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세월호 1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4.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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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재난보도준칙…‘냄비 저널리즘’ 행태 여전

#. 세월호 1주기,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경향신문)
#. 국가 개조 외친 ‘대한민국호’ 어디로 가고 있나 (세계일보)
#. 세월호 1년…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중앙일보)
#. 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무엇을 했나 (한겨레)
#. 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한국일보)

[더피알=강미혜 기자] 세월호 1주기를 맞은 4월 16일 주요 언론은 각종 기획기사 및 사설을 통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개조를 외쳤지만 변한 것은 없고, 국가안전망 구축이나 안전의식 수준도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1년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화두가 빠졌다. 바로 언론문제다.

사고 초기 ‘전원구조 오보’를 받아쓰기해 혼선을 키운 언론들. 이후로도 자극적·선정적 보도를 일삼으며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락했다. 사회적 질타와 함께 언론계 내에서도 유례없는 눈물과 ‘반성합니다’는 고백이 있었다. (관련기사: ‘기레기’ 오명 벗자는 기자들의 외침, 언론계 안팎 파장)

▲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가족이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항의하던 모습. ⓒ뉴시스

하지만 세월호 1년이 지난 지금, 언론계를 향한 기레기라는 비아냥거림은 여전하다.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하는 언론 역시 달라진 게 없고, 어느 면에선 언론 문제가 더 악화됐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졌고, 일부 일탈 행위에 대해선 (언론계) 내부에서의 제재, 사회적 비난 등이 가해지고 있지만 언론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국장 역시 “있으나 마나 한 재난보도 준칙과 온갖 선정적 보도, 사건 전후로 떠들썩할 뿐 쉽게 망각하고 다른 이슈를 찾아 몰려가는 (언론의) 하이에나 근성 역시 변화가 없는 상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드러난 보도 행태에 대한 성찰을 담아 재난 시 언론의 취재·보도 기준을 담은 공동 준칙을 마련한 바 있다. (관련기사: 언론단체 공동 ‘재난보도준칙’ 선포)

세월호 참사 당시 지적됐던 언론사의 재난 취재·보도 관행을 지양하도록 △비윤리적 취재금지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취재원에 대한 검증 △선정적 보도 지양 등을 규정화한 것이다. 언론단체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첫 재난보도준칙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언론계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에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실제 지난해 말 <한겨레>가 주요 신문·방송사 10곳의 2~5년차 현장 기자 10명을 대상으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절반이 세월호 전후 취재 현장이나 보도 행태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재난보도준칙을 제대로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실효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처장은 한국 언론계에 만연한 ‘냄비 저널리즘’적 행태를 질타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 1년간 세월호 외에도 많은 안전사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언론은 양은냄비처럼 들끓어 잠깐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다시 안전보다는 경제성과 규제의 불편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세월호 1년을 평가하면서 기자가 기레기라고 비판받았던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임시휴교 후 첫 등교일에 취재 자제를 요청하는 모습. ⓒ뉴시스

일선 기자들의 자성에도 불구하고 취재·보도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은 언론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단일 사건만을 놓고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 저널리즘 가치의 훼손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상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자극적·선정적 보도에 관한 문제의식은 존재했다. 센세이셔널리즘, 클릭저널리즘 현상에 대한 탄식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다만 오랫동안 내재되고 축적돼 온 것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들에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뿐이다. (관련기사: “대한민국 언론계, ‘선도 언론’이 사라졌다”)

김성해 교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일이 터지면 처음 보는 일인냥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은 과거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던, 반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원인에 대한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언론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양질의 공적지식 제공, 성숙한 환경감시, 공정한 중재자, 책임 있는 규범의 관리자’라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단순한 책임을 넘어 사회가 기대하는 것에 대한 선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정필모 KBS 보도위원은 언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과 내부의 뉴스 제작 시스템의 두 가지 문제를 짚으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위원은 “미디어산업에 시장논리가 팽배해지면서 매체 간 생존경쟁이 치열해졌다. 저널리즘 가치나 원칙보다는 수익창출이 언론의 목표가 돼버린 지 오래”라며 “언론의 이같은 가치 전도가 심화되면서 진실 추구를 위한 심층 취재 등은 등한시되고, 얄팍한 선정적 기사들만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세월호 참사 때 불거진 언론 문제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 위원은 “기자들도 (취재처 및 취재원 얘기를) 무조건 받아쓰는 ‘발표저널리즘’적 행태를 여전히 보이고 있다”고 꼬집으며 “(사안의) 정확한 의미를 독자, 시청자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기자가) 비판적 시각에서 비틀어 보고 전체 맥락을 고려해 균형감 있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냈다. (관련기사: ‘질문 없는’ 회견에 대중은 왜 분노하는가)

결국 기레기가 확대·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언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적어도 선도 언론만큼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뉴스 소비자인 독자, 시청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이 언론이 잘못되면 어떤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 매우 절실하게 느꼈다”고 보면서도 “다만 그 대안으로 어떤 언론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까지는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며 국민 개개인이 언론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국민이 언론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정필모 위원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강조했다. 언론 이용자를 대상으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독해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정 위원은 “특히 종편이 생겨나면서 극단적 정치 이데올로기와 상업주의가 결합해 국내 언론환경은 더욱 황폐화됐다”며 “미디어 수용자들 의식이 향상돼 덜 상업화된 공적 매체(공영방송, 연합뉴스 등 공적 소유 구조 체제)만이라도 저널리즘의 가치, 공적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감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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