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제2·제3의 손석희 나오지 않는 이유
언론계, 제2·제3의 손석희 나오지 않는 이유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3.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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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브랜드 “‘순환보직’ 경직성부터 탈피해야”

지난해 주목받은 여러 신조어 중 언론계에 경종을 울린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기레기’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는 언론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언론사 숫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저널리즘의 질적 발전은 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자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공급과잉의 언론시장에서 기자로 ‘롱런’하기 위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추는 것은 필수 덕목이 돼가고 있다. 기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점점 옅어지는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①브랜드 저널리즘 시대, 기자에게 필요한 ‘브랜드’
②언론계, 제2·제3의 손석희 나오지 않는 이유
③“기자는 연차순이 아니다”
④“독자가 실망하는 순간 브랜드는 깨져”

[더피알=문용필 기자] 베껴쓰기와 어뷰징이 기자의 브랜드화를 가로막는 인터넷 시대의 장애물(관련기사: 브랜드 저널리즘 시대, 기자에게 필요한 ‘브랜드’)이라면 기자들의 순환보직은 한국 언론계 풍토에서 전통적으로 기자의 브랜드화에 역행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출입처’라는 개념도 여기에 해당된다. 자신의 역량, 혹은 관심사와 관계없이 회사의 지시에 따라 배분받은 분야만을 취재해야 하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라인 미디어 전문가인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언론사에서는 출입처를 돌거나 취재분야를 몇 년마다 바꾸는 관리시스템이 있다”며 “(출입처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렇지만 지금은 (언론사들이) 공개된 조직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자 개개인들에게 독립적인 분야에 대한 정통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7:3 혹은 3:7 정도의 비중으로 소속기자가 현재의 취재분야와 전문분야를 병행할 수 있도록 언론사가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자료사진) 출입처 및 기자실 관련 언론계 세미나. ⓒ 뉴시스

실행방법은 다소 다르지만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순환보직제에서 기자를 해방시켜줘야 한다”며 “각자 원하는 분야를 수습에서 5년차 정도까지 정하도록 하고 이후에는 전문분야를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경제, 정치 등 큰 분류가 아닌 세부적인 영역에 기자들이 파고 들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 기자가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많은 독자들이 ‘실물’로 기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언급했다.

최민영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장은 “기자들에게 20%의 창의적인 활동을 할 여유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은 잉여의 시간과 에너지에서 출발하는데 기존의 제작체제가 빡빡하다면 혁신은 나올 수 없다”며 “평가는 장기적 관점에서 하면서 기자들 개개인이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사내문화 혁신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언론사가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 개발을 쉽게 지원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기존 ‘스타 언론인’의 행보와도 무관치않다는 시각도 있다. 명승은 대표는 “상업적인 논리로 봤을 때 스타기자를 (언론사) 조직에서 관리해주지 못하면 이들은 독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자들 중에서 인지도를 쌓은 후 업을 전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권에서의 러브콜이다.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등이 그 예다. 선거 때마다 브랜드 밸류를 갖춘 언론인을 영입하고 이들을 공천하는 것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나 김은혜 전 KT 전무처럼 기업으로 발길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드물기만 한 기자의 ‘프리선언’  
 
그러나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일정한 인지도를 쌓은 후 ‘프리선언’을 하는 아나운서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앞서 언급했듯 아예 언론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거나 기존 소속매체에 남는 경우, 혹은 타사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체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브랜드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프리랜서 기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민영 팀장은 “한국에서는 취재단계에서 어느 언론사 소속인지 여부가 취재원에 접근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갖는다”며 “스타급 기자가 프리랜서가 된다고 해도 취재지원 시스템이 미비할 경우 오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명승은 대표는 “기존 언론인들의 카르텔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청와대를 취재하고 싶어도 청와대 기자단이 용납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막판에 기자실을 브리핑실로 바꾼다고 해서 언론이 난리를 친 경우가 있었지 않느냐. 그것이 단적인 예”라고 진단했다.

