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멸망을 위한 ‘부하들’ 나가신다!
지구멸망을 위한 ‘부하들’ 나가신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1.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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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두둥프로젝트> 가동 중인 이지은 작가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의 이종혁 교수(연구원 장종원)와 함께 진행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귀여운 장난감인가 싶었는데 인류 멸종과 지구의 멸망을 위한 ‘부하들’이란다. 그러고 보니 비주얼도 상당히 괴기스럽다. 반인반수는 기본에, 각종 무기를 장착하고 무릎에서 ‘독심술’을 발휘하는 벌레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독특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작품세계를 수년 째 구축하며 부하들을 양성 중인 이지은 작가. 얼마 전부턴 이같은 취지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함께 <두둥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새해 벽두부터 별안간 지구멸망을 논하게 될 줄이야!

▲ 이지은 작가가 부하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칼바람이 불어대던 몹시 추운 날, 서울 남산 밑 해방촌에 자리한 이지은 작가의 ‘피자팜스 본부’를 찾았다. 공간에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이 주는 아늑함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 따뜻함이 모두 지구멸망을 위한 것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지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구 멸망의 스위치가 우리 사는 곳곳에 있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봐요. 그래서 그 스위치를 찾아 지구를 없애는 목표를 이루고자 부하들을 만들고 있어요.” 단아한 외모와 조곤조곤한 말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센’ 발언이다. 

이 작가는 장난감을 잘라서 분해해 전혀 다른 제3의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보통 쓰지 않는 장난감을 기부 받거나 방치된 것이 그 대상. 머리, 팔, 다리 등을 따로 떼어 새롭게 조합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장난감이 탄생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부하들을 만드는 것이다.

부하라고 말하지만 수직적이기 보단 수평적 관계다. 각각의 이름과 캐릭터도 살아 있다. 이 황당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봐야 할까.

▲ 이지은 작가.
일단 가장 궁금한 점 하나. 도대체 왜 지구를 없애고 싶은 거예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어요. 혹자는 너무 부정적이다 또는 염세적이라고 하는데, 저 개인적으론 인간이 지구를 지나치게 오래 지배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구를 없애고 싶은 거죠. 테러나 전쟁, 자연재해와 같은 특정 이벤트 없이 어느 순간 한 번에 팡 하고 없어져버렸으면 해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세상을 없애겠다는 작가의 엉뚱 과격한(?) 생각이 자기 영역에서 여러 이슈에 대응하면서 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라고도 해석되는데요.
지구를 없애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예술을 통해 그 생각만이라도 퍼뜨리는 거죠. 아시다시피 지금 지구상에 나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인간이 다른 종을 해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각종 환경 문제도 그렇고. 어떨 땐 세상이 정말 미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저의 작품 활동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문제 자체에 대해 인식을 나누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봐요. 부하들이지만 철저히 수평적 관계인 것도 갑을관계와 같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나름의 반발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네요.

무거운 주제를 장난감이라는 가벼운 소재로 표현한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장난감을 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것이라 심리적 거리감이 없으니까요. 귀여운 장난감이네 하고 쉽게 다가섰다가 그 속에 있는 무거운, 때론 무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거죠. 그 점을 노린 거예요. 사실 아무리 예쁘다 하는 장난감도 제 눈에는 대부분 못생겼어요. 그래서 못생긴 그것(장난감)들을 분해해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담는 새로운 부하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가 ‘총애’하는 부하 두 명을 소개한다.

