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사퇴에 김태호PD는 왜?
유승민 사퇴에 김태호PD는 왜?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07.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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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뷰징 천태만상] 재탕·삼탕은 기본, ‘예언일보’까지 등장

[더피알=안선혜 기자]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실시간검색어(이하 실검)’는 네티즌들의 실시간 관심사를 반영하기 위한 하나의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포털에 빼앗긴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 실검이 제대로 작용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매체들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로 자꾸만 어뷰징(트래픽 증가를 위해 실시간 검색어를 토대로 유사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행위)에 손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죠.

언론들은 뉴스생태계의 수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원인으로 포털의 실검 정책과 방임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어뷰징 발생이 실검을 서비스하는 포털의 잘못인지, 실검을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언론의 잘못인지를 놓고 세우는 대립각은 쉬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갈수록 어뷰징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요, 꺼진 이슈도 심심하면 다시 들추는 생뚱맞음부터 예언자가 되길 스스로 자청하는 듯한 모습까지 언론사들의 기막힌 어뷰징 천태만상을 살펴봤습니다.

▲ 지난 3일 포털에서 ‘김태호’로 검색 시 노출된 기사들. 이날 실검의 주인공인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 외에 무한도전 김태호pd를 소재로 쓴 기사들이 뉴스 섹션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동명이인으로 이슈 올라타기

지난 3일 오전부터 포털은 ‘김태호’ 석 자로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전날인 2일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사퇴 압박을 가하면서인데요. 

김 의원의 발언이 불씨가 돼 이날 회의가 웃지 못 할 촌극으로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회의를 급히 종료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김 대표를 따라 나서던 김학용 당 대표 비서실장은 김 의원을 향해 육두문자를 쏟아냈었죠. 당연히 언론은 대대적으로 해당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3일 포털 뉴스 검색에는 정치인 김태호와 함께 무한도전 김태호PD가 나란히 노출되곤 했습니다. 김태호 PD의 달라진 외모부터 패션, 고민 등을 다룬 기사들이 줄지었는데요. 무한도전 1월 방송분 요약이거나, 김 PD가 4월에 올린 트위터 사진, 지난 2013년 썰전에서 가진 전화인터뷰 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트래픽을 높이고 싶어도 시점도 지나고, 상관도 없는 인물의 기사를 재탕하시는 건 좀….

▲ 모 중앙일간지에서 보도한 배우 김현중 입대 소식. 기사 입력 시간이 김현중이 실제 입대한 날 보다 하루 전인 5월 11일로 나와있다.

어머, 돗자리 까셔야겠어요~

뛰는 포털 위에 나는 언론사 있다? 어뷰징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보니 포털도 나름대로 이를 막아보고자 노력 중에 있습니다.

최근 도입한 것이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클러스터링’ 방식인데요, 여기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먼저 쓴 기사를 가장 위에 배치되도록 하다 보니 이를 알아차린 몇몇 언론들이 꼼수를 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미 포털에 송고됐던 기사를 새 이슈에 맞춰 수정해서 다시 전송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사건이 발생하기도 전에 기사가 입력된 것으로 나오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관련해 언론사의 페이지뷰 경쟁 탓에 기사작성 시간까지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가령 배우 김현중이 입대하던 날(5월 12일) 전송된 한 기사는 전날인 5월 11일 오전 10시에 입력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 관련 기사가 작성된 건 12일이지만, 기사 입력 시점만 보면 이들은 김현중의 입대를 예언한 셈이죠.

지난 달 10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을 당시에도 모 스포츠신문은 사건 발생 9일 전에 이미 해당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돼있기도 했습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국무총리 후보 내정 시에도 발표시간은 11시였으나, 11시보다 앞서 보도했던 매체들도 있었습니다. 실제 기사 전송은 11시 이후였으나, 11시 이전에 전송했던 기사를 수정해 재전송한 것이죠. 이쯤이면 ‘예언일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 송학식품의 대장균 떡볶이가 실검에 오르면서 모 스포츠지가 생산한 기사. 포털의 클러스터링 검색결과에서 다른 뉴스의 하단에 묶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송학식품 전 대표의 투신 소식을 뉴스로 다시 다뤘다.

