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금연정책, 커뮤니케이션이 아쉽다
오락가락 금연정책, 커뮤니케이션이 아쉽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5.02.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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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보다 정부정책에 불만…이슈대응 실패가 위기 불러

[더피알=박형재 기자] 연초부터 담뱃값 인상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증진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우회증세·서민증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저가담배’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저소득층 흡연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올린지 채 두달도 안된 상태에서 저가담배 판매를 추진하려고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담뱃갑에 흡연 경고그림을 삽입하는 문제는 번번이 좌절되는 형국이다. ▷관련기사: ‘저가담배’ 도입 논란…“국민건강 위해 담뱃값 올린다더니”

당장 담뱃값이 크게 오른 흡연자들의 저항은 물론 사회적 혼란이 예상보다 심각해 보인다. SNS상에서는 “정부가 흡연자를 범죄자로 몰고 있다”거나 “더럽고 치사해서 금연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각종 루머와 의혹을 정부가 빠르게 진화하지 못하고 어설픈 대응이 맞물려 이슈·위기관리에 실패한 모습이다. 새해부터 벌어지는 ‘담배전쟁’과 정부 금연정책 및 캠페인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 (자료사진) ⓒ 뉴시스

“10년 전에 담뱃값이 올랐을 때도 짜증나긴 했지만 지금은 진짜 화가 나서 욕이 나온다. 가격이 올라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랐고, 무엇보다 서민 호주머니 털려는 의도가 빤한데 국민 건강을 핑계 대는 게 제일 불만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금연을 시작했다”는 직장인 구정모(34)씨의 말이다. 담뱃값이 500원 인상됐던 2006년과 2000원 오른 2015년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반응이다.

새해부터 벌어지는 ‘담배 전쟁’은 가격이 올라서 생기는 ‘가격 저항’에서 한발 더 나가 있다. 금연클리닉 방문자 3배 증가, 인터넷쇼핑몰 전자담배 판매량 10배 급증에는 가격 인상 이상의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당성 없는 담뱃값 인상’에 대한 불만이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쏟아지는 관련 불만들은 꼼수 증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보다 “세금 내기 싫어서”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에 화가 나서” 담배를 끊는다는 내용이 더 많다. 금연이 조세저항 성격을 띠는 모양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담배를 샀는데 국가에서 흡연자를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반응도 눈에 띈다. 흡연권도 혐연권과 같이 기본권으로 인정되는데 정부의 일방적 금연정책은 ‘흡연자 때리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직장인 이경수(33)씨는 “담뱃값이 오르고 음식점, 카페도 모두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불만이 많다”며 “정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흡연자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세금을 수조원씩 걷었으면 흡연부스나 흡연구역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에 마련된 실외 흡연 부스는 10개에 불과하다.

담배소비자협회에는 담뱃값 인상이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물가상승률과 실질소득상승률 등을 고려해 올해 담뱃값을 산출하면 3000~3500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담뱃값 인상은 후딱, 경고그림 도입은 뭉기적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이었던 시절 노무현 정부의 담뱃값 500원 인상에 반대하면서 했던 발언도 SNS 상에서 인기 리트윗 대상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담배는 서민이 이용하는 것 아닌가?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흡연자들의 화를 돋워 금연을 결심하게 했으니 어쨌든 담뱃값 인상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야 할까. 웃고 넘기기엔 씁쓸한 상황이다.담뱃값을 10년 만에 사상 최대 폭으로 올렸으니 후유증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일시적 혼란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심상찮다. 특히 정부의 금연정책이 부실투성이로 드러나면서 담뱃값 인상의 진짜 의도는 증세에 있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세종시 보건소 금연클리닉에서 일산화탄소를 측정하고 있다. ⓒ 뉴시스

정부의 담뱃값 인상 명분은 흡연율 낮추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성인남성 흡연율은 42.5%다. 10년 전인 2003년 49.4%에 비하면 낮아졌으나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2020년까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인 29%로 낮춘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금연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진 담배갑 흡연 경고그림 표시와 편의점 내 담배광고 금지는 이번 금연정책에서 제외됐다. ▷관련기사: 담뱃갑 경고그림을 둘러싼 동상이몽

