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세상과 소통
한 땀 한 땀 세상과 소통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4.22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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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헝겊인형 작가 김옥진(신소금)

조각조각 고운 빛깔의 천이 봄을 닮았다. 한 땀 한 땀 놓은 바느질은 엄마 손길처럼 야무지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탄생한 작품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손때 묻은 인형이 생각난다. ‘신소금’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헝겊인형 작가 김옥진의 바느질 놀이터는 그래서 정겨웠다.

▲ 작업실에서 바늘을 들고 앉아 있는 김옥진 작가. / 사진촬영: 성혜련 기자

[더피알=강미혜 기자] 소금이 시다는 건지, 새로운(新) 소금이라는 뜻인 건지. 기자의 멋없는 풀이와는 거리가 먼, ‘밝은 비단을 펼치다’라는 예쁜 뜻의 신소금이다. 바느질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비추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이름 붙였다.

작가에게 바느질은 따뜻함이다. 일러스트를 하다 11년 전 갑작스레 바느질로 업의 궤도를 튼 것도 특유의 따뜻함 때문이었다.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주는 위로, 위안에 매료됐다.

“당시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는데요, 우연히 조각보를 보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조각보가 주는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에 규방공예를 배우게 됐죠. 자연스레 천연염색, 누비도 배우고… 그렇게 바느질을 계속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작품은 대부분 일상을 소재로 친근함을 준다. 어떻게 보면 두 아이의 엄마라는 ‘본분’에 충실한 결과다. 그 스스로도 작가라기 보단 엄마이고 생활인이라고 생각한다.

“더러는 작업하는 분들이 아이들이나 집안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데요. 그건 좀 위선이라고 봐요. 어차피 내 작업이라는 건 나의 삶, 일상, 가족,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게 솔직하고 정직한 거잖아요. 너무 거창하게 다른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건 포장이고 껍질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헝겊인형 작가에게 헝겊은 없어선 안 될 필수 재료일 터. 대부분 직접 조각조각 이어붙이고 천연염색해서 신소금스럽게 빛깔을 입힌다. ‘다정한 헝겊’이니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헝겊을 좋아하는 이유가 일단 소재가 굉장히 다정하기 때문이에요. 너무 비싸지도 않고 까다롭지도 않잖아요. 옷으로 입다가 작아지면 인형으로 만들면 되고, 커튼을 하다가 싫증나면 식탁보를 만들 수도 있어요.”

▲ 김옥진 작가의 작품들. /사진촬영: 성혜련 기자

‘다정한 헝겊’이 주는 따뜻함

차이가 있다면 재활용 원단이나 낡은 청바지, 폐현수막 등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실제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 작품들이 많다. 쓸모없어져 버려진 천들이 아기자기한 인형으로, 생활소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거리를 보면 현수막들이 넘쳐나잖아요. 몇 년 전 구청에 문의해 폐현수막을 모아둔 창고를 가봤는데요,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어요. 정말 새것인데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들을 보면 아깝고 안타깝죠. 거창하게 환경운동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계속 노력해보려고요.”

자연의 빛깔로 물을 들이고,
꼼지락 꼼지락 조각천을 바느질하며 놉니다
-신소금의 하늘집공작실-


개인 블로그(blog.naver.com/sinsokum)의 소개말이다. 바느질을 시작함과 동시에 11년째 운영하는 블로그는 그의 바느질 역사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첫 번째 창구다. 실상 김옥진이란 본명보다 신소금이라는 블로그 닉네임으로 더 알려졌다. 그만큼 블로그는 바느질 작가로서 여정의 동반자다.

“일기장처럼 하루하루 써오던 기록이 모여서 지금의 블로그가 됐어요. 요즘은 친한 친구들마저 ‘소금아’라고 부를 정도로 저도 신소금이라는 닉네임에 익숙해졌고요. 특히 블로그를 통해 전시요청이나 제작의뢰, 강의의뢰 등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일기장이면서도 일종의 포트폴리오 성격도 갖고 있어요. 꼭 블로그가 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정리하고 공감대가 비슷한 이웃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최근엔 늦둥이 육아에 바빠 블로그 활동을 예전처럼 활발히 하지는 못하지만, 11년 넘게 이웃으로 소통하고 인연을 만들어간 많은 관계들은 큰 자산이다.

블로그로 세상과 소통, 공익 더하기

▲ 김옥진 작가는 최근 어르신들의 보행 안전을 위해 재능기부 차원에서 ‘안전 장바구니’를 만들었다(위). /사진제공: 김옥진

블로그로 사회와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익활동의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2011년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전시와 강의를 맡았고, 헤비타트 나눔바자에도 참여했다.

“야외에서 인형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지만 준비에서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참 설레고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좋은 뜻으로 하는 행사들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늘 뿌듯하고 좋아요.”

최근엔 ‘라우드 프로젝트(LOUD project)’와도 함께 했다. 어르신들의 보행 안전을 위해 재능기부 차원에서 ‘안전 장바구니’를 만들었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노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백(bag)이다. 아이디어는 심플하다. 야광색 가방으로 어두컴컴한 밤에도 눈에 확 띄게 한 것.

“저희 엄마도 매주 삼일은 손주 보느라 저희 집에 와주시는데요.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반찬이나 여러 가지를 가득 들고 오세요. 쇼핑백이나 비닐봉지, 때론 보자기에 김치통을 싸들고 버스를 타고 오신 적도 있어요. 그런 상황들이 떠올라서 어르신들이 무언가를 들고 다니셔야 한다면 좀 더 눈에 띄고 예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형광색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괜찮나요? 저희 엄마와 시어머니께도 선물해 드릴 예정이에요.(웃음)”

디자인은 에코백과 백팩 두 가지다. 에코백은 노인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비닐봉지 형태에 묶는 보자기 느낌을 살렸고, 백팩은 최대한 간결하게 쭉 잡아당기면 등에 멜 수 있도록 했다. 안전조끼 소재로 가시성을 높이면서도 부분적으로 폐현수막을 사용해 가치를 더했다.

‘바느질하며 논다’는 그의 말마따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뚜렷하지 않다. “물 흐르는 대로 하루하루 원하는 것을 하다 보면 그게 어느 틈엔가 쌓여 있더”라며 계속해서 편안하게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일단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책 작업에 열중할 거고, 새로운 시도들도 많이 해볼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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