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실패공식② 왜 타이밍을 놓치나
위기관리 실패공식② 왜 타이밍을 놓치나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5.04.1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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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권위적·형식적 보고방식, 의사결정 느리고 논쟁만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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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실패공식①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

[더피알=정용민] 위기 상황에 처해 본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공감할 것이다. 자신의 회사가 얼마나 느린지를. 평소와 같은 의사결정 단계와 속력으로는 어떤 위기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달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위기 시 일선에서는 “위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내려져야 우리가 대응을 하고 말고 할 것 아닌가?”하며 불평한다. 반대로 위에서는 “실행을 지시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제대로 된 것이 없나?”하며 화를 낸다.


양쪽 모두에게 랙이 걸린 꼴이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들이 취합, 분석돼야 하는데 위기라는 것이 그렇게 종합선물세트 같이 단박에 충분한 정보를 허락하지 않으니 문제다. 단편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전달하는 많은 관련 직원들의 해석과 의견들이 뒤섞인 채 의사결정을 종용한다. 당연히 우물쭈물하게 된다.

CEO 의사결정을 앞에 두고도 일부 임원은 맞다, 다른 임원은 아니다 논쟁하게 마련이다. 부서장들끼리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왜 문제를 만든거냐 비판도 하고, 일부는 서로에게 하소연하며 시간을 보낸다. CEO는 점점 더 두려움과 혼동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병목현상도 늦게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 큰 이유다. 기업 내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되는 과정에는 항시 병목이 있다. 그 병목이 긴 조직의 경우에는 보고라인도 층층이다. 또한 보고방식이 상당히 권위적·형식적이다.

위기 시 병목현상…보고서는 역사 기록으로

급박한 위기 시에도 잘 정리된 보고서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예쁜 폰트와 형식을 맞춘 보고서들을 놓고 수정과 수정을 반복한다. 팀장이 임원에게 임원이 또 상위임원에게 상위임원이 최고임원에게… 줄줄이 이어지며 상황은 더욱 더 왜곡되고, 시간은 시간대로 늘어난다. 결국 상당시간이 흘러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됐을 때는 이미 해당 보고서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역사 기록이 돼버린다.

빠르게 대응하길 원하는 기업·조직들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워룸(war room)을 만들어 한자리에 빨리 마주 앉는 훈련을 평소에 한다.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모든 평시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그 역할을 상실한다. CEO와 임원들 간에 휴대전화 통화가 여의치 않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화를 돌리다 보니 충돌이 쉴 새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기 시 물리적 공간에서 모두가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소중한 위기관리 체계다.

의사결정이 어떻게든 빨리 내려지면 상황은 금세 달라질까? 글쎄다. 대응 전략이 세워지고 이런 저런 실행 명령이 담당 부서들에게 떨어진다. 그 다음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하는 그대로다.

법무팀에게 “관련해서 대응 할 로펌을 빨리 선정하세요”라는 긴급한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보자. 법무팀장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슈를 가장 잘 아는 로펌을 수소문한다. 각 로펌에 지인들을 찾아 전화를 한다. 미팅을 의뢰한다. 미팅을 해보고 견적이나 제안을 받아보거나 하는 일상적(?) 프로세스들이 진행된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을 하는 데에도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홍보팀은 어떤가? “홈페이지 팝업으로 일단 해명문을 띄우고, 고객들의 불만사항들을 접수하도록 하세요”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을 받았다고 해보자. 홍보임원이 홍보실에 내려온다. 홈페이지는 누가 관리하는지 물어본다. 과장급에게 보도자료 해명문을 한번 써오라고 한다.

그 과장은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청취하고 감을 잡아서 해명문 초안을 쓴다. 부장이 또 수정과 수정을 하고 임원에게 가지고 올라간다. 이후에도 여러 사람의 의견이 포함돼 해명문이 완성된다. 근데 불행하게도 이게 끝이 아니다.

해명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리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부서에 가서 해명문을 전달한다. 디자인을 잡아야 한다고 한다. 회사 로고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폰트는 어떻게 하고, 팝업 사이즈는 어떤 사이즈로 해야 하는지, 홈페이지 어느 섹션에 넣는 것이 좋은지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해명문을 배달했던 홍보실 대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홍보부장에게 다시 보고 한다. 또 왈가왈부가 이어진다. 홈페이지 첫 화면 팝업은 어떠냐? 아니다, 게시판 속에 심자. 아니다, 고객들이 아이디를 치고 로그인 하면 그 때 팝업으로 하자… 논란은 이어진다. (읽기만 해도 지루해 지지 않나?)

여기에서도 끝이 안 난다. 일단 어떻게 해서 반나절 시끄럽게 준비해 팝업을 올렸다. 근데 또 문제가 있다. 모바일로는 팝업이 깨져 보인다. 또 난리가 난다. 모바일 버전을 만지고 시간은 또 흘러간다.

중간 중간 프로세스 보고를 하곤 했지만, 외부 미팅에 나간 CEO가 모바일로 체크하다 엉터리 같은 해명문 팝업이 뜬다며 전화로 홍보임원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 실행 명령이 떨어지면 이렇게 실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니 문제다. 뭐든 제대로 하려면 한나절이 부족하다.

내부에선 준비, 밖에서 보면 침묵

그래서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케이스들을 볼 때 대응 시간을 많이 체크한다. 해당 기업이 상황 발생 이후 빠르게 잘 대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조직의 위기관리 역량이 발전돼 있다는 의미다. 실행준비도 최대한 사전에 가이드라인과 훈련으로 완성돼 있다는 의미다. 불필요하게 왈가왈부하는 시간을 평소에 미리 제거해 버렸다는 의미다. 빠르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내부에서는 이렇게 뛰어다니고 어느 한 명 할 것 없이 패닉에 빠져 여러 활동들을 하는데, 밖에서 보면 해당 기업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이게 문제다. 내부에선 준비라 부르지만, 밖에서는 그걸 침묵이라고 부른다.

위기 시 기업들이 타이밍을 놓치고 느리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감지가 늦어서
일선 정보보고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상 병목이 있어서
위기관리 위원회가 의사결정에 시간을 끌어서(경험 부족 등)
실행 그룹이 여러 문제로 실행까지 준비시간을 과도하게 소모해서
VIP가 침묵해서
초기에 침묵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종종 위기관리 매니저들이 하는 질문이다. “대응이 완벽하지 않아도 빠른 게 낫나요?” 근데 이건 전략의 품질에 대한 이슈다. 신속성에 대한 측면에서는 일단 최초 대응이 빠르면, 수정 대응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니 형편없이 늦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대응이 완벽에 가까우면서 빠른 게 당연히 최고지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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