국민 건강을 걱정했다면 담뱃값 인상보다 손쉽고 효과적인 경고그림부터 의무화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흡연자들은 담뱃값 인상은 서두르면서도 비(非)가격 정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세수 증대가 본 목적이란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담뱃값이 4500원일 때 세수가 최대치가 된다는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현 정부가 금연에는 관심이 없고 세금만 노린다는 흡연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담뱃값이 5000원 이상이면 흡연율이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가장 많은 담뱃세를 거둘 수 있는 4500원만 올려 결국 정부의 목적이 빤히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담뱃값이 오른 뒤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늘자 정부가 뜬금없이(?)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심각하다는 3년 전 연구 결과를 뿌리고, 전자담배 허위광고를 단속하겠다고 밝힌 것도 ‘뭔가 냄새가 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옛 자료를 꺼내 현 규제를 강화하는 건 담배 판매가 줄어들까봐 내놓은 대책이란 의혹이다.

무엇보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정부의 세금 대부분이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쓰이지 않는 점이 흡연자의 불만을 더욱 키우고 있다. 담배를 통해 거두는 세수는 2013년 기준 연간 약 6조8000억원에 이른다.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 연간 2조8300억원이 더 걷히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이 재원에서 금연 치료와 흡연예방사업에 쓰는 돈은 1.2%(243억원)에 불과하다. 흡연자들로부터 담뱃값의 60% 이상을 담뱃세로 챙겨가면서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거의 쓰지 않는 셈이다.

의혹과 불신,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실패 탓

정책·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번 담뱃값 인상 후폭풍과 꼼수증세 논란은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미흡과 이슈관리 실패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연정책 방향은 바르게 설정됐으나, 이를 홍보하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금연정책은 크게 ‘가격인상’과 ‘공포소구’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값을 올려 흡연접근성을 낮추고 혐오광고를 통해 금연의 폐해를 알리는 것이다. 문제는 흡연자의 강력한 저항을 미리 예상했음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위기관리, 이슈관리 플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예컨대 담뱃값 인상이 서민증세 논란을 일으킬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서민증세는 담뱃값 인상 논의가 나올 때마다 반대진영에서 들고 나오는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는 특히 증세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였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이슈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대응했어야 했다.

담뱃세에서 거두는 건강증진기금을 흡연자들의 건강과 무관한 용도로 쓰는 것도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흡연자들이 부담한 담뱃세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되는지 명확히 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조세저항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헬스 김동석 대표는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규제와 유인책을 포함하는 정책과 이를 지지하고 보완해 주는 커뮤니케이션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며 “현재 금연정책은 ‘가격인상’과 ‘위협소구’라는 틀은 잘 마련했지만 PR을 통한 이슈관리 및 관계공중과의 관계 증진프로그램이 수반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 담뱃값을 10년 만에 사상 최대 폭으로 올리면서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부터) 서울 종로구 한 가판대에서는 ‘개피담배’가 한 개비 당 3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기존 담배가격의 절반 가격으로 말아서 필 수 있는 롤링 타바코(가운데)와 전자담배도 인기다. ⓒ 뉴시스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금연종합대책에서 ‘종합’은 빠진 것 같다”고 비판했다. 금연을 확산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들이 빠져 가격만 올린 꼼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담배갑 경고그림 도입은 물론 메시지 전략, 즉 타깃별로 메시지를 다르게 해 금연효과를 늘리는 방안 등 금연을 위한 세밀한 노력들이 없다보니 흡연자 건강은 뒷전이고 가격만 덜렁 올렸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홍보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고그림을 도입하든, 관련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든, 광고 집행을 늘리든, 하다못해 금연포스터라도 많이 붙여야 한다. 정부가 금연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가시적인 노력을 국민에게 꾸준히 전달해야 논란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전문가도 비슷한 견해다. 박기호 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장은 “국민 입장에서 흡연자, 흡연자 가족, 일반인 등을 놓고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가격 인상에 대한 반응을 미리 모니터링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흡연자 긍·부정 변화, 일반인 여론 변화 등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체크해 단계별로 정책을 수립했다면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객관적 데이터 없이 SNS에 컴플레인 식으로 올라온 의견들에 휘둘리다보니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언론과 여론에 얻어맞기만 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메시지 전략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면 효과적이었을 것이란 의견도 눈길을 끈다. 박기호 과장은 “흡연의 폐해와 담뱃값 인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게 아닌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흡연자가 늘어 암 환자가 급증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구멍나고, 그럼 국민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담뱃값 인상이 큰 부담은 아니다고 설명했다면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쓰레기 버리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당신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돈은 당신 세금에서 나간다’고 강조하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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