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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PR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3.3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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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대 전·현직 PR인의 ‘나의 홍보 스토리’
[더피알=강미혜 기자]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원하듯 PR인을 꿈꾸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베테랑 PR인을 두고 기자 출신을 커뮤니케이션 총책으로 선임하는 이유는 뭘까? 20~30년 간 홍보 한 우물을 팠어도 퇴직과 동시에 왜 백수가 되는 걸까?
다소 뜬금없는 질문들이 기획의 출발점이 됐다. PR이란 업이 갖는 전문성, PR인으로서 미래 비전에 관한 이야기다. 급변을 넘어 격변하는 PR현장 속 전문가는 과연 누구인가.

# 나는 29세 남자 AE다.

여초현상이 두드러진 PR업계에 발을 들인지 이제 5개월 남짓. 아직은 PR인이라는 수식어가 스스로도 낯설다.

어문을 전공하며 대학 시절 줄곧 기자를 꿈꿨다. 졸업을 앞두고 지난해 한 인터넷 신문사에서 인턴기자로 일했다.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를 거치며 정신없이 현장을 뛰어다녔다. 숨 돌릴 틈 없이 바빴지만 이런 게 기자구나 싶었다. 인턴이 끝나갈 무렵 산업부로 발령이 났다. 정치·사회부와는 사뭇 달랐다. 광고·협찬을 걱정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10년 뒤 내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신문사를 나와 방송사로 눈을 돌렸다. 딱 1년만 도전하자 독하게 마음먹었다. 최종면접까지 올라가길 수차례. 아슬아슬 닿을 듯한 방송기자 타이틀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 모습에 초조함이 커져갔다. 나에겐 치열했던 1년이 남들 눈엔 백수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PR이란 다른 길이 보였다.

운 좋게 꽤 규모 있는 PR회사에 입사했다. 모든 것이 새롭다. 클라이언트의 일이 곧 내 일이다. 맡고 있는 온라인PR 업무도 흥미롭고 많은 것을 배운다. 인턴기자 때와 비교하면 속된 말로 빡센 것도 덜하다.

물론 PR인으로 접하는 언론은 달라도 참 많이 다르긴 하다. 기자들이 이렇게 까칠했던가. 기사와 리포팅으로 뉴스화 되기까지 그 밑단에 PR인의 부단한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남아 있다. ‘PR이 내 길인가?’ 잘 모르겠다.

# 나는 38세 대기업 PR팀 차장이다.

직장생활 1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홍보를 한 지는 이제 2~3년. 아직은 배울 게 많은 PR인이다.

공대를 나와 이 회사에 들어왔다. 커뮤니케이션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전공이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을 준다. 정부정책 이해도라든가 기자응대에 있어서 수월한 감이 있다. 덕분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PR 업무에 적응했다.

기자-PR인 관계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자는 갑(甲)이다. 친구 같은 기자도 있지만 ‘모셔야’ 하는 기자도 많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작지 않다. 그럼에도 PR인으로서 현재 위치는 꽤 만족스럽다. 일반 샐러리맨이었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경험할 수 없는 분야를 몸으로 부딪치면서 일한다. 사내에선 ‘PR팀=돈 쓰는 부서’라는 인식이 존재한다지만 쓸 돈을 쓰는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쭉 PR을 하겠다는 확신은 없다. 십수년간 홍보맨으로 살아온 선배, 상사처럼 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회사를 떠났을 때 내 손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홍보팀장, 홍보임원으로 올라갈수록 실무에서 멀어진다. 기자관계 외엔 강점으로 내세울 무기가 많지 않다.

10년, 20년 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이 일, PR이 참 재밌다. 보람도 크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어느 날 준비 없이 은퇴시기를 맞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올해 나는 이공계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 나는 42세 PR인이다.

PR회사에서 언론홍보를 비롯해 마케팅PR, 위기관리, 정책홍보 등을 맡고 있다.

대학 졸업 무렵엔 언론고시를 준비했지만 IMF 직격탄을 맞아 청운의 꿈이 꺾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 신입공채로 입사했다. 그때가 1997년 말이다. 신문방송을 전공했기에 홍보팀 멤버로 낙점됐다. PR인으로서 나의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몇 번의 이직을 거듭하며 언론홍보를 비롯해 사내커뮤니케이션, 온라인PR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2008년, 전문 PR인으로 본격적으로 걸어보자는 생각에 에이전시 분야로 넘어왔다.

인하우스 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시장 환경, 매체 상황, 여론 동향, 클라이언트의 의중, 우리 회사의 강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팔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했다. 조직의 시스템에 앞서 개인의 실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역량을 발휘하기에 PR은 괜찮은 잡(job)이다. 의도했던 대로 PR활동이 진행될 때, 실행했던 프로젝트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때 짜릿한 성취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론 다음 스텝이 막막하다. 수년째 지속되는 경기침체는 PR산업을 노동집약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생존을 위한 가격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 서비스 단가(fee)는 낮아지는 기형적 구조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3년. ‘쇼부’를 보려 한다. 40대 중반이 돼도 전문가로서 브랜드를 못 만들면 결과는 뻔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설비기사 자격증에라도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 나는 55세 은퇴한 홍보임원이다.

작년 말 27년간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27년간 맺은 홍보와도 떨어지게 됐다. 인생의 절반을 홍보에 올인했는데 나의 경험을 사려는 곳이 나타나질 않는다.

1987년 입사와 동시에 홍보팀으로 발령받았다.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는 이유 하나로 운명이 정해졌다. 홍보가 뭔지 몰랐어도 멋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언론과의 소통, 크리에이티브한 광고 업무를 상상했다. 현실은 ‘잡다한 일’의 연속이었다. 회사 밖에선 기자들 비위맞추며 보도자료 나르고 안에서는 다른 부서에 치이는, 한 마디로 시달리는 존재였다.

90년대 초·중반, PC통신의 등장으로 홍보 업무는 격변기를 겪었다. 발로 뛰어다닐 필요 없이 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초반 IT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홍보는 또다시 격변을 맞았다. 특히 휴대폰의 보급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부장으로 재직할 당시였는데 자유자재로 IT기기를 다루는 신입, 아랫직원들이 돋보이는 일이 많아졌다.

임원이 되고 보니 20년간 쌓은 기자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부장, 국장이 된 옛 출입처 기자들은 주로 광고·협찬 요구를 해왔고, 거절이라도 하게 되면 얼굴 붉히는 일이 빈번해졌다. 오랜 기자관계, 풍부한 홍보경험은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배로서, 상사로서 점점 더 가르칠 게 없어지는 듯했다.

임원 4년차. 은퇴 이후에도 먹고 살 일을 찾자 결심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자기계발은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별안간 퇴직 통보를 받았다. 노후 준비의 계획은 완벽히 어그러졌다. 평생 홍보만 바라봤는데 회사란 울타리가 사라지니 홍보인으로서 내 존재감도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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