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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트랜스젠더의 화려한 신고식
65세 트랜스젠더의 화려한 신고식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5.07.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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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캠페인 디코딩] “Call me Caitlyn” 성공요인에 관해

[더피알=임준수] 최근 미국 미디어업계에서 가장 핫한 뉴스는 65살 나이에 케이틀린(애칭 케이트) 제너란 여자로 거듭난 왕년의 미 올림픽 영웅 브루스 제너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5월 30일까지만 해도 케이틀린 제너라고 불리는 유명인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6월 1일자 <베니티 페어(Vanity Fair·미국 연예정보 매거진)>지에 “나를 케이틀린으로 불러주세요(Call me Caitlyn)”라는 커버스토리와 함께 화려한 신고식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 미국 올림픽 영웅 브루스 제너(65)는 6월 1일자 <베니티 페어>지를 통해 여성으로서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사진: 베니티 페어 표지(왼쪽)와 케이틀린 제너가 되기 전 브루스 제너의 모습. ⓒ플리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철인 10종 경기에서 두 번의 금메달을 딴 미 올림픽 영웅 브루스 제너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6명의 자녀를 뒀다. 2013년에 이혼한 두 번째 부인 크리스 카다시안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E!> 채널의 리얼리티 TV 쇼 프로그램인 <4차원 가족 카다시안 따라잡기(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에서 킴카다시안을 비롯한 4명의 카다시안 자매들의 의붓아버지로 유명하다.

지난 4월 미 공중파 ABC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20/20>은 브루스 제너가 베테랑 앵커 다이앤 소여와 2시간에 걸쳐 가진 인터뷰를 내보냈는데, 약 1700만명의 미국인이 이 방송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188㎝의 브루스 제너는 인터뷰를 위해 몰리브 자택을 찾은 다이앤 소여를 현관에서 맞으면서 “오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극복하고 나가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이앤 소여가 “준비됐나요?”라고 묻자 브루스 제너는 치솟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티슈로 훔치며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브루스 제너는 자신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 정체성에 고민해 왔고 세상에 거짓말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여자라면서 이번 인터뷰가 브루스 제너로서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수십년 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온 브루스 제너가 방송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사진: abc <20/20> 인터뷰 화면 캡처.

2월에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남자 브루스 제너의 고별 인터뷰 이후, 그는 여성으로 변신하는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6월 1일 온라인판에 먼저 공개된 7월호 <베니티 페어>의 표지 화보 속 란제리를 입은 사진은 두 시간에 걸쳐 중계된 방송 인터뷰보다 훨씬 강렬하게 세상에 그를 여자로 각인시켰다.

<베니티 페어>의 표지 모델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직후 그는 케이틀린 이름의 계정(@Caitlyn_Jenner)을 열고 첫 트윗을 보냈다. 그리고 4시간 만에 100만 팔로어를 확보함으로써, 최단 시간 팔로어 확보 기네스북 기록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 계정(@potus)이 세운 종전 기록을 깼다. 오랜만에 보는 ‘간밤에 얻은 유명세(overnight fame)’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렬했던 한 장의 사진

왕년의 철인 10종 경기 스타를 65살에 케이틀린 제너라는 여성으로 화려하고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번 미디어 캠페인은 미국 퍼블릭 릴레이션 명예의 전당에 올려야 할 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기존 유명 인사의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 커밍아웃과 어떤 점이 다르기에 브루스 제너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 캠페인을 이처럼 중요한 사례로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첫째, 이번 미디어 캠페인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케이틀린 제너가 미국 사회에 아주 중요한 화두를 던졌고, 이제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에 관한 담론은 성전환 수술이나 화장실을 어디 쓰는가하는 지엽적 문제가 아닌 근본적 문제인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 스포츠전문채널인 ESPN에서는 올해 7월 열리는 에스피어워드(ESPY Award)에서 케이틀린 제너가 에스피상 중 가장 영예로운 ‘아서 아셰 커리지 어워드(Arthur Asche Courage Award)’를 수상한다고 발표했다.

