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크릿 ‘핑크’의 고객은 누구인가?
빅토리아 시크릿 ‘핑크’의 고객은 누구인가?
  • 더피알 (jihern@sejong.ac.kr)
  • 승인 2015.03.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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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의 브랜딩 인사이트] 고객 범위 넓히는 더 넓은 시야

[더피알=김지헌] 연 매출 60억달러(한화 약 6조6000억원)가 넘는 세계 최대 란제리 회사인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은 성인남녀들에게는 꽤나 잘 알려진 브랜드이다.

1977년 로이 레이몬드(Roy Raymond)는 여성 속옷 매장에서 아내의 선물을 고를 때 느꼈던 창피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남성들이 당당하게 여성 속옷을 쇼핑할 수 있는 매장을 오픈했다. 이로써 빅토리아 시크릿의 역사가 시작됐다.

▲ 세계 최대 란제리 회사 빅토리아 시크릿은 목표 고객인 20대를 공략해 10대와 30대들에게도 어필했다. 사진: 빅토리아 시크릿 핑크의 데이트 브라 콜렉션 프로모션 영상 화면.
또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와 엔젤이라 불리는 모델들이 인기를 끌면서 섹시함이라는 코드로 여성속옷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이후 빅토리아 시크릿은 주 고객층을 넓혀 30·40대 기존 고객보다는 조금 어린 소비자를 공략하고자 ‘핑크(PINK)’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핑크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대생을 모티브로 한 제품라인으로, 섹시 코드를 유지하면서도 좀 더 귀엽고 실용적인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미국시장에서 핑크는 20대 대학생 못지않게 10대들과 30대들에게도 어필하면서 매출의 상당 부분이 예상 밖의 고객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20대 잡으니 10·30대 따라와

왜 10대들과 30대들은 빅토리아 시크릿 핑크에 열광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10대 사춘기 소녀들은 대학생 언니들의 성숙한 섹시함을 모방하고 싶어 하고, 30대들은 20대 여성의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시크릿이 10대와 30대에 좀 더 어울리는 제품을 핑크 브랜드로 출시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10대와 30대뿐 아니라 기존 목표고객층인 20대마저도 핑크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핑크가 여대생을 공략함으로써 구축한 차별화된 이미지가 고객층의 확대로 희석(dilution)되기 때문이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싱글 특유의 자유롭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해 싱글들을 위한 잡지를 구독하는 기혼남녀에게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가족카페와 놀이공간을 새로운 콘텐츠로 추가하는 것과 같다. 결국 그 잡지는 머지않아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지 모른다.

다행히 핑크는 고객층을 넓히려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고, 20대에 한정된 제품출시와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성공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 해 줄 수 있는 목표고객층을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브랜드 포지셔닝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존슨즈베이비 로션은 아기들을 위한 제품이지만 그만큼 순하고 피부에 좋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성인들을 고객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 미스터피자는 여성을 위한 피자를 표방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사진: 위민스데이(women's day) 포스터 일부.
핑크와 존슨즈베이비 로션처럼 마케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목표고객층이 창출한 차별화된 이미지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고객층이 확대된 경우도 있지만,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마케터가 좀 더 적극적으로 목표고객층과 커뮤니케이션해 성공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여성들을 위한 피자를 표방하는 미스터피자가 대표적이다. 미스터피자는 남성고객은 포기하고 여성들만을 공략하려고 ‘러브포위민(Love for Women)’이란 슬로건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을 위한 피자라는 목표고객층을 소구점으로 커뮤니케이션해 담백하고 기름기 없는 차별화된 속성을 분명히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남성들끼리 피자를 먹으러 가는 것보다 여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이 피자를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도 여성고객의 공략은 바람직했다고 볼 수 있다.

택시 운전 기사를 공략한 이유

또 다른 예로 기사식당을 들 수 있다. 기사식당은 택시운전 기사들을 위한 식당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기사들만을 위한 식당은 아니며 이용고객의 범위 또한 매우 넓다. 그렇다면 왜 기사식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할까? 고객들이 바쁘고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운전기사들을 위한 식당이라면 음식이 빨리 나오고 가격대비 충분히 맛이 좋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약자를 위한 ‘배려기술’에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노약자나 장애인을 배려한 기술을 개발해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개발된 영화관의 ‘좌석 인식 시스템’이 일반인들에게도 더 큰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배려기술에 대한 투자는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객층의 확대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더 매력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요컨대 마케터와 투자자는 목표 고객층의 범위를 확대해 볼 수 있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갖출 필요가 있다.


김지헌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KAIST 경영대학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KT마케팅연구소와 CJ제일제당에서 브랜드전략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다. 소비자심리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여 IMM, IJRM, AJSP 등 국내외 유명학술지에 논문들을 게재, 우수 논문상 및 강의 우수상을 수상했다. (www.facebook.com/jih­er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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