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홍보인 관계 신풍속도
기자-홍보인 관계 신풍속도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0.11.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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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可近 不可遠’의 새로운 ‘밀당’은…

[더피알=강미혜 기자] 기자의 펜을 빌려 대중과 만났다. 홍보인의 입을 거쳐 기사거리를 찾았다. 매일 보는 얼굴에 어느덧 형님, 아우가 되었다. 기사 하나에 서로 얼굴 붉히다가도 소주잔 부딪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웃었다. 홍보인과 기자.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라 했다.

하지만 인터넷 등이 발달하면서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다. 이들의 ‘미묘한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업은 이제 언론을 거치지 않고 블로그, 트위터 등 스스로의 채널을 통해 제목소리를 낸다. 기자 입장에서도 굳이 홍보실이라는 ‘단일 창구’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서로 간의 끈끈한 그 무엇이 없더라도 각자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게 된 시대. 새로운 ‘밀당(밀고 당기기)’이 전개되는 홍보인과 기자간 ‘쿨’한 관계 변화를 살펴봤다.

 

 

“갑과 을은 옛말”
기자 위상 하락…수평적 관계로

“밥 사고, 술 사고, 필요할 땐 달려가고… 그야말로 ‘온갖 짓’을 다했었다.” 은퇴한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의 한 마디는 예전 기자와 홍보인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과거 대중을 설득하는 파워풀 수단은 단연 언론 매체였다.

홍보실의 주 업무 역시 이들을 잘 ‘관리’하는 일. 언론과 맞닿은 최전방에 선 홍보인들이 기자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기사 하나에 홍보팀장이 나서서 언론사 데스크 앞에서 ‘읍소’하는 광경은 비일비재했다. ‘기자=갑, 홍보인=을’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공공연하게 자리했던 것.

하지만 이같은 관계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통제권이 소수의 언론에서 다수의 대중에게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이제 한 번 보도된 기사는 단순히 지면에서 들어낸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무한한 온라인 공간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한 일간지 40대 고참 기자는 “기업, 단체의 비리나 문제점이 기사로 지적됐을 때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된 경우가 많다. 홍보실에서 기사를 막는다거나 빼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달라진 언론 환경을 대변한다. 그만큼 기업과 언론의 관계가 투명해졌다는 얘기다.

홍보인 입장에서도 이제는 눈에 보이는 기자를 넘어 불특정 대중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슈 확산 속도와 파급력을 따져 보면 기존 매체보다 인터넷 포털이 훨씬 무섭다. 문제가 되는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 더 큰 화(禍)로 다가오는 시대가 됐다. 특히 젊은 홍보인일수록 부정적 기사에 대해 강력히 어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선 홍보 관계자들의 전언.

갑과 을이라는 ‘과거의 도식’에 구애 받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 기업과 대중의 유일한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올드 미디어의 역할이 좁아지는 건 불문가지다. 이에 대해 한겨레 금융팀 정혁준 기자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공유하게 되면서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의 기자 가치가 어느 정도 떨어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워진 광고 시장도 전통적인 갑과 을의 관계 변화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 최근 10년 새 광고시장이 10만큼 커졌다면, 파이를 노리는(?) 매체는 100으로 늘었다. 매체의 ‘돈 줄’이 되는 광고주, 즉 광고 집행권을 쥐고 있는 홍보인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요즘에는 홍보 임원과 골프 약속 한 번 잡기도 쉽지 않다”는 모 신문사 간부의 얘기는 이같은 위상 변화를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얼굴 한 번 보기도 바빠”
끈끈한 情 → 업무 중심

기자에게 홍보실 방문은 기사 작성을 위한 필수 코스였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팩트를 확인하고, 면대면 취재를 통해 풀(full)기사가 만들어졌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는 일이 풀리지 않았다”고 할 정도. 매일같이 만나다 보니 홍보인과는 어느덧 형님 동생 하는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 기자와 홍보인의 인간적 교류는 효율을 따지는 일 중심으로 바뀌었다.

홍보인 입장에서도 기자와의 친밀도는 ‘필요충족조건’이었다. 언론에 좋은 기사를 내보내고, 나쁜 기사는 막는 것이 홍보하는 사람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척도였기 때문.