▲ espn은 에스피어워드(espy award)에서 케이틀린 제너가 에스피상 중 가장 영예로운 ‘아서 아셰 커리지 어워드(arthur asche courage award)’를 수상한다고 발표했다. 사진: espn 기사 온라인판 화면 일부.

반면 란제리 입은 케이틀린 제너 사진을 두고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가 모두 들썩이자,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미 보수정치세력들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보수파 논객들은 미국 매체들이 케이틀린 제너의 커밍아웃을 지나치게 대서특필했다며 못마땅해 하고 있다.

레이건 정권하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윌리암 베네트는 “이제 미국 보수파들이 포위당해서, 대세에 환호하든지 아니면 꼴통으로 낙인찍히든지 하는 기로에 선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극우 논객 러쉬 림보 역시 “전통적인 가치와 전통적 성 역할을 비주류인 것처럼 만들어가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정치적 목표는 보수세력과 공화당을 사회에서 별종처럼 만드는 것이고, 게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사회주변부적 행위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고 경고했다.

향후 미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문제 등 성 소수자에 대한 여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란제리 입은 케이틀린 제너 사진은 마치 1929년 여성들의 흡연에 대한 사회적 터부를 깨고 여성 흡연자를 늘리기 위해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주도한 ‘자유의 횃불(Torches of Freedom)’ 캠페인 속 사진과 비슷한 잔상을 남긴다.

두 번째, <20/20>를 통한 남자 브루스 제너의 굿바이와 <베니티 페어>를 통한 여자 케이틀린의 데뷔에 쏟아진 언론과 공중들의 반응이 놀라우리만큼 긍정적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루스 제너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2013년 가십 블로그 TMZ가 제너가 목젖 제거를 위해 성형외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는 특종 보도를 한 이후로, 그는 심야 코미디쇼의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언급되곤 했다.

그러다가 올 2월 말리브 해변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4중 추돌에서 제너가 들이박은 바로 앞차의 운전자가 차선을 비켜나 마주오던 차와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각종 매체들에서 제너가 문자를 하고 있었다거나 음주운전 영향이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2건의 소송이 진행되는 등 해당 교통사고가 가져온 부정적 여파가 계속 되고 있는 상태였다. 뒤늦게 찾아온 구설수와 사건들로 인해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그를 일약 세기의 트랜스젠더 아이콘으로 변신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미디어 캠페인의 성과는 놀라울 따름이다.

▲ 브루스에서 케이틀린이란 여성으로 변신한 사진을 트위터((@caitlyn_jenner)에 올린 후 4시간 만에 백만 팔로어를 확보했다. 사진: 케이틀린 제너 트위터 화면 캡처.

전문가 손길이 빚은 미디어 캠페인의 성과

세 번째, 브루스 제너를 케이틀린 제너로 성공적으로 변신하게 도와준 앨런 니에로브(Alan Nierob)는 무려 30년 동안 그의 고객이 지닌 비밀을 지켜줬을 뿐만 아니라, 제너가 인생에서 최대 고비를 맞고 있을 때 그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었다.

헐리웃 전문 PR회사인 로저스&코완(Rogers & Cowan)의 중역으로 있는 앨런 니에로브가 브루스 제너를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 기자가 브루스 제너의 복장도착증(服裝倒錯症)에 관한 기사를 취재했는데 브루스 제너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결국 해당 기사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앨런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기사는 사실 무근이라고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브루스 제너가 앨런 니에로브를 다시 찾은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2013년 <TMZ>(미국 연예매체)의 특종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지면서 자살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진 뒤다. ‘스토리텔링’이 연예계 PR의 DNA가 돼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로저스&코완은 부르스 제너에게 남자로서 부르스의 존재에 안녕을 고하고 여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전략을 제시했다고 한다.

많은 매체들이 제너를 인터뷰하길 원하고 있었기에 매체를 선정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지난 세월 브루스 제너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전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데엔 텔레비전만큼 더 효과적인 매체는 없었다.

슬레이트지에 인용된 ABC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작년 12월부터 다이앤 소여의 <20/20> 프로듀서들이 로저스&코완사의 실무자들과 구체적 접촉을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앨런 니에로브팀이 왜 <NBC뉴스>가 아닌 <ABC뉴스>에 이 특종 인터뷰를 주었는가다.

