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이 속 작은 상상의 세상
똑딱이 속 작은 상상의 세상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2.13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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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사진가 안태영

한 장소를 150번 넘게 찾았다. 어제의 그곳과 오늘의 그곳, 어제의 사람들과 오늘의 사람들, 어제의 빛과 오늘의 빛은 다르다. 네모난 프레임 속 세상은 그에게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터다. 가능한한 모든 격식과 허세, 야트막한 지식조차 모두 내려놓고 조그마한 똑딱이를 손에 들고 싶다. 사진가 안태영의 하루가 시작된다.

▲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똑딱이를 든 사진가 안태영. / 사진촬영: 성혜련 기자

[더피알=강미혜 기자] 꽤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똑딱이’(작은 콤팩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안태영 씨를 찍으러. 정확히 얘기하면 만나서 찍고 듣기 위해서다.

‘똑딱이 사진가’로 알려진 그에게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한 공간이다. 사진에 꽂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국립중앙박물관을 찍은 한 컷을 우연히 마주하면서였다. 이후 8년간 카메라 속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레 사진을 업(業)으로 삼게 됐다.

뭐든 화려한 게 환영받는 시대다. 가급적 넓은 집, 큰 차가 선호되고 뒷산에 오르면서도 히말라야 등반에 어울릴법한 등산복과 용품을 갖춘다. 전 국민이 사진작가가 되면서부터는 집집마다 DSLR(렌즈 교환식 고급 카메라) 한 대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진가라면서 구태여 아마추어나 쓰는 똑딱이를 고집한다.

“처음엔 저도 DSLR을 썼었는데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주변에서 의식하는 게 싫었어요. 아무리 멋져도 부자연스러운 배경이 담긴 사진은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카메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 사진가 안태영. /사진촬영: 성혜련 기자
단순한 생각에서 똑딱이 카메라를 손에 들기 시작했는데 웬걸. 그가 원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는 똑딱이만한 게 없었다.

“스마트폰처럼 만지작거리다 이거다 하는 순간에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DSLR 카메라는 이만~한 렌즈를 끼우고 들어 올려서 찍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정적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극적 상황을 담기엔 저로선 똑딱이가 훨씬 편해요.”

겉치레를 중시하는 우리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도 똑딱이 사진가로서 활동하게 된 중요한 이유다. “사진가인데 똑딱이를 쓴다 하면 대부분 의외라고 해요. 내용보다 외형, 자기 스타일보다 남들 시선을 더 신경 쓰는 일종의 고정관념인 거죠. 우리사회는 이상하게 사진은 잘 못 찍어도 카메라는 좋아야 한다는 심리가 있어요. 세상을 잘 찍어야 작품이 되지 좋은 카메라로 찍었다고 해서 다 작품이 되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뽀대’ 안 나는 카메라라서 좋다

실제 초창기엔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 찍는 그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까운 공원에 나가 꽃을 찍던 중 DSLR 무리에게 ‘아저씨, 거기 좀 나와 주세요. 똑딱이로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란 소리까지 들었다. 속된 말로 ‘뽀대(폼)’ 안 나는 장비를 들고 ‘설친 죄’였다. 똑딱이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불쾌한 이 일화는 그의 책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에 실렸을 정도로 사진철학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랑한다’는 글을 쓰는데 백만원짜리 펜으로 쓰든 몽당연필로 쓰든 무슨 차이가 있어요? 쓰는 사람의 마음과 메시지가 중요하지… 마찬가지예요.좋은 사진은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든 상관없어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만 가득 차 있으면 어둡거나 밝거나 노이즈가 많거나 해도 전혀 문제되질 않아요.”

다만 좋은 사진을 위한 인내심은 필요하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측해서 원하는 순간을 준비한다. 미리 작은 상상을 한 뒤 구도를 잡아놓고 노출을 맞춰 무작정 기다린다. 눈은 카메라 시선이 머무는 쪽을 향하고 손가락은 셔터 버튼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찰칵’이다.

▲ <애인구함> 안태영 作

“현재까진 그날그날의 일상을 기록하는 정도예요. 사진가라면 주제를 갖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주제잡기는 너무 어렵고 큰 숙제이기에 쉽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진 한 장 한 장은 힘이 없지만 오랜 시간 묶어서 본다면 그 나름대로 자기감정들의 기록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곳곳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줄 수도 있고요.”

일상기록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일상기록자로서 안태영은 블로그(blog.naver.com/ 73052611)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 ‘a day(하루)’라는 시리즈로 블로그에 게시되는 작품들이 대부분 일상 이야기다. 사진 아래로 심플한 제목과 몇 줄의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

예컨대 구름 낀 하늘 아래 흑백의 도시를 찍은 사진엔 ‘gloomy korea(우울한 대한민국)’이란 제목을 달았다. 이어 ‘정부의 연말정산 계획안 발표~ / 서민들은 죽을 때까지 대기업 배만 불리다 사라질 나라 / 향후 대한민국은 가장 악독한 기업의 소유가 될 것이다’ 날선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 <gloomy korea> 안태영 作

“사진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면 제 생각이나 감정을 강요해버리는 것과 같으니 가급적 간단하게!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저와 다르게 느끼는 분들은 댓글로 의견을 남기기도 하세요. 제가 찍은 사진이라도 제 시선이 항상 맞는 건 아니니까 다른 분들로부터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 ‘gloomy korea’ 사진 아래엔 20~30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사람이 살면서 무언가에 미칠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잖아요. 제 경우 첫 번째는 개인 사업이었고, 두 번째는 똑딱이 사진인데 마지막 세 번째가 뭐가 나올 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사진이 아니면 어떡해요?”

엉뚱한 소년 같은 그의 고민에 멘토인 강영호 작가는 “사진작가로 미치면 되지 뭔 걱정이냐”는 현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스스로를 사진을 좋아해서 찍는 ‘사진가’이지 예술을 하는 ‘사진작가’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 줄곧 사진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다)

2015년은 사진가 안태영이 사진작가로서 첫 발을 떼게 될까? 올해는 똑딱이 피사체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 다양한 사람과 동행해 보려 한다는 그는 두 권의 책 출간과 두 번의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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