▲ ‘닭대가리 남자와 조종하는 요다’(왼쪽) ‘자라나는 인간’. 사진제공: 이지은 작가
첫 번째 ‘닭대가리 남자와 조종하는 요다’. 이름대로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닭이다. 등 뒤로는 요다(영화 스타워즈의 외계인 캐릭터)를 매일 엎고 다닌다. 닭대가리 남자는 요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의 목이 잘려 날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요다가 지시하는 모든 일을 하고, 요다는 산에 올라가고 싶지만 걸을 수가 없어 닭대가리 남자가 요다를 업고 매일 등산을 한다. 단, 닭대가리 남자는 요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두 번째 ‘자라나는 인간’. 제2부대의 우두머리로, 선인장의 머리와 거북이의 발을 가졌다. 스스로 수행하면서 매일 조금씩 자란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엉뚱하면서도 기이한 스토리다. 하지만 이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 속 무수한 존재, 관계들이 부하들의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활동의 폭을 넓혀 최근엔 두둥프로젝트도 시작했다고요. 설명 좀 해주세요.
부하 만드는 기존 작업을 발전시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예요. 각자 자신의 부하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으로, 4~6명씩 소규모 워크숍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명도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나거나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의 ‘두둥’을 딴 것입니다.

부하들 역할이 지구를 멸망시키는 건데 실제 그 취지에 공감해 선뜻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니면 단순히 재미있어서 하는 건지?
두 부류 다 있어요. 처음엔 장난감 만드는 게 귀엽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여했다가 부하들이나 두둥프로젝트 취지를 듣고 공감하곤 해요. 물론 지구가 없어졌으면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다만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시는 듯해요.

어떤 분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나요?
디자인, 미술 쪽 분들이 많지만 일반 직장인들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작품 속에 자기를 투영시켜 아바타(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처럼 삼기도 하고요. 한 예로 ‘보송이’라는 부하를 만든 분이 있는데 언뜻 보면 귀엽지만 사실 헝클어진 폭탄머리에 왼손엔 칼, 오른손엔 성냥을 들고 있어요. 누군가 위협하면 자기머리에 성냥을 붙여 다 터뜨려버리겠다는 거지요. 해석은 각자 몫이지만 저는 스트레스를 떠안고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1. 교환의 날: 매년 3월 25일은 교환의 날로, 올해는 서로의 다리를 교환했다.
2. 녹색머리 소년: 4개의 눈과 2개의 집게손이 달린 말랑말랑한 녹색 머리를 가졌다. 치즈와 토마토를 함께 먹는 것을 좋아 한다.
3. 요리하는 좀비: 미식가인 요리하는 좀비는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4. 오리를 입는 남자: 항상 하는 말은 ‘그저 사소한 취향 차이일 뿐입니다’.
5. 두통의 원인: 미간이 찌르르하고 아파오기 시작한다면 피부를 뚫고 나오기 전에 재빨리 끄집어 낼 필요가 있다. /사진 설명 및 제공=이지은 작가

이 작가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단순히 캔버스에 예쁜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것만으론 재미가 없었기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 활동을 생각했다. 시작은 ‘싸나운 개’라고 할 수 있다.

“동네에 있는 싸나운 개(‘사나운’이 아닌 ‘싸나운’이라는 점을 강조)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겐 호감을 보이지만 자기를 해코지하거나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겐 정말 무섭도록 싸납게 반응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직설적으로 살고 싶어서 학부 시절 싸나운 개라는 작품을 계속해서 그렸어요. 이지은이라는 사람을 표현한 캐릭터그림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을 찾자는 마음으로 졸업 직후 부하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요.”

돈을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생활인으로서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현재 이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는 별도의 일을 하며 부하만들기나 두둥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지구멸망이라는 엄청난 속내가 깔려 있긴 해도 일상의 작은 소재인 장난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는 점에선 예술의 문턱을 낮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 자체가 싫기도 했습니다. 자기네(예술가)들끼리 논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 부하들은 (대중적) 상품과 (예술적) 작품의 중간단계에 있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앞으로 부하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건가요?
당연히 지구 멸망의 목표를 담은 오브제로서 활동하겠죠?

큰 범주 말고 각각의 장난감(부하들)이 상징하는 바를 발전시켜본다면.
큰 작품의 가지를 좀 더 친다면, 한국의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어요. 지금보다는 일반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에서. 물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가급적 새로운 실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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