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여론전 패턴, 10년전 ‘먹튀’ 소버린과 ‘판박이’?
엘리엇의 여론전 패턴, 10년전 ‘먹튀’ 소버린과 ‘판박이’?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7.06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송 제기·웹사이트 구축·국내 PR에이전시 협업 등 비슷한 행보

[더피알=문용필 기자]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이에 ‘반기’를 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양측의 여론전도 치열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엇의 여론전 행보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된 SK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소버린자산운용(이하 소버린)의 모습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버린은 2년여간의 분쟁기간이 지난 후 자신들이 소유했던 SK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손을 뗐다. 이 과정에서 소버린은 8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려 ‘먹튀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자료사진) 삼성물산 측 김용상(왼쪽) 변호사와 엘리엇 법률 대리인 최영익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뉴시스

우선 소버린과 엘리엇이 모두 한국의 대기업을 상대로 ‘개혁적 색채’를 앞세워 분쟁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기업과 오너가에 대한 반(反)정서가 만만치 않은 국내 현실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좋은 명분이라는 분석이다.

SK-소버린 분쟁에 정통한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소버린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SK 지분을 취득했다고 했는데, 자신들 기준에서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고 나갔다”며 “결과적으로 투기자본이득만을 노린 펀드였다는 것이 스스로 입증된 셈”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마따나 과거 소버린은 SK 지분 확보에 대해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한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리더십의 모범사례가 있어야 한다”며 “SK의 경영진에 제시 하고자 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에는 계열회사와의 거래에 관한 기업지배구조 강화, 기업윤리 헌장, 이사회의 구성 및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의 역할, 감사위원회의 구성과 감시역할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혁 명분’ 뒤 불거진 ‘먹튀 논란’

소버린이 내세운 이같은 명분은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한 시민단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30년 동안 하지 못한 재벌개혁을 외국자본이 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며 “지금 삼성에 반대하는 이들이 엘리엇을 지지하는 것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봤다.

실제 엘리엇은 지난달 26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잠재적인 지배권의 승계작업을 위해 삼성그룹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며 이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개편은 적절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이 없는 상황, 또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명확한 희생에 기초해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외환은행 사태를 통해 해외 ‘먹튀 자본’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론스타 역시 장밋빛 명분을 내세워 자사에 유리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했었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 한국을 자사의 아시아허브로 구축하기로 했다며 “외환은행을 한국 최고의 은행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3년이 되지 않아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추진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2조원 이상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음에도 매각지연으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식을 확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사 입장을 발표해 이슈화를 꾀한 점도 엘리엇과 소버린의 닮은 모습이다. 소버린은 지난 2003년 4월 초 SK의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같은 달 중순께 보도자료를 내고 SK 측에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소버린이 확보한 SK지분은 14.76%였다.

국내 PR회사와의 협업…외국계 자본 논리 강화

일련의 과정에서 국내 PR에이전시가 외국계 자본과 협업하고 있다는 점 또한 공통점으로 지적된다. 이번 합병분쟁과 관련해 엘리엇의 국내 홍보는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가 담당하고 있다. 뉴스컴은 과거 론스타의 PR대행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R업계에서는 외국계 클라이언트들과의 업무경험이 많은 회사로 꼽힌다.

가처분 신청 등의 소송전을 벌였다가 기각된 것도 공통점이다. 소버린은 2003년 12월 SK를 상대로 의결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이듬해 10월에는 사측에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했다가 부결되자 11월에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허가 신청을 제출했다.

엘리엇의 경우 지난달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총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합병비율은 법에 따라 산정돼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소송전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통한 여론 환기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지난달 18일 자신들의 입장을 게재한 웹사이트(www.fairdealforsct.com)를 개설했다./사진:해당사이트 캡쳐

웹사이트 구축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비슷하다. 엘리엇은 지난달 18일 이번 분쟁과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게재한 웹사이트(www.fairdealforsct.com)를 개설했다. 소버린도 SK와의 분쟁당시 한글판 웹사이트 구축에 나선 바 있다.

이처럼 개혁이란 모토는 번번이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기업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계 자본의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패하고 대리인 허위공시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소 수면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듯하지만 개혁 명분을 내세운 엘리엇의 여론전은 주주총회 이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