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_브랜딩이_뭐길래 1
#대체_브랜딩이_뭐길래 1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5.07.15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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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텔링 1+1] 한 송이 18000원짜리 바나나가 팔리는 이유

브랜드텔링 1+1이란..?
같거나 다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나의 브랜딩 화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해석.

[더피알=원충렬] 몇 달 전 퇴근길에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물어보는 말이 “브랜딩 그거 왜 하는 거유?” 대답에는 1초도 안 걸렸건만 그 후로 고민이 깊어진다. “기업이 돈 벌려고 하는 거겠지.”

그렇다. 브랜딩도 결국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던가? 피할 길 없는 자장(磁場)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브랜딩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던 시절에도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브랜드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됐다. 브랜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제품이나 서비스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당연한 말이다. 그로 인해 브랜드에 대한 의심은 초창기부터 줄곧 이어졌다.


브랜딩이 없어진다면?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브랜딩이란 것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적어도 소비자에겐 아무런 문제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문제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사용할 것이다.

드러나는 스펙에 따른 구분이 구매의 기준이 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이른바 ‘브랜드값’이라는 불필요한 프리미엄에 대한 지불도 줄어들 것이고, 그게 소비자에겐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이쯤이면 결국 브랜딩은 자신의 제품을 경쟁자보다 더 많이 팔고 싶은, 혹은 더 비싸게 팔고 싶은 공급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럼에도 브랜딩이라는 활동에 대한 회의감은 어째서 공급자 진영에서 더 쉽게 나타나는 걸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도 없이 쏟아지는 브랜드에 대한 피로감이지, 그 활동 자체에 대한 회의는 아닐 것이다)

브랜딩에 대한 무용론이 크게 와 닿거나 설득력이 생기는 순간은 대체로 두 가지 상황이다. 브랜딩을 했지만 망했거나, 브랜딩을 안 했는데도 성공했을 때이다.

이러한 케이스들은 상당히 비일비재하며, 심지어 두 번째 상황은 품질에만 집중했다는 공급자 철학이 더해지면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그렇다면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브랜딩은 접고 품질에만 매달리면 되는 것일까.

자, 여기 어떤 바나나가 있다. 일반적인 바나나 생육의 한계고도를 뛰어넘어 1000m 고지에서 일반적인 재배 기간보다 1.5배를 들여 키운 바나나이다. 재배하는 사람들도 이 바나나에 남다른 정성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꿈꾸며 즐겁게 노력하고 있다.

▲ 3개짜리 한 송이에 2000엔(한화 약 18000원)하는 시아와세 바나나.

이 바나나는 전용선을 타고 세심한 수송과 남다른 숙성 절차를 거쳐 마침내 백화점 식품 매장에 한정판으로 소개된다. 이 바나나에 들인 비용과 노력만큼 비싼 가격에 팔고 싶다. 기왕이면 불티나게. 이 바나나는 당도와 크기, 식감만큼은 더 없이 뛰어나다.

그럼 그냥 팔면 될까? 놀랍도록 뛰어난 품질만으로도 고객들은 아낌없이 이 귀한 바나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낌없이 지갑을 열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러한 바나나가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구가 키운 행복한 바나나(地球育ち しあわせバナナ, 지큐 소다치 시아와세 바나나)’라는 이름의 이 브랜드는 3개짜리 한 송이에 무려 2000엔(한화 약 18000원)이나 한다.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화두의 독특한 네이밍, 두 겹으로 겹친 스티커를 붙여 껍질을 벗겨내듯 윗부분을 떼어내면 바나나가 화자가 돼 직접 메시지를 건네게 하는 패키지상의 재미 요소, 그리고 효과적인 스토리텔링(펼치면 바나나 잎 모양이 되는 쇼핑백 뒷면에 이 바나나가 얼마나 특별한 환경에서 얼마나 좋은 사람들에 의해 키워졌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을 통해 그야말로 제값 다 받으면서도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고상함과 천박함 사이의 기회

이 바나나의 판매자는 무슨 일을 한 걸까? 그들은 재능 있는 파트너들과 이 바나나의 실체를 가장 적합한 언어에 담고, 제품의 본질을 직접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구현해 이를 통째로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해 고객과의 작은 접점과 짧은 소비 시나리오상에 무리 없이 구성해 넣었다. 즉, 브랜딩을 한 것이다.

브랜딩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고상(高尙)한 일을 한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익 추구에 대한 하나의 솔루션일 뿐이다. 더불어 돈 버는 것에만 천착해 스스로 천박(淺薄)해짐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고상함과 천박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가 낚아채지 않은 새로운 기회들이다.

수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내 브랜드가 다른 이유를 드러내는 기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시장의 룰을 나에게 유리하게 재규정할 수 있는 기회, 단지 소비하는 대상에서 교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도태의 흐름을 이겨내고 새로운 존재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것은 결국 처절한 서바이벌의 이야기인 동시에, 합당하게 제값을 받고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싶은 공급자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엔 브랜딩이 단순히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기대치를 재조준해야 한다. 브랜딩은 기회를 여는 ‘하나의 열쇠’로 보는 것이 좋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잘 해서 성공하는 게 여전히 어려울 뿐이다.

원충렬

브랜드메이저, 네이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등의 회사를 거치며 10년 넘게 브랜드에 대한 고민만 계속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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