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면 ‘지성’, 못쓰면 ‘카더라’
잘 쓰면 ‘지성’, 못쓰면 ‘카더라’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5.08.03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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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달고 다시 뜨는 집단지성

[더피알=박형재 기자] 집단지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한 집단지성 앱들은 식물 정보를 알려주거나 수학 문제를 풀고 실시간 번역까지 해결해준다.

뉴스 콘텐츠는 물론 PR회사의 다국적 프로젝트에도 집단지성이 활용된다. 스마트폰 사용 후 불편을 호소하면 업데이트된 제품이 출시된다. 모두의 이익을 위한 연결과 공유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SBS <스브스뉴스>는 지난 6월 눈길끄는 실험을 했다. 집단지성을 통해 한국과 외국의 최저시급 비교에 나선 것. 영국과 한국의 슈퍼마켓에서 2시간 동안 일해 번 돈(최저시급)으로 한 끼 식사를 구성한 사진을 비교한 뒤, 세계 각국에서 최저시급으로 마련한 장바구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스브스뉴스는 “요리하기 전 사진 한 장만 찍어 보내주시면 전 세계인들의 최저시급을 먹거리로 비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며칠 뒤 독자들이 각국에서 보내온 사진들은 한국과 비교해 눈에 띄게 풍성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최저시급 2시간 돈(2만3000원)으로 돼지 목살 780g을 비롯해 딸기와 토마토, 버섯, 우유까지 다양하게 살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같은 조건(1만1160원)에서 돼지 목살 180g, 바나나와 감자, 라면, 물 정도가 고작이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는 물론 최저시급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장바구니와 비교해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와 관련, SBS 권영인 기자는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영국과 한국의 장바구니 사진을 보고 다른 나라도 비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사를 진행하게 됐다”며 “사진이 얼마나 모일지 걱정했는데 의외로 참여율이 높고 반응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시사IN>은 7월 14일 국정원 해킹팀 메일을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크라우드저널리즘’ 플랫폼을 선보였다. 시민들이 위키리크스에 오른 해킹팀 메일을 검색한 뒤, 의심스러운 이메일 주소, 수상한 교신 내용 등을 공유하면 기자가 심층 분석하는 방식이다.

해킹팀으로부터 유출된 자료는 400GB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다. 언론사마다 취재에 나섰지만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집단지성을 통해 의혹을 같이 파헤치자는 것이다.

특히 <시사IN>은 플랫폼에 쌓이는 자료를 타사 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개방했다. 국정원 직원들도 접속 가능하다. 이른바 ‘단독’을 포기하더라도 ‘팩트’를 쫓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집단지성 앞에 언어장벽도 무너져

집단지성을 활용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하 앱)도 늘어나는 추세다. ‘모야모’는 식물의 이름을 간편하게 알려주는 앱이다.

▲ 한국(위)과 영국의 마트에서 각각 최저시급 2시간 임금으로 한끼 식사를 준비한 모습./사진: 스브스뉴스 캡처

산과 들에서 본 낯선 꽃이나 풀의 정보가 궁금하다면 사진만 찍어 올리면 된다. 올라온 질문에는 화훼전문가 등 일반인들이 직접 댓글로 답변해준다. 평균 응답시간은 5분. 평소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키우던 화분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 식물 관리법이나 건강 이상 여부도 진단받을 수 있다.

집단지성을 통해 공부를 도와주는 앱도 출시됐다. ‘바로풀기’는 영어, 수학 등 모르는 문제를 사진 찍어 올리면 이용자들이 답변을 달아주는 교육용 Q&A 서비스다. 400여개가 넘는 공부 주제에 대해 실시간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용자는 주로 초·중·고등학생으로, 시험기간에는 하루 1만개까지 질문이 달린다. 평균 답변율은 80%, 답변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된다. 일방적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하는 인터넷 강의와는 달리 이용자들끼리 답을 찾고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집단지성은 전문가 영역이던 번역 업무마저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플리토’는 집단지성 번역 앱이다. 번역하고 싶은 내용을 올리면 세계 각국의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앱 하나만 설치하면 언제 어디서나 번역을 의뢰하고 도와주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세계 170여개국 400만 사용자가 17개 언어로 플리토를 이용하고 있다. 하루 평균 번역 요청 건수는 7만건에 이른다. 번역하고 받은 포인트로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구호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플리토 이정수 대표는 “기존에는 짧은 글 몇 줄, 한 페이지짜리 서류를 번역하려고 번역가에 많은 비용을 내야했다”면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번역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앱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체 샤오미의 ‘오픈 포럼(open forum)’도 집단지성이 효과적으로 발휘된 사례다.

