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두 글자가 주는 깊은 울림
가족, 두 글자가 주는 깊은 울림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1.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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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덮은 가족코드, PR·마케팅에 스며들다
▲ (사진:뉴시스, 삼성카드·삼성생명·기아자동차·sk텔레콤 광고영상)

[더피알=문용필 기자] 핵가족 시대라고들 했다. 삼대가 모여 사는 광경이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작은 가족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미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1인가구는 늘어나고 가족이 떨어져 사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삼포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원룸과 고시원의 좁은 방을 보금자리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싱글맘, 싱글대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침체의 삭풍은 여전하다. 이럴 때 ‘최후의 보루’로 떠오르는 것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가족끼리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던 그리운 기억이다. 그리고 따뜻한 가족애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은 개개인의 감정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과 PR·마케팅 코드로도 자리 잡고 있다.

가족 소재 감성코드 바람이 부는 이유는?

‘커리어우먼’ 엄마는 오늘도 출근길에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바쁜 통화를 이어가며 회사를 향하려던 찰나 문득 뒤를 돌아본 엄마. 그제야 딸이 매일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딸이 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는지 알게 된 엄마의 가슴이 짠하다. 엄마는 딸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약속한다. “다시는 널 미루지 않을게.”

▲ 지난 2012년 열린 ‘5대가족한마당’ 행사. 그러나 이같은 대가족은 이제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뉴시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다. 샐러리맨의 바쁜 일상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단편적으로 그린 이 에피소드는 수많은 워킹맘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결국 ‘가족이 먼저’라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최근 광고·마케팅과 대중문화계 전면에 가족을 소재로 한 감성코드 바람이 불고 있다. 장기화된 불황으로 소시민들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는 상황에서 ‘가족의 따뜻함’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아무래도 세상이 각박하고 무서운 일도 많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황량한 느낌인데, 이때 최후에 기댈 수 있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품이 가족”이라며 “그래서 가족코드를 내세운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세현 세종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제가 불안해질수록 인간에게는 회귀본능이 발생한다. 불안해질수록 자기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마련”이라며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가족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김일철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사람들에게) 가장 소속감을 주는 곳이 어디겠나. 기업은 취업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소속감을 끝까지 보전해줄 수 있는 곳은 가족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실종실종자 수색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가족에게 느끼는 소중함이 더욱 짙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실종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타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기업이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튀는’ 마케팅 대신 가족코드를 도입한 것 아니냐는 전문가 시각도 있다. 정봉기 휴머니티스 마케팅 리서치 대표는 “경기침체와 최근의 사회 분위기 및 국민의식도 기업 입장에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세월호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데 현란하고 요란한 것을 하다간 자칫 국민적 공분을 살 우려가 있다”고 바라봤다.

가족애 갈망은 ‘하이퍼 리얼리티’의 결과물

최근 1인가구의 급증도 ‘가족애 코드’를 확산시키는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다. 단지 결혼을 못하거나 직장, 학교 때문에 혼자 사는 젊은이들만이 1인가구는 아니다. 독거노인이나 기러기 아빠, 혹은 이혼자들도 엄연한 1인 가구다. 이들이야말로 가족의 따뜻함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국민대통합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가 ‘1인 가구 현황과 대응방안’과 관련,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미디어다음과 국민신문고를 통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로 생활시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해 가장 많은 응답자(36%)가 ‘심리적 불안감과 외로움’을 꼽았다. 60대 이상의 경우, ‘아플 때 간호해 줄 사람이 없다’(30%)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하더라도 가족애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 각자의 바쁜 생활로 인해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해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주일에 몇 번 정도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지 묻는 질문에 42.9%가 ‘1~2번 정도’라고 했다. ‘1번도 힘들다’는 응답자도 23.1%에 달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일주일에 3~4번 정도 가족과 저녁식사를 한다는 의견이 29.7%였다.

가족까리 ‘사랑한다’ 또는 ‘고맙다’는 표현을 얼마나 자자주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응답자(남성 40.4%, 여성 39.4%)가 ‘하루에 1번도 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 최근 1인가구의 급증도 ‘가족사랑 코드’를 확산시키는 하나의 요소다.
가족코드의 확산을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개념에 비추어 보는 견해도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자기 정체성의 우선 요소를 가족으로 꼽는 가족주의 사회”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유교적 문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경제발전을 했음에도 복지국가체제가 성립되지 못해 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가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며 “1990년대 후반에는 IMF 사태 이후 ‘평생고용’이 깨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구조조정이 계속 이뤄지고 경제위기는 반복됐다. 살기 점점 어려워지니까 사람들은 결국 경제적 생존의 기반을 가족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 들어 가족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를 분석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문제는 사람들이 가족에게 의존하는 객관적 상황은 계속되지만 가족이 실질적으로 구성원들의 삶을 보장해주진 못하게 됐다”며 “가족에 대한 의존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가족이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가족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가족에게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데 가족은 과거에 비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가족을 소구로 한 감성마케팅이 더욱 호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가족이 만약 탄탄한 힘을 갖고 있다면 실제 현실이기 때문에 별로 호소력이 없다”면서 “가족이 굉장히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TV에 나오는) 저런 가족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 교수는 “사람들이 일시적·가상적으로 가족에 대해 정서적인 친밀감의 욕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실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족코드를 통해) 하이퍼 리얼리티(Hyper Reality·초현실성)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만 만족한다. 리얼리티와 하이퍼 리얼리티는 철저하게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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