더욱이 과거엔 응대해야 할 대상이 몇몇 유력 매체 기자로 한정돼 있었기에 서로간 친밀한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40대의 모 기업 홍보팀 차장은 “회사에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더라도 그간의 ‘정’을 바탕으로 사정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매체수가 급증하면서 이같은 정의 관계도 변했다.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수많은 매체, 속한 기자 수만도 헤아릴 수 없다. 얼굴 한 번 보기에도 급급하다. 매체간 보도 경쟁이 과열되면서 자료 요청 건수도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급증했다.

홍보인들은 하루에 수 십 차례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잠깐씩 응대하는 일도 빠듯하기만 하다. 전화나 이메일, 메신저 등의 비교적 간편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선호하게 된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게 홍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자 입장에서도 예전처럼 느긋할(?) 수만은 없는 현실. 경쟁 매체에 뒤지지 않고 실시간 기사를 송부하기 위해선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중요한 팩트를 얻어야 한다.

한 일간지 기자는 “다양한 루트로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기사 하나를 쓰더라도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 한다”며 “홍보실을 통해 배포되는 보도자료는 그저 참고 수준일 뿐”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한다. 면대면 스킨십 보다는 메일, 메신저 등을 이용해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만 싶다고.

인간적 교류에서 효율을 따지는 일 중심으로의 관계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일장일단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평가는 엇갈린다. 롯데제과 홍보팀 안성근 과장은 “딱딱하고 사무적인 관계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군더더기 없는 업무처리는 서로에게 편한 것 같다”고 말한다.

옛 시스템에 익숙한 올드 홍보맨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한 대기업 홍보임원은 “홍보는 결국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면서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던 끈끈한 관계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물이 달라진 만큼 방법도…”
여기자 ↑…접대 문화 변화

전통적으로 기자와 홍보인 사이에 ‘술’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홍보인은 으레 “잘 봐주십사”하고 기자를 접대해야 했고, 친밀도를 높이는 최적의 촉매제로 ‘알코올’이 선호됐다. 잘 구워진 삼겹살 위로 한잔 두잔 소주잔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형님, 동생 하는 막역한 사이로 급발전했다.

기자 사회가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점도 이같은 술자리 문화를 정착시킨 한 요인이다. 과거 남자 기자의 비율은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술을 중심으로 한 관계 형성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여기자 수가 늘면서 이같은 술 문화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저녁 대신 점심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독한 술 대신 와인이나 칵테일, 막걸리로, 또 영화나 뮤지컬을 보며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 금융사 홍보팀장은 “출입처 기자 중 남녀 비율이 10대 1이었다면, 지금은 10대 4까지 간격이 좁아진 것 같다”며 “물이 달라진 만큼 방법도 달라졌다. 다수의 여기자를 배려한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젊은 홍보맨·기자의 마인드 변화도 한 몫 한다. 올드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 시간’에 대한 애착이 높은 이들은 공식적 업무 외 별도의 관계 맺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선배들처럼 자기 몸을 해치면서까지 ‘올인’하고 싶지 않다고도 말한다.

20대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일은 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로 필요에 의해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저녁 시간에 별도 만남을 갖더라도 1차에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사적인 관계를 일체 거부(?)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신 새로운 세대답게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간다. 비슷한 취미와 관심사로 뭉치게 되는 경우다. 등산, 마라톤, 온라인 게임 등 분야도 다양하다. 한 IT회사 홍보팀 대리는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는 기자와 휴일에도 종종 만나곤 한다”며 “과거처럼 ‘접대’ ‘술친구’ 개념으로서의 ‘관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창의적으로 ‘캐어(care)’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블로거에 엠바고, 홍보인에 기사삭제를?
소셜미디어 등장…언론·홍보 틀 ‘와르르’

“해당 기사는 사실과 다릅니다. @LGUplus에서도 옵티머스Q 단종이 검토중이나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재공지했으니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최근 LG전자의 기업트위터(@LG_TheBLOG)에 올라온 글이다. 자사 스마트폰 옵티머스Q의 ‘단종설’에 대해 팩트에 어긋난 기사라며 반박하고 나선 경우다. 기자와 홍보인의 관계는 인터넷을 넘어 소셜미디어라는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은 자기 채널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사진: lg전자 트위터.

