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은 ‘철저한 반성’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은 ‘철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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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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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이사

[더피알=고진광] 살아가면서 기념해야할 만한 것들이 생기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기념해야할 일들 중에는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안전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박근혜정부 2년차에 접어들었던 지난해, 경주 마리나리조트의 대학생 오리엔테이션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국가적 불신을 가질 만큼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관심은 ‘안전’보다는 ‘복지’였다. 지금도 무상복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후 공약이었던 복지가 어느 정도나 실현되느냐에 집중돼 있었다.

▲ 서울도서관에 마련된 '4·16 세월호 참사 기억, 별이되다' 전시장을 한 시민이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그러던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의 가슴을 저미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눈앞에서 뻔히 쳐다보며 놓쳐버린 안타까운 목숨들…

정부는 단 한명도 살려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생계수단인 화물차를 수장시킨 파란바지 아저씨는 20명의 학생을 구해내고도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하지만, 특위 활동도 제대로 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은 물론, 보상 문제 역시 미집행 상태다. 아직 찾지 못한 7명의 시신과 선체 인양 작업 등 미해결 과제만 산적해 있다.

총체적 부실과 책임전가로 불거진 두 참사

2014년 4월 16일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세월호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두 사고 모두 비윤리적 경영과 부실한 구조변경으로 인한 인재라는 점, 사고원인으로 지목된 경영자나 실소유주에 대한 처벌은 이뤄졌으나 후속처리는 미흡하다는 점, 사고처리에 정부보다 민간인들의 성과가 더 컸다는 점, 그리고 사고 당시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로 우리사회의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까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설된 국가안전처의 역할과 성과는 아직 논할 때가 아니긴 해도, 오랜 기간 현장에서 구조경험이 있는 전문가 영입이 미흡한 점 등 최근까지 일어난 사건사고 등을 고려해보면 이미 그 기대가 반감된 것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의 총체적 부실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도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닮은꼴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무리한 설계변경과 부실시공, 그리고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해 주거용지를 상업용지로 용도 변경한 것 등 대표적인 비리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일어난 참사로 밝혀졌다.

세월호 사건 역시 노후 선박에 설계구조 변경으로 인한 복원력 상실이 사고의 주 원인으로 밝혀졌고, 일명 구원파로 대표되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책임전가가 뒤를 잇더니, 정관계 유착을 철저히 밝히겠다는 검찰의 의지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 우리나라의 총체적 부실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세월호 참사와 상품백화점 붕괴사고는 닮은꼴이다. 1995년 전쟁터를 방불케 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사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으로 닮은 점은 사고 당시 기여한 민간활동가에 대한 처우다. 얼마 전 세월호 일반인 승객으로 소방호스를 이용해 20여명을 구조한 일명 파란바지 아저씨가 자해를 시도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에 의상자로 신청했으나 인정되지 않았고, 생계수단이었던 화물차는 세월호와 함께 수장됐고, 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운전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의 긴급구호는 일시적이었고, 생계가 힘들어졌지만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풍백화점의 민간인 구조자들 역시 같은 처지인 경우가 있다. 필자는 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민간인 심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501명이 사망했다. 당시는 재해재난구조 시스템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때였기에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재난사고에서 팔 걷고 나선 민간구조자의 활동은 눈부신 성과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그 민간구조봉사자들의 생활은 세월 속에 묻혀 잊혀져버렸다. 당시에 얻은 심신의 상처는 생애전반에 후유증으로 남아 생계곤란과 사회부적응으로 고생하고 있다. 본인이 아는 동료 중 한명은 10년 넘게 보건복지부에 의상자 신청을 내다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속된 생활고로 최근 자살했다. 국가적 재난에서 구조자로 참여했지만 개인의 희생은 철저하게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성 회복과 직업윤리 교육 절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이후, 이제 안전사고의 수위는 인류멸망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 문제, 자꾸 불거져 나오는 불량부품 문제, 관리자들의 뇌물수수 고리 등이 밝혀지고 있다. 원전 수출국 대한민국이 원전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수조원대 이르는 방산비리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선제공격 엄포를 놓는 북한은 일촉즉발의 위험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 장성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불신의 시대를 부르는 것 같다. 고가의 장비부터 사병들의 군수품까지 부정부패의 대상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대형 참사에서부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군 내부 비리, 산업 현장의 각종 안전사고 문제 등은 모두 그릇된 직업윤리 의식을 가진 ‘사람의 문제’였다.

우리나라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면서 화장실이나 버스를 기다리며 한줄서기를 하고, 어려운 이웃을 발 벗고 나서 도와주는 자원봉사가 활성화되는 등 개인윤리는 많이 성장했지만, 아직도 직업윤리에서만큼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직업에는 그 직업에 맞는 윤리가 있다. 전문가일수록,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수록 윤리의식은 더욱 투철해야한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던 세월호 선장이 자신의 직분에 맞는 역할만 제때 제대로 했어도 희생자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제일 처음 도착한 해경구조대가 좀 더 적극적이었더라도 해양경찰청 해체라는 극단적인 처방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시키는 우리나라에서 윤리교육의 중요성은 국·영·수 주요 과목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윤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게 만든 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다.

인권존중과 인간관계의 소중함, 공동체 질서를 지키기 위한 개인의 역할, 직업 종사자로서의 자긍심 등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 모두가 ‘윤리’의 영역이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이런 교육이 있는가 없는가는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리라고 본다.

이제 국가기본 정책에 인간성 회복을 근간으로 하는 윤리 교육, 특히 직업윤리 교육이 선행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문 자격증이 있는 교육과정은 물론, 모든 직업 종사자들은 직무교육 뿐만 아니라 반드시 일정시간 이상의 직업윤리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구축해야할 것이다. 학령기에 맞는 윤리교육과 직무 교육과 연관된 직업윤리교육이 병행된다면 현재 우리나라가 가진 불신의 골은 점차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1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려본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객실 안에서 꼼짝하지 않던 착한 아이들을 무책임한 어른들이 하늘나라로 보냈다. 팽목항을 수놓은 그리움,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모두가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양심이다. 각자 제 자리에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을 때야 비로소 행동하는 양심은 나타날 수 있다. 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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