리얼리티 쇼 카다시안 가족을 내보내고 있는 <E!>채널은 ‘NBCUniversal’에 속해 있고, <E!>채널은 케이틀린 제너를 주연으로 하는 새로운 리얼리티쇼를 기획 중이었기에 제너가 NBC를 선택하는 게 도리에 맞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런 니에로브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방송국을 택하면 진정성과 신뢰성을 더 높일 수 있고, 돈벌이 수단으로 커밍아웃을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캠페인 성공의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20/20> 인터뷰 후 커밍아웃에 쏟아진 트위터 여론은 압도적으로 동정과 지지가 주를 이뤘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값지다는 진리를 반영하듯,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여성으로의 변신을 알리는 데 있어 사진만큼 중요한 홍보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세기를 뒤흔드는 특종을 종종 해왔던 품격 있는 문화지 <베니티 페어>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베니티 페어>에는 수많은 명사들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사진들을 찍어온 베테랑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가 있다.

ABC와의 인터뷰를 통해 ‘굿바이 브루스’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결정한 직후, 앨런 니에로브는 <베니티 페어>와 케이틀린의 커버 사진과 기사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마쳤다. 앨런 니에로브는 <베니티 페어>의 특종이 중간에 새나가지 않게 만전을 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니티 페어> 내부에서도 이 커버스토리 기획을 알았던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고 한다. 7월호 커버 사진을 찍는 날, 회사에 있던 대다수 직원들은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를 모델로 촬영하는 줄 알았을 정도라고.

또 제너 집 화보 촬영에 참석한 사람들은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모두 압수당해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밖으로 새나갈 일이 아예 없었으며, 찍힌 화보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에 보관하고 인쇄소에 맡기는 것도 인편을 통해 부쳤다고 한다.

케이틀린 제너를 성공적으로 세상에 알린 이번 캠페인은 방송과 잡지 등 올드미디어를 대상으로 통제되고 기획된 PR이 이미지 메이킹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확인시켜 준다. 물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유명인사의 이미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세상에 전파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미국적 PR의 목표+α

마지막으로 앨런 니에로브 등은 미국적 PR의 목표가 단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돈벌이를 만들어내는데 있음을 일깨워준다.

<E!>채널은 현재 케이틀린 제너의 새 리얼리티 TV쇼 <나는 케이트(I’m Cait)>를 제작 중에 있다. 이 쇼의 예고편에서 케이틀린 제너는 자신의 커밍아웃이 세상에 던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고편 말미에서 그녀는 “내가 새로운 정상이다(I am the new normal)”라고 말한다.

시러큐스대학교 광고학과 에이미 포크너(Amy Falkner) 교수는 “확실히 케이틀린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페이스북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과 저녁식사 자리에까지 그녀에 관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이런 시너지가 분명히 광고주들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철저하게 봉인된 각본으로 올드미디어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번 캠페인은 큰 흥행과 성공을 거뒀다. 세상은 이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거나 거짓말 할 필요가 없는 케이틀린이 얼마나 솔직하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가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대중으로부터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와 성원을 져버리고 헐리웃의 트러블메이커가 될 경우 캠페인이 거둔 성공도 그만큼 퇴색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케이틀린으로 불러주세요’ 커버스토리를 위해 몇 개월 동안 그를 취재했던 <베니티 페어>의 버즈 비싱거(Buzz Bissinger) 기자는 커버사진이 세상에 나온 후 제너는 “세상의 반응에 굉장히 놀라워하면서 기뻐하고 있으며, 이런 반응들에 고무된 케이틀린이 앞으로 리얼리티쇼 같은 것을 넘어서는 책임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뭔가 강력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임준수 시러큐스대 교수

현재 미국 시러큐스(Syracuse) 대학교 S. I. Newhouse School의 PR학과 교수다. PR캠페인과 CSR 커뮤니케이션의 전략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하며, The Arthur Page Center의 2012-2013년 Page Legacy Scholar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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