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사과에도 ‘골든타임’ 있다
성희롱 사과에도 ‘골든타임’ 있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8.06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노력 필요…조직문화 개선도 관건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이해와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비춰 보면 성희롱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타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욕망을 일방적으로 표현하거나 상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언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이 쉽사리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공감결여와 미성숙한 조직문화, 그리고 겉핥기식 교육에 있다.

[더피알=문용필 기자]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행위자의 적절하고 빠른 사과타이밍(관련기사: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성추행·성희롱, 커뮤니케이션 해법은?)은 일반적인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백진숙 에이엠피알 수석 컨설턴트는 “성희롱은 위기에 있어서 가장 책임성이 높은 범죄의 영역에 속한다.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명백한 위기 대응 방법인데 대부분의 행위자는 변명이나 정당화를 한다”며 “본인의 위기 책임성이 가장 높은 사안인데 가장 낮은 위기수준에서의 방어 전략을 쓰는 것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행위자의 사과에는 진정성과 피해자의 상처에 대한 공감노력이 담보돼야 한다.

성희롱 예방강사인 박윤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고용평등상담실장은 “진정한 사과는 잘못된 말과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상처에 대한 것”이라며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말해줘서 고맙다’고 (피해자의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이 된다면 진정한 사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는 분명하게 ‘노(NO)’를 외쳐야 한다. 박 실장은 “명확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하고 (행위자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이라는 점을 전달해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준이라면 전문기관이나 조직 내부의 신뢰할 수 있는 고충처리기관에 상담을 의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즉각적인 거부의사 표명은 향후 행위자의 발뺌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행위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왜 말안했느냐’며 뒤통수를 친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같은 사후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이상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녀차별 정서가 뿌리박힌 우리나라 실정에서 보면 하급자가 상급자의 부당한 언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윤진 실장은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희롱인데 ‘(행위자가) 평소에 잘해주셨다’ ‘딸처럼 대해주셨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조직문화 개선·리더 커뮤니케이션이 관건

성희롱을 바라보는 조직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성희롱에 대한 건전한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펴낸 <직장인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강의안>을 통해 성희롱 재발방지를 위한 조직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행위자와 피해자의 즉각 분리 ▲피해구제를 위한 프로세스 마련 ▲직장 내 성희롱 처리 담당자의 비밀 유지 ▲관리감독 책임자로서의 역할 숙지 등이다. 제 3자의 경우에는 함께 노력해 피해를 처리하고 피해자의 입장을 심리적으로 지지하며 피해내용을 소문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박윤진 실장은 “성희롱의 발생 배경을 보면 조직문화도 있다. 성차별이 만연하거나 소통자체가 권위적으로 이뤄지는 비민주적인 사업장에서 당연히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예방 차원이든 사후든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성희롱이 발생하면 조직 내에서 ‘(피해자가) 먼저 꼬리친 것 아니냐’ ‘뭐가 있으니 그랬겠지’ 등의 말이 실제로 많이 나온다”며 “왕따를 시키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주는 케이스도 있고 심지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동료들이 피해자에게 행위자의 책상 청소를 시킨 사례도 있다. 이는 조직문화 수준이 낮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희롱 방지를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백진숙 컨설턴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예를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이란 핵 문제 관련 기자회견에서 성추문에 휩싸인 유명배우 빌 코스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약을 주고 동의 없이 성관계를 한다면 이는 강간”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백 컨설턴트는 “한 명의 리더가 여론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좋은 사례”라며 “성희롱의 경우 조직의 리더가 피해자를 구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조직 내부의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조직에서 발생한 성희롱 문제가 외부로 불거져 나갈 경우 리더의 재빠른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컨설턴트는 “리더가 사과를 하면 되레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될까봐 쉬쉬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이는 옛말이다. 지금은 SNS 등이 있다”며 “공중들이 궁금해 하기 전에 사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태수습 없이 행위자나 피해자에 대한 해고를 통해 ‘꼬리자르기식’ 대응을 하는 것은 ‘나쁜 사례’라고 못 박았다.

▲ 지난해 9월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고 있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직원들. ⓒ 뉴시스

행위 포커싱 언론보도, 근본 문제 짚어야

성희롱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상당수의 언론은 성희롱 스캔들이 불거지면 행위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춰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잠잠해지면 해당 이슈는 어느 샌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어떤 방식으로 상황이 수습됐는지에 대한 후속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백진숙 컨설턴트는 “언론은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 행위자를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지,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박윤진 실장도 “언론은 성희롱 문제를 가십으로 다루거나 행위 중심으로 보도한다”며 “근원적 문제나 결과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인숙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성희롱은 사회적으로 큰 사건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근절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성희롱 사건이 발생되면 이 사건이 피해자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주어 성희롱에 대한 대중들의 문제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