오픈포럼에는 샤오미 제품을 써보고 건의할 의견이 있는 소비자라면 누구라도 접속해 자신이 경험한 불편사항과 개선점을 제안할 수 있다. 만일 의미 있는 내용이라면 즉각 엔지니어들에게 전달돼 빠르면 일주일 안에 그 제안을 반영한 제품이 나온다. 이용자와 생산자가 함께 제품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집단지성은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한다. 최근 메르스 사태를 두고 각종 유언비어가 퍼지자 네티즌들은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어 전국에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의 위치를 표시했다. 네티즌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다른 네티즌이 신고할 수 있는 보완장치도 만들었다. 이 지도는 뒤늦게 보건당국이 공개한 병원 리스트와 상당 부분 일치했다.

뿐만 아니라 집단지성은 커뮤니케이션업계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일례로 광고회사 오길비의 경우 다국적 기업의 협업에 집단지성을 활용한다. 오길비 서울과 뉴욕, 파리, 베이징에서 같은 브리프를 받아 캠페인 아이디어를 내고, 각국에서 개발한 아이디어를 화상회의를 통해 프레젠테이션하면 광고주가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한다.

아이디어가 채택된 나라의 오피스에서 실행의 권한을 받고, 다른 나라 오피스는 실행을 돕는다. 완성된 캠페인은 각 나라에 방송하고 피드백에 따라 보완한다. 이런 방식은 서로의 업무방식, 문화 차이, 소비자의 인사이트, 우수 인력 공유 등에서 효율적이다. 외주 가격을 조정하기도 쉽다.

왜 집단지성일까?

집단지성이란 글자 그대로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말한다. 1910년 미국의 한 곤충학자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해 얻은 개념이다. 개미 한 마리는 별 볼일 없지만 함께 일하면 복잡한 개미집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집단지성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기술 발전 덕분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집단지성에 불을 붙였다. 정보 공유가 쉬워져 집단지성이 활발히 이뤄진다. 나와 내 주위에서만 알던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또 다른 이유는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혼자 알고 있을 필요가 없는 시대다. 알량한 지식과 정보로 잘난 척 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여러 머리가 필요하다.

▲ 집단지성을 활용한 식물정보앱 모야모(위)와 문제풀이앱 바로풀기./사진:해당 앱 화면 캡처

지식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 것도 집단지성의 개화에 영향을 줬다. 지식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아침에 알았던 뉴스가 점심때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각종 정보가 넘쳐나면서 그 정보를 필터링하고 진짜 정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 것도 집단지성의 연료가 됐다. 예전엔 언론 등이 기사를 내면 기관의 공신력을 그냥 믿어버렸다. 이제는 그것이 옳은 정보인지, 왜곡돼있는지 확인하는 장치가 집단지성을 통해 마련됐다.

아름다운 장미, 숨은 가시

아름다운 장미처럼 보이는 집단지성에도 가시는 숨어 있다. 집단지성은 ‘양날의 칼’이다. 잘쓰면 ‘메르스 지도’처럼 유용함을 발휘하지만 잘못 쓰면 ‘카더라’ 식 유언비어만 퍼뜨릴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반 대중들이 만들어낸 정보 검증의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직 선한 대중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인데, 악의적인 의도를 지닌 집단이 조직적으로 정보를 조작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메르스가 한창이던 6월 SNS상에서는 ‘코 밑에 바세린을 바르세요’ ‘공진단이 특효약입니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빠르게 유포됐다. 지난 5월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 후에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며 사고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익명성을 악용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거짓 정보를 올리는 등 사이버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버 반달리즘(Vandalism)’도 문제로 제기된다. 인터넷에선 실명을 밝히지 않고 정보를 올리고 수정할 수 있어 이 과정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온라인상에 퍼져있는 부정확한 지식이다. 질문하면 주로 초등학생들이 대답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결국 필터링은 각자의 몫이다. 집단지성을 맹신하는 것은 주관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앞으로 집단지성의 활용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만일 일반 기업에서 번역 앱을 만들었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텐데 단지 집단지성과 연계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며 “집단지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앞으로 활용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희 바로풀기 대표는 “학력과 정보력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일반인 전문가가 많아졌다. 선생보다 똑똑한 학생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정보공유 속도와 정보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개인 지식으론 한계가 분명한 만큼 집단지성 사례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집단지성의 확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아래로부터 일반 대중의 유용한 정보에 대한 욕구, 위로부터는 전문가 집단의 검증, 여기에 큐레이팅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으로 집단지성이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정상수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집단지성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단순한 생각의 실마리를 발전적으로 키워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아이디어의 주인 의식이 없어지고 무책임한 참여자(Free rider)가 생길 수 있다”며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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