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소통의 빈자리, ‘웜 커뮤니케이션’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1년] 소통의 빈자리, ‘웜 커뮤니케이션’ 필요하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4.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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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높고 사회는 분열…소통의 기형논리, 어떻게 풀어야 하나

[더피알=강미혜 기자]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꽃다운 아이들과 함께 수많은 승객이 희생됐다. 구조과정은 우왕좌왕했고 사태수습은 지지부진했다. 우리사회 곳곳에 퍼져있던 적폐와 불신, 불통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사고의 충격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참사 1년. 세월호가 묻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 세월호 참사 1년을 돌아보며. 사진: 뉴시스

“안전에만 치우치다 보니 소통은 후순위로 밀렸다. 도무지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방향성이 잘못됐다.”

원로학자 서정우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월호 참사 1년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사회적 안전장치나 정책 수립에 있어 소통이 들어갈 중요한 자리가 빈 채 방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큰 재난 이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소통이 일순위로 고려돼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의 의사소통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그 점이 가장 큰 불만”이라고 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세월호 사고가 참사로 비화된 데에는 소통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사고 직후 선장은 현장을 떠났고, 구조를 진행하는 정부부처 간 불협화음은 컸으며, 민관 구조 체계도 부실했다. 사고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피해가족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 역시 미흡했다. 위기관리의 총체적 실패라는 평가가 나왔다. (관련기사: 세월호 침몰, 10대 위기관리 실패 요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후속조치로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국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관련기사: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의 명과 암)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화된 변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 무엇보다 국민에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소통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 내 소통체계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정비되고 달라졌다고 하는 것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개선방안은 서류상에만 있을 게 아니라 실제 작동될 정도로 훈련이 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세월호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상황보고를 받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대책, 안전만 있고 소통은 빠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는 소통의 목마름을 절감하면서 불통이 구조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고 있다. 국민적 아픔은 이념 논쟁으로 변질돼 버렸고, 뿌리 깊은 진영논리에 갇혀 세월호란 키워드 자체가 사회 갈등의 여진으로 남았다.

정부를 향한 세월호 피해 유가족들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월호 문제의 고충을 토로했는가하면, 바다 건너 미국에서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세월호 선체 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반대적 시각에선 세월호 유가족의 ‘이기심’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는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양분된 사회적 여론이 극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단식농성 앞 ‘폭식투쟁’, 둘로 나뉜 대한민국의 민낯)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갈등인식지수는 8.57점으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월호 영향이 컸다.

가장 심각했던 갈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52.7%)이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요구 관련 갈등’을 꼽았다. 이와 관련,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세월호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소통을 왕성하게 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은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소통의 기형논리가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솟대가 세워져 있다.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정직한 소통에 대한 요구와 그 필요성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휴머니즘적 소통’의 구현이다. (관련기사: 불신의 시대, ‘공감커뮤니케이션’이 절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소통이 생명까지 살릴 수 있다는 점을 절감하지 않았느냐”며 “사회 전체적으로 웜(warm·따뜻한)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바라봤다.

웜 커뮤니케이션의 반대는 쿨(cool) 커뮤니케이션이다. ‘쿨하다’는 말이 멋지고 근사해 보인다는 뜻으로 통용되면서 최근 몇 년 간 쿨 커뮤니케이션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아픈 시간을 지나며 나와 관련이 있고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사소하지만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시선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달라진 톤앤매너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가족코드가 각광받는 것도 이같은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가족을 소재로 한 바이럴 영상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아빠의 무거운 어깨’ ‘엄마표 집밥’ ‘취준생 자녀 향한 부모의 위로’ 등 각양각색으로 가족 사랑을 느끼게 하는 리얼리티 영상이 봇물을 이룬다. (관련기사: 가족, 두 글자가 주는 깊은 울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팍팍한 일상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봉기 휴머니스트 마케팅 리서치 대표는 “세월호가 주는 강력한 잔상에 지난 1년간 국민들이 많은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보루로서 가족의 의미를 읽으려는 시도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평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조심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부담이 큰데, 오락적 요소보다는 국민적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도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는 가족을 소재로 채택했을 것이라는 견해다.

실제 세월호 참사는 커뮤니케이션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1주기를 전후해 PR·마케팅 활동 또한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지난해처럼 세월호 충격파가 직접적으로 닿진 않아도, 애도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反)하는 ‘요란한’ 활동은 배제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마케팅 시기를 아예 4월 이후로 미루는 것을 고려하는 기업들도 상당수로 파악됐다.

▲ 서울도서관에 마련된 '4·16 세월호 참사 기억, 별이되다' 전시장을 한 시민이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광고 등 마케팅 활동이 확 움츠러들진 않을 것이라 본다”면서도 “너무 펀(fun)하거나 신나는 콘텐츠들은 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기업PR의) 톤앤매너(tone&manner)를 좀 진중하게 가져가려 한다”며 “막 튀거나 노출이 많은 활동은 안 하려 하고, 하더라도 시기를 늦춰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 홍보임원 또한 “홍보 콘텐츠적으로 크게 바뀌는 건 없지만 시기는 미루려 한다”고 언급했다.

최소 5년간 4월 마케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통상 4월은 신제품 출시와 새로운 마케팅 활동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봄 시즌에 어울리는 밝고 상큼한 이벤트·프로모션도 많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4월은 세월호를 추도하는 ‘경건한’ 기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와 관련, 한 대기업 관계자는 “올해도 그렇고 매년 이맘때면 세월호 참사의 상흔으로 떠들썩한 홍보는 못하게 될 것”이라며 “4월을 피하는 쪽으로 마케팅 론칭 시기가 아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나 여론을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자랑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홍보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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