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혼란, 언론은 책임 없나
메르스 혼란, 언론은 책임 없나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6.0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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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뷰징, 실검낚시 여전…‘감염병 보도원칙’ 준수는 딴나라 얘기

[더피알=강미혜 기자] 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게 된 데에는 대국민 소통이 미흡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초기 상황을 통제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보건당국이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으면서 유언비어를 키운 꼴이 됐다. 유사시 정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화(禍)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 (자료사진) 지난 5월 30일 열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관련 긴급회의에서 취재진이 질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한 국민적 혼란에 대해선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분별한 경쟁적 보도는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됐고, 자극적 타이틀을 앞세운 기사들로 지나치게 공포감을 조성한 측면이 있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이같은 언론 모습은 세월호 참사 때와 꼭 닮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사회는 속보지향, 견강부회, 침소봉대하는 언론들의 보도 관행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깨달았다. (관련기사: ‘기레기’ 외침 6개월,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반성의 의미로 언론단체가 공동으로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메르스 사태를 겪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염병 보도원칙’이 있지만 원칙이 지켜지진 않고 있다.

감염병 보도원칙은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으로 제정했다. 감염병에 대한 보도는 독자나 시청자들이 건강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경우엔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감염병 보도원칙이 준수되기는커녕, 어뷰징(동일 기사 반복 전송)과 ‘실검 낚시’라는 언론계의 고질적 병폐가 여전히 재연되는 모습이다.

실제 감염병 보도원칙의 세부 내용과 정확히 반(反)하는 언론보도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병 보도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사실이 전달되지 않도록 과도한 보도 경쟁을 자제한다.

▲ 메르스 관련 포털사이트 뉴스 화면.

→ 6월 9일 오후 5시 기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용인메르스’가 오르자 갖가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동일한 매체에서 용인메르스 관련 ‘새롭지 않은’ 기사를 낸 경우도 상당히 많다.

· 감염병 보도원칙 -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추측, 과장, 확대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 메르스 감염 임산부 관련 한 언론보도 인터넷 화면.

→ 한 매체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여성 환자가 임산부로 판명됐고, 그가 해당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 장기 입원한 환자라는 사실에 근거해 ‘산부인과 병동도 뚫렸을’ 가능성에 대해 단독보도했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현재 질병관리본부에 확진검사를 요청해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 메르스 관련 포털사이트 뉴스 화면.

→ 하지만 해당 보도가 나간 이후 갖가지 자극적 타이틀을 앞세워 임산부의 메르스 감염 위험성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봇물을 이룬다. 동일한 매체에서 비슷한 기사를 중복 송고하는 어뷰징 스킬 역시 눈에 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 가능성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명확하게 보도해야 하며,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 메르스 관련 언론보도 인터넷 화면.

→ 지난 8일 메르스가 용인, 시흥, 김제, 대전, 부산 등으로 확산됐다는 소식에 한 매체는 ‘인간풍수 창시자’라는 인물을 인터뷰해 메르스가 8월까지 갈 것이라는 ‘예언’을 보도했다. 또한 이 매체는 ‘따뜻한 바닥에서 자라’ ‘얇은 긴 소매를 입어라’ 등 그가 전하는 메르스 예방법(?)을 추가로 전하기도 했다.  

· 감염병 보도원칙 - 감염병의 규모,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은 자제한다.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간다.

▲ 메르스 관련 언론보도 인터넷 화면.

→ 충북 옥천군에 거주하는 60대 남성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패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 메르스 관련 언론보도 인터넷 화면.

→ 지역 5곳에 메르스가 확산된 것과 관련해 한 매체는 ‘병원 24곳 명단보니…‘이럴수가’’라는 타이틀로 긴장감을 불어넣었지만, 내용은 ‘이럴수가’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평이한 스트레이트성 기사였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메르스 사태는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핫한 키워드’임에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국민건강, 안전,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슈에 있어선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하기에 감염병 보도원칙은 준수돼야 마땅하다. 이 사실을 몰라서 기사에 반영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안 하는 것인지 모를 언론들을 위해 감염병 보도원칙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는 마무리.
 

감염병 보도준칙

1. 감염병 보도의 정확성

가.  감염병 보도는 현재 시점까지 사실로 밝혀진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  감염병 보도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사실이 전달되지 않도록 과도한 보도 경쟁을 자제한다.

2. 감염병 보도의 일반 사항

가.  감염병 보도는 해당 병에 취약한 집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예방법 및 행동수칙을 우선적, 반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나.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장비 등을 갖춘 의료기관, 보건소 등의 기관과 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 감염병 관련 전문 용어나 의학적 용어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여 혼돈이 없도록 해야 한다.

3. 신종 감염병의 불확실성 관련 보도

가.  발생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이 불확실한 신종 감염병의 보도는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달해야 한다.
나.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추측, 과장, 확대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4. 감염병 관련 연구 결과의 보도

가.  감염병 관련 새로운 연구결과를 보도할 때는 학술지를 발행한 기관이나 발표한 연구자의 관점이 연구기관, 의료계, 제약 회사의 특정 이익과 관련 이 있는지, 정부의 기존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  감염병 관련 의학적 연구과정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결과가 전체 연구과정 중의 단계적 결과물인지, 최종 연구결과물인지 확인하여 보도해야 한다. (예: 임상실험 중인 약인지, 임상실험이 끝나고 시판 승인을 받은 약인지 명확히 구분하여 보도)

5. 감염 가능성에 대한 보도

가.  감염 가능성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명확하게 보도해야 하여, 혼란을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나.  감염의 가능성이나 증가율, 사망예상자를 비율로 제시하는 경우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 수치를 함께 전달해야 한다.
다.  감염의 규모를 숫자로 전달하는 경우 그 단위가 사건인지, 사례인지, 감염인의 수인지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6. 감염인에 대한 보도

가.  감염인의 신상에 관한 보도는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 해야 한다.
나.  감염인에 대한 보도는 환자 및 감염자, 가족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즉, 환자 및 감염자, 그리고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 감염인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도에 활용하는 경우 특히 주의한다.

7. 감염병 보도에서 주의가 필요한 표현

가.  감염병의 규모,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은 자제한다.
▶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간다.
▶ 기사 본문에 나타난 과장된 표현 사례: “의학계에서는 이번의 ‘슈퍼박테리아’ 발견이 재앙의 전조라고 보고 있다.” “우려했던 ‘박테리아 대란’이 현실화한 것이다.”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가 등장, 전 세계를 두려움에 몰아 넣고 있다.” “항생제가 듣지 않아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다제내성균이 과연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의 안위를 위협하게 될까.”

나.  감염병 증상에 대한 자극적인 수식어의 사용을 자제한다.
▶ 기사본문에 나타난 자극적인 수식어 사용 사례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뻥뻥 뚫리면서 전신마비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대유행할 것이란 경고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 다른 감염병과 비교하는 표현은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 기사본문에 나타난 부적절한 비교의 사례: iCJD의 경우 “광우병과 유사한 치명적 전염병인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즉, CJD 감염 사례가 국내에서 확인됐습니다.” “광우병처럼 뇌에 스펀지 같은 구멍이 뚫리는 전염병인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이른바 ‘CJD’에 걸려 숨진 사례가 국내에서 공식 확인됐습니다.”

* 자료제공: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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