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도 뜨거울 때 꽃을 피운다
나도, 당신도 뜨거울 때 꽃을 피운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3.1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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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사회와 소통하는 작가 이효열(Yeol)

시인이 말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작가가 말을 건넨다.
연탄재 무심히 지나치지 마라. 나도, 누구라도 뜨거울 때 꽃을 피운다.
겨우내 꽁꽁 싸맨 마음을 열어젖힌다. 그렇다. 꽃 피울 춘삼월이다.

▲ 사진제공: 작가 yeol

[더피알=강미혜 기자] 서울 시내 길가의 구석진 장소. 다 타버린 연탄구멍 사이로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그 옆으로 적힌 손글씨.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시선을 붙잡는 글귀가 어느 순간 마음에 돌 하나를 던진다. 나는 나의 꽃을 피운 적이 있던가?

‘Yeol’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효열 작가의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 더 반갑다. 강남역 한복판, 육교 위, 미술관 뒤켠, 삼청동 길거리, 대학로 골목, 회사 로비 등 바쁜 일상이 숨 쉬는 곳곳에 자리하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20대의 어느 날, 버려진 연탄재가 눈에 들어왔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탄도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따뜻하게 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내 인생도 뜨거워야 꽃이 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연탄에 꽃을 꽂았어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한 동안 작가의 집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일상에 지친 다른 이에게도 힘과 위로를 주고 싶어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 삭막한 곳을 전시공간으로 삼았다.

골목길 연탄꽃, SNS 수놓다

“처음엔 삼성동, 강남역 등 어찌 보면 뜬금없는 곳에다 설치했어요. 차가움 속에 있으면 더 뜨겁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이 공감할 지에 대해선 기대반 걱정반이었죠.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쉽게 받아들여주셨어요. 간혹 통째로 가져가는 분들도 계시고.(웃음) 작품을 좋아해주신다는 거니까 저로선 감사한 일이에요.”

오프라인 후미진 골목, 담벼락 밑에서 시작된 작품 활동은 온라인과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한 두 사람의 눈에 띄면서 입소문이 일었다. 인스타그램에선 해시태그(#)를 붙여 ‘#뜨거울때꽃이핀다’로 공유된 수만도 700건을 넘어섰다.  

▲ sns상에서 저마다의 감성으로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를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해시태그(#)를 통해 작품을 공유한 인스타그램 사용자들.

‘산책 중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울컥했는지 괜히 이상하더라. 나의 20대도 연탄같을 수 있어야 할텐데’

‘뜨거워지자. 그럼, 나도 꽃이 피겠지’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한 곳에서 발견해 기쁨이 배가 되었다. 나도 꽃을 피울게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해도 저마다의 감성으로 ‘연탄꽃’을 마주하는 사람들. 꽃이 시들면 새로운 꽃을 꽂아두는 참여자도 생겨났다. 어느 때엔 작품 주변으로 갖가지 꽃이 수북이 쌓였다.

밸렌타인데이 놓인 초콜릿, 연탄에 계속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듯 충전기가 꽂혀 있는 모습도 발견됐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꽃 한 송이로 위로와 격려를 얻게 된 데에 따른 이름 모를 누군가들의 흔적이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감사합니다’예요. 길을 걷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말씀들을 전해오세요. 작가로서 이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요?”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작품을 본 몇몇 관객은 미술관 측에 정식으로 작품을 전시해 달라고 요청할 만큼 팬이 됐다.

구걸하는 학사모, 버스정류장 쿠션

이효열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미술교육이나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스무살 때까지 오롯이 축구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대학전공도 체육학이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접어야 했다. 뜻하지 않게 인생 방향을 틀던 그 무렵 무언가를 표현하고픈 욕구가 생겼다.

“처음엔 연기에 도전했어요. 근데 저에게 딱 맞는 옷 같지가 않았어요. 이후 광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운 좋게 2년간 광고회사 AE로 일했습니다. 그때 공익광고에 눈을 뜨게 됐는데요, 저만의 공익 스토리를 만들어보자 해서 2013년 말 독립했어요. 원래부터 몸 쓰는 걸 좋아했으니까(웃음) 자연스레 퍼포먼스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죠.”

▲ 오프라인 후미진 골목, 담벼락 밑에서 시작된 yeol의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온라인과 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아티스트니 작가니 하는 수식어가 아직은 낯설지만, ‘열(Yeol)은 열(熱)이다’는 패기로 사회와 소통하는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다. 최근엔 ‘학사모’와 ‘쿠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학사모는 말 그대로 학사모를 활용한다. 다만 빛나는 학사모가 아니라 ‘구걸상자’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학 졸업한다고 어디 취직이 쉽나요? 그런데도 대학 땐 등록금 버느라 알바 뛰고, 졸업 후엔 학자금 갚느라 허리가 휘니… 노예처럼 일하는 모습이 구걸과 다름없다고 여겨졌어요. 과연 무엇을 위해 구걸하는 걸까요?”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픈 자화상을 담은 사회 비판적 작품이다. 그 스스로 직접 길바닥에 엎드려 학사모를 앞에 두고 구걸하는 퍼포먼스까지 펼쳤다. “가진 돈이 없다며 10원을 던져준 한 고등학생의 미래가 구걸하는 학사모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묵직함을 준다.

▲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픈 자화상을 담은 작품 <학사모>(왼쪽), 미생으로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위한 ‘쿠션’. 버스정류장 의자 위에 놓인 쿠션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사진제공: yeol

쿠션의 경우 버스정류장에서 가치를 발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자주 머무르는 버스정류장, 딱딱한 의자 위로 폭신폭신한 쿠션을 놓았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퇴근 무렵 피곤한 몸을 버스정류장 의자에 기대는 분들이 많은데 차갑고 딱딱하잖아요. 이 쿠션으로 잠시라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요.” 수많은 미생들을 향한 위로가 쿠션으로 형상화됐다. 버스정류장 쿠션들은 작가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해서 만들었기에 더 특별하다.

가난한 아티스트가 피워내는 봄의 꽃

작가 Yeol은 아직은 가난한 아티스트다. 작품에 쓰이는 꽃들, 쿠션 하나도 모두 자비로 해결하고 있다. 심지어 기자에게 건넨 명함도 색지를 오려 손으로 쓴 핸드메이드였다. 그만큼 생활하기도 빠듯한 것이 현실. 하지만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제 모토가 소통이에요. 지금은 설치미술 쪽에 집중하고 있지만, 공익적인 부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계를 짓지 말자고 생각해요. 누구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는 예술 활동으로 계속해서 사회와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 봄, Yeol의 꽃이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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