▲ 대표적인 브랜드 언론인으로 손꼽히는 손석희 jtbc 사장 ⓒ 뉴시스

이같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저마다의 브랜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은 언론계 내부에 어느 정도 퍼져있는 분위기다. 공급과잉 시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자 개인의 절박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성해 교수는 “‘누구나 할 수 없는 영역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늘었다”며 “과거 한직으로 분류되었던 연예, 문화 쪽이 오히려 인기다. 문화부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일정한 수준의 전문성이 축적됐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뉴스저작권이 언론사가 아닌 개인에게 귀속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이라며 “<허핑턴포스트>에서 보듯 ‘어느 매체’에 실렸든 상관없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콘텐츠만 훌륭하면 먹고 살 길이 생긴다는 비전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교수는 “기자의 브랜드화는 해외에서는 이미 상당한 트렌드다. 역사도 비교적 오래됐다”며 “국내에서만 좀 늦게 시작된 것인데 그 이유는 언론사라는 매체가 제한적이었고 ‘출입처, 기자에 대한 특권’ 등을 통한 완장효과를 정부가 만들어준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최민영 팀장은 “기자사회 내에서는 기자브랜드에 대한 인지가 이미 상당 수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인지도가 오를 경우 보도의 신뢰가 높아지고 제보도 많이 이뤄지면서 더 좋은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인으로서 직업적 성취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언론사 입장에서도 자사 기자의 브랜드화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기자들이 어느 정도 명성을 쌓게 되면 해당 언론사의 가치도 그만큼 상승할 여지가 크다.

척박한 환경 속 의미 있는 시도들

가장 좋은 사례가 손석희 사장을 영입한 JTBC다. 손 사장이 영입되기 전 JTBC 뉴스는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다른 종편들과 비교해도 큰 차별화를 보이지 못했지만 손 사장의 막강한 브랜드에 힘입어 종편에 비판적이던 진보 성향의 시청자들까지 흡수하는 효과를 거뒀다. 물론 여기에는 손 사장이 추구해오던 저널리즘의 깊이가 종편에서도 바뀌지 않았다는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 (자료사진)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군사세계’/사진: 해당 사이트 캡처

실력 있는 해직 언론인들이 모인 <뉴스타파>는 기자 각자가 갖고 있는 브랜드가 모여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는 존재하지만 주진우와 고재열 같은 스타기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시사IN>도 기자들의 브랜드 가치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변화에 발맞춰 신생 매체뿐만 아니라 기존 언론사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신문>은 올초 선보인 기획기사 시리즈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걸인 체험 등 기자가 직접 빈부격차의 현장에 뛰어들어 생동감 있는 저널리즘을 보여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자들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무대를 언론사가 마련해준 셈이다. 이같은 ‘체험형 기사’는 앞으로도 여러 언론사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이 직접 팟캐스트와 SNS,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노력도 눈여겨볼만하다.

<오마이뉴스>의 장윤선 기자는 ‘팟짱’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면서 청취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한겨레>의 하어영 기자도 ‘정봉주의 전국구’를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같은 신문사의 허재현 기자와 <시사IN>의 고재열 기자는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유용원 군사전문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군사세계’는 오래전부터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이름이 높다.

스타기자≠브랜드 기자

포털사이트 다음이 지난해 9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뉴스펀딩’도 기자의 브랜드 가치와 맥이 닿아있다. 매체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후원자로부터 조달하는 형태의 뉴스펀딩은 매체보다는 기자 개인의 이름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스펀딩에는 스타급 기자뿐만 아니라 주류, 비주류를 떠나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기자 스스로도 당연히 책임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고, 독자 입장에서는 콘텐츠로서 기자의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바꿔 말하면 기자들이 매체 파워를 떠나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타기자’가 되는 것이 곧 브랜드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임밸류에 걸맞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언론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브랜드 기자들 중에는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깊이 있는 리포트와 기사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CBS의 변상욱 대기자나 <한겨레>의 조현 종교전문기자 등이 좋은 예다.

▲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하는 뉴스펀딩. /사진: 뉴스펀딩 사이트 화면 캡처.

최민영 팀장도 ‘기본기’를 강조했다. 그는 “일단은 실력이 먼저다. 아무리 매력적으로 꾸민다고 해도 기본적인 취재력과 근성, 인격적 수양 없이는 오래갈 수 없다”며 “조급하게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연습생’의 마음가짐으로 언론인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이 먼저”라고 밝혔다.

김성해 교수는 “철저하게 남들과 차별화되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며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 관련 분야에 대한 역사적 통찰력과 다양한 이해관계 지형의 파악능력, 네트워킹 능력, 주요쟁점과 이슈에 대한 판단력 이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담론 가공능력 등이 두루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양한 플랫폼에 맞춰 담론의 유형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말도 하고 글도 잘 쓰고 대중적인 서비스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해 ‘협력 저널리즘’ 즉,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뉴스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기자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형식만 있다고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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