때 되면 묵은 김치 꺼내듯

최근엔 송학식품이 대장균과 식중독균이 검출된 떡볶이를 재포장해 유통시킨 혐의로 온라인 공간이 한창 시끌벅적했습니다. 지금도 관련 뉴스는 계속 나오는 상황인데요, 이 와중에 지난해 투신자살한 송학식품 전 대표의 기사도 눈에 띕니다.

성호성 송학식품 회장의 투신 관련 기사는 이미 지난해 5월 상당수 쏟아져 나왔었는데요.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재탕되고 있지만, 당시 기사와 달라진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전 대표와 대장균 떡볶이의 상관관계를 알아내서 짚어준 것도 아니고, 그저 지난해 5월에 보도됐던 내용을 그대로 실은 모습입니다.

일부 언론사들이 이렇게 키워드만 일치하면 묵은 김치 꺼내듯 옛날 기사들을 꺼내다 그대로 재탕하는 건 위에서 언급한 클러스터링 검색 결과가 도입되면서 나타난 또 다른 양상입니다.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방식 때문에 현재 키워드가 이슈가 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키워드만 동일한 다른 내용의 기사를 급히 만들어내면서 발생한 현상이죠.

연예 기사의 경우 케케묵은 옛일까지 들추는 일이 빈번합니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기승전화보’로 연결되는 케이스가 많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네요.

▲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 앞에서 열린 '깨끗한나라 릴리안 모델 수지 팬사인회'에서 그룹 미쓰에이의 가수 수지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뉴시스

보고, 또 보고, 또또 보고 

지난 3월 23일에는 걸그룹 미스에이의 멤버 수지가 배우 이민호와 열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이현재 다음카카오 대외협력실 차장의 석사학위 논문 ‘포털 뉴스 서비스에서의 기사 어뷰징 사례와 전문가 인식 연구’에 따르면, 연애매체 디스패치의 최초 보도 이후 이날 하루 네이버와 다음에 전송된 관련 기사는 무려 1840개에 달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동일기사를 반복 전송한 것이고요.

동일기사 반복 전송은 대표적인 어뷰징의 한 형태인데요,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제목만 바꿔 계속 포털에 송고하는 고전 수법(?)입니다.

연예 기사에만 이런 어뷰징이 따르는 건 아닙니다. 사회, 정치, 경제할 것 없이 분야별로 특정 이슈가 실검 순위에만 올라가면 타깃이 됩니다.

심지어 지난해 군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모 일병에 관한 기사를 다룰 때도 많은 매체들이 제각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뽑아 어뷰징에 열을 올렸습니다. (관련기사: 28사단 가혹행위 앞에 ‘가혹해진’ 언론) 고인을 두 번 욕되게 하는 이런 기사 장사질, 이젠 그만 보고 싶네요!

▲ 모 스포츠지에서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던 유병재와 조선일보를 키워드로 작성한 기사. 기사 상단과 말미에 키워드를 반복해서 삽입해 놓았다.

네티즌 반응은 약방의 감초

“OOO 너무하네” “OOO 실망이다” “OOO 충격이다”
온라인에 올라온 기사들 말미마다 이런 패턴의 네티즌 반응이 덧붙여진 경우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단순히 화제가 되는 키워드를 네티즌 반응이라며 말미에 집어넣고 의미 없는 키워드를 반복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이 기계화된 네티즌 반응 전달 덕에 난 데 없이 타 언론사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현상까지 발생했습니다.

지난 4월 20일 네이버 실검 순위에는 유병재와 조선일보가 포함돼 있었는데요. 유병재의 경우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 출연한 방송분이 화제가 되면서고, 조선일보는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실검 순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날 모 스포츠신문은 어뷰징의 종합선물세트 격인 기사를 하나 선보였습니다. 약 6개월 전 유병재가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 겁니다.

실제 화제가 된 이유와는 상관없지만, 실검에 올라온 키워드를 두 개나 엮어서 쓴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이 기사 말미에는 다소 낯 뜨거운 사랑 고백이 줄을 잇습니다.

“유병재 조선일보, 대박이네”, “유병재 조선일보, 사랑합니다”, “유병재 조선일보, 파이팅”, “유병재 조선일보, 항상 행복하세요”와 같은 네티즌들의 열렬한 반응들. 이거 진짜 네티즌이 쓴 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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