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댓글의 두 얼굴
야누스, 댓글의 두 얼굴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5.02.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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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문화 진단 上] 여론형성 도구 or 마녀사냥 무기

[더피알=박형재] ‘음담패설 댓글 범인 잡고보니 초등생’, ‘가수 타블로 학력위조 주장한 타진요 회원 8명 유죄’, ‘국물녀 몰린 중년여성 CCTV 덕분에 누명 벗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와 그 결과들이다. 댓글 한 줄에서 시작된 논란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돼 피해자를 만들었으며, 대부분 네티즌들은 익명성에 숨어 처벌받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댓글의 영향력이 커지고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면서 댓글문화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기사 대신 댓글보러 간다”

#. 직장인 A씨(32)는 출근길에 항상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그는 습관적으로 포털사이트의 ‘댓글 많은 뉴스’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그에겐 댓글 양이 중요한 뉴스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사 제목만 본 뒤 댓글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댓글 내용을 보고 기사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적도 많다.

#. PR회사에 다니는 B씨(34)는 댓글관리가 주 업무다. 기업블로그 등에 부정적인 댓글이 올라오면 작성자에게 삭제를 요청하고, 내려줄 마음이 없으면 외식쿠폰 등을 제공해 회유(?)작업을 펼친다. 회유에 실패하면 기업에 긍정적인 댓글을 올려 비판 댓글을 밀어낸다. 자칫 부정적인 댓글이 베스트댓글로 선정되면 업무가 늘어난다. 호의적인 댓글을 달고 수십개의 아이디를 동원해 일사분란하게 추천을 박아 베스트댓글로 만드는 ‘베댓작업’을 진행한다.

인터넷 댓글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네티즌 의견은 단순 참고자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기업 의사결정 등에 앞서 여론을 파악하는 필수 확인사항이 됐다. 댓글이 사람들의 판단에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면서 ‘댓글달기 경쟁’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업 홍보팀에게 댓글관리는 필수 업무다. 기업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기면 추첨을 통해 제품을 주는 이벤트를 제공하거나, 마케팅 성공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 단계를 진행할지 결정할 때 유용한 자료로 활용한다.

지속적인 댓글 모니터링은 기업 위기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오너나 그룹 관련 이슈에 대해 사전에 관리하고, 위기시에도 인터넷 댓글 동향을 점검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댓글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댓글 조작’도 생겨났다. 일부 기업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상품 후기를 좋은 쪽으로 꾸며 올리고, 불리한 기사에는 ‘물타기’용 댓글로 소비자들을 교란시킨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댓글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 크다. 직접 만져 보고 구매할 수 없는 특성상 다른 이들의 경험이 구매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성형외과는 성형후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정치판에서도 어느 정도의 댓글조작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거철이면 댓글로 인한 후보자들의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대선에선 ‘국가정보원 댓글녀’와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등 댓글을 통한 여론몰이 시도가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실제 국정원 심리전단이 지난 대선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일반 네티즌을 가장해 여론몰이에 앞장섰다는 법원의 최근 판결에 따라 정치권은 또다시 댓글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댓글의 영향력, 순기능·역기능 혼재

댓글은 1차적인 글이 아니다. 원 텍스트에 대한 의견을 다는 2차 텍스트로써 의미를 갖는다. 짧으면 한두 글자나 한글모음(ㅇㅇ, ㄴ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댓글에 댓글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댓글 하면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 뉴스에 달리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싸이월드 시절부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원래 글 밑에 달리는 글은 모두 댓글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나 ‘일간베스트’의 게시물에도 댓글이 달린다. 140자 이내로 글을 작성하는 트위터의 경우 원 글과 댓글이 섞여있는 형태다.

댓글문화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혼재한다.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고 기사의 허점을 지적해주는 등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대중의 생각을 전달하는 점은 댓글의 순기능.

반면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맹목적인 비난으로 변질되고, 익명성에 숨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역기능으로 꼽힌다. 여론형성 도구 혹은 마녀사냥 무기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댓글은 네티즌들의 토론과 지식 공유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댓글저널리즘’이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뉴스 기사 등 원문을 읽고 나서 독자가 다양한 의견을 댓글로 작성하고, 그것이 다른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때론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을 네티즌 스스로 발굴해 이슈화하고 언론사들이 이를 역으로 다루기도 한다.

이와 관련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독자의 기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기사만 읽은 독자들에 비해 댓글을 함께 읽은 집단은 댓글에 기반해 여론을 유추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실제 네티즌들은 기사의 이슈에 관심이 많을수록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댓글을 접했을 경우 미디어가 왜곡돼 있다는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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