소셜미디어 시대는 기업이 곧 미디어가 되는 시대다. 홍보인들은 더 이상 언론 보도에 기대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LG전자 사례에서 보듯, 필요에 따라 직접 제 목소리를 낸다. 언론사에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해당 기자에게 기사 써달라고 일일이 확인 전화하던 종전의 시스템과는 크게 달라졌다. 소셜미디어 확산을 계기로 기자 쪽으로 쏠렸던 여론 주도권의 무게 중심이 급속도로 수평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나아가 LG전자는 신형 스마트폰 ‘옵티머스 7’의 론칭 행사도 기자가 아닌 블로거들과 함께 하는 ‘파격’을 가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선 기자의 ‘글빨’ 보다 파워블로거의 ‘말빨’이 더 핫한 요즘이다. 엠바고 요청과 준수 의무 또한 블로거들의 몫이었다.

LG전자 홍보팀 정희연 차장은 “파워블로거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출도는 물론 자기 콘텐츠 확산 능력도 뛰어나다”며 “PR적 측면에선 ‘소비자’라기보다 ‘미디어’”라고 평했다. 홍보인 입장으로선 블로거들 역시 기자와 ‘동급’일 수밖에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복귀와 관련해 트위터를 통해 말문을 연 삼성의 경우도 이같은 현상을 뒷받침한다. 삼성은 지난 3월 그룹 공식 트위터(@samsungin)를 통해 이 회장의 복귀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다. 이 소식은 RT(Retweet)에 RT를 거듭하며 빠르게 확산됐고, 10분 뒤 이인용 부사장(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의 공식 회견이 있기까지 기자 역시 트위터리언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기자의 ‘칼질’을 거쳐 전달되던 전통적 뉴스 스타일과는 확연한 변화다.

한 대기업 온라인 홍보 담당자는 “온라인에서는 잠재적으로 누구나 의견 공유 및 여론 형성의 힘을 갖고 있다. 홍보인도 기자를 거치지 않고도 충분히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 “기자의 고유 영역이 다수로부터 침범(?)당하는 것과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소셜미디어가 갖는 이같은 막강한 영향력은 때론 기자와 홍보인의 역할 혼재(?)를 가져오기도 한다. 실제 한 통신사 직원이 개인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해 기자가 삭제해달라고 한 사례가 있다. 내용인즉 정확히 팩트화 되지 않은 내용을 기사화했고, 이에 대한 직원 멘트가 해당 기자의 입지를 곤란하게 했다는 것. 기자가 홍보인에게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 오로지 소셜미디어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달라도 너무 달라진 풍속도다.

요즘 능력 있는 홍보맨은?
‘마당발’에서 ‘멀티플레이어’형으로

▲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스마트 홍보인의 주가가 높다.

미디어·홍보 패러다임과 환경이 급변하면서 능력 있는 홍보인상(像)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이제는 ‘마당발’ 보단 ‘멀티플레이어형’ 인재를 선호한다. 깊이 있고도 폭 넓은 지식과 시야를 갖추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홍보인들의 주가가 높아졌다.

신한카드 홍보팀 김성원 차장은 “홍보인 유형이 크게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난 사람, 많이 아는 사람으로 나뉘곤 하는데 요즘엔 직접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후자 쪽이 인기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바탕에는 ‘접대’보다 좋은 기사에 필요한 ‘소스’를 제공받길 원하는 기자들의 마인드 변화도 작용한다.

젊은 홍보인들의 전천후 활약도 변화의 한 단면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세대’답게 발 빠른 정보력으로 무장한 채 업무처리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스마트하다. 롯데제과 홍보팀 안성근 과장은 “젊은 친구들은 과거처럼 ‘정공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확실히 여러 루트를 통해 다각도로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이같은 업무 스타일은 빠른 피드백을 원하는 젊은 기자들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아시아경제 산업부 김혜원 기자는 “인터넷 메신저, 스마트폰 ‘카카오톡’ 어플을 통한 교류도 잦다”며 “굳이 형식을 따지지 않는 실리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편하다”고 밝힌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통적인 홍보인의 ‘자질’에 관한 얘기도 자주 들려온다. 역할이 변하고, 기자와의 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몸으로 때우는’ 홍보를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 퇴직한 한 홍보임원은 “기자와 적극적으로 스킨십하는 홍보인이 결국 중요한 순간에 진가를 발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불가근 불가원’으로서의 홍보인과 기자,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발로 뛰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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