같다 해서.”

답변이 시시한 것 같아 “왜 이효리가 곡을 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은 안했느냐”고 물었다. 김태춘은 “그런 생각도 처음에는 했다. 뭔가 좀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더라”며 “그냥 데모(테이프) 보냈을 때 이대로 좋다고 해서 그렇게 피곤한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아아, 이효리의 ‘러브콜’ 앞에서도 피곤함을 논하는 진정한 쿨가이다.

“김태춘은? 그냥 쫌 멋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음악적 인정을 받은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김태춘은 여전히 고단한 ‘인디 라이프’를 이어가고 있다. 음악 자체보다는 기타레슨이 주 수입원이라고 한다. 그는 돈을 벌어야 ‘직업’이라며 음악은 ‘반취미’라고 규정했다. 뮤지션으로서의 목표도 소박했다.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목표”란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그는 ‘의외로’ 역사 선생님을 꿈꿨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했다. 이유가 재미있다. “(대학) 졸업하고 청소년센터 같은데서 일했는데 (내가) 청소년을 안 좋아하는 구나, 애들을 가르치고 같이 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안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김태춘은 지난해 <부산일보>에 세 편의 칼럼을 게재했다.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릴레이 칼럼에 동참한 것. “글을 막 써재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여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어준다니까 그냥 한 번 해본다고 했죠. 한 1년하고 싶었는데 석 달마다 (필자가)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이 있느냐”고 하니, “글은 잘 안 써지더라”며 “(신문칼럼은) 마감시간이 있으니 의지를 발휘해서 쓰니까 써지더라.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자발적으로는 잘 안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슬슬 인터뷰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김태춘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세 번째는 정규앨범을 제대로 내고 싶어요. 아직 계획은 없어요. 곡도 조금 모자라서 더 써야 할 것 같고요. 다른 (장르의) 음악도 조금씩 해보고 싶지만 음악내용 정체성은 계속 유지할거에요. 하고 싶은 이야기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직업을 구해야겠죠.”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김태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사람이냐”고. 그의 답변은 끝까지 쿨했다.

“그냥 음악 잘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아웃사이더. 어딜 가나 항상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죠. 잘 못 섞이고 그러네요. 사회성 부족과 소시오패스?(웃음) 그냥 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솔직한 매력의 김태춘이 펼칠 ‘지속가능한’ 음악적 행보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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