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이슈, ‘융합’ 직시하라
시대의 이슈, ‘융합’ 직시하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8.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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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듣다] 신인섭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더피알=강미혜 기자] 광고계에 발을 들인 지 올해로 꼭 50년이 됐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뀐 세월이니 한국 미디어산업의 흥망성쇠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라 할만하다.

여든 중반을 넘긴 원로 신인섭 교수. 그는 여전히 뜨겁다. 어른의 논리로 가르치려하기보다 쉼 없이 연구하고 배움을 풀어놓길 즐긴다. 후배들이 ‘대단한 양반’이라 입을 모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신 교수가 지난달 ‘뉴욕페스티벌 in 여주’에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반가운 소식에 4년 반 만에 두 번째 인터뷰를 요청했다.

▲ 신인섭 교수. 사진: 성혜련 기자

신인섭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86)와 처음 만난 건 2011년 신묘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한국 최초 PR역사서 발간이라는 이정표를 남기게 된 연유를 듣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어려울 것 없는 마음으로 대화에 나섰건만 그 겨울날 시종일관 진땀을 뺐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담배를 손에 쥔 채(국민건강증진법 시행 전이라 흡연이 가능했다) 기자의 무지(無知)를 꼬집는 신 교수는 한 마디 한 마디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당시 신 교수는 역사의 중요성과 함께 유독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했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지금도 변함이 없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집행위원이었던 나로선 조금 쑥스럽지”라는 짧은 답변 뒤로 ‘융합(convergence)’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관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재 광고와 PR의 핫 이슈가 융합이에요. 세계 3대 광고제라는 칸 라이언즈에서도 수년 전부터 PR부문에 상을 주고 있잖아. PR회사 사람들도 많이 가고 있고. 근데 내용을 보면 PR회사보다 광고계열에서 출품한 것이 더 많아요. PR회사가 자기PR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야. 앞으론 한국 PR회사도 칸 같은 국제광고제에서 상 받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해요.”

리얼타임PR의 방향성


업(業)으로서 PR과 광고의 융합은 직(職)의 변화도 불러오고 있다. 2013년 열린 ‘마케팅 2020’에선 향후 5년 내 마케팅과 PR, 광고가 합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지금은 파트가 구분돼 있지만, 조만간 커뮤니케이션의 큰 틀 안에서 한 명의 책임자가 PR이나 광고, 마케팅 등을 모두 총괄할 것이라는 얘기다.

신 교수는 이미 수년전부터 실무에서도 융합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며, P&G의 남성 바스케어 브랜드 ‘올드 스파이스(Old Spice)’가 2010년 TV광고로 시작해 2011년 유튜브에서 진행한 PR캠페인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당신의 남자에게서 날 수 있는 향기가 나는 남자(The Man Your Man Could Smell Like)’라는 타이틀의 이 캠페인은 전직 미 프로풋볼 선수인 이시아 무스타파(Isiah Mustafah)가 여심을 공략하는 콘셉트다. 남성 제품이지만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영상이 궁금하면 여기 클릭

단연 눈길을 끈 포인트는 타깃을 세분화해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핵심 메시지는 같은데 어떤 여성이 보느냐에 따라 영상 콘텐츠를 달리 제작해 선보인 것이다. 캠페인의 성공으로 올드 스파이스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는 물론 제품 매출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봤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인구학적으로 여성을 분석해 그에 맞는 영상을 노출하려면 IT기술이 필요했고, 세분화한 타깃에 따라 각각의 메시지를 만드는 데엔 PR인이 개입했으며, 혹여 생길 수 있는 법적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법률가들의 검토를 거쳤고, 임팩트 있는 카피는 광고인들의 손에서 나왔다”며 “광고와 PR, 그 외 영역이 완전히 융합해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올드 스파이스 사례는 앞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융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 에이전시들도 융합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적인 PR회사 에델만도 프로덕션 쪽을 강화한다고 해. 왜냐? 이제는 PR이 리얼타임으로 현장에서 PR하는 시대니까. 뉴스성 있는 걸 찍어서 그 즉시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말인즉, 지금 시대의 프로덕션은 영상이 훌륭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수요에 딱 알맞아야 제대로라는 거지. 이게 요즘 PR회사에 요구되는 방향이고, 결국 거기에서 나오는 문제가 융합인 거요. 똑같은 논리가 광고계에도 적용돼.”


신 교수는 특히 융합의 촉매제가 되는 디지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했다. 디지털로 인한 전 세계 미디어산업의 변화, 매체광고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최근 페이스북이 <뉴욕타임스> <가디언> <NBC뉴스> 등 유수의 언론들과 손잡고 시작한 ‘인스턴트 아티클’도 주목해야 할 변화라고 언급했다. 페이스북은 언론사들이 자체 영업한 인스턴트 아티클 광고 수익을 전부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자신들이 영업한 물량에 대해서도 70%를 제공하겠다는 파격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를 맺었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언론들은 젊은 독자를 늘려야겠으니 페이스북의 엄청난 영량력을 활용하는 것이고, 페이스북 입장에선 그 좋은 기사들을 공짜로 받으면 언젠가 돈이 될 거다 생각해서 투자하는 것”이라며 “포털에 주도권을 빼앗긴 한국 언론들처럼 페이스북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 시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건 디지털화로 인한 주요한 변화가 세계적 매체들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PR업계 향한 이의제기

융합의 시대인 만큼 그 역시 학문적으로 융합의 길을 걷고 있다. 정확히는 광고에서 PR로의 외연 확장이다.

사실 신 교수는 ‘한국 광고계의 대부’라 불리며 광고업계에서 오래도록 활약했다. 신문사 광고부장과 럭키그룹(현 LG그룹) 홍보선전실을 거쳐 희성산업(현 HS애드) 이사, 코래드 고문, 한국ABC협회 전무 등을 역임했으며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광고회의 및 IAA 세계광고대회 사무총장, 부산국제광고제 자문역할 등을 담당하며 광고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광고 관련 저서만도 십수권에 이른다.

▲ 신 교수는 뉴욕페스티벌 in 여주에서 일본학자 우에조 노리오 교수(오른쪽)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사진은 명예의 전당 부스.

그러다 1998년 한림대 강의를 맡으면서 PR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한국PR의 역사를 더듬는 것에서부터 글로벌PR의 최신 동향까지 아우르며 <국제광고와 PR> <한국PR의 역사> <글로벌 PR의 오늘> 등 책도 여러 권 썼다. 하지만 PR에 대한 그의 관심은 훨씬 더 오래전부터였다.

“희성산업에 재직할 때니까 80년도인가, <기업과 PR>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어요. 당시 PR은 신문에 기사 넣고 빼고 하는 게 다였어. 재미있었던 게 신문에 광고를 낼 때 동판으로 만들어서 했는데 그건 또 홍보 쪽에서 맡는 거야. 매체와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어. 그런 게 PR의 전부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비즈니스위크>에서 PR에 대한 특집기사를 냈고, 럭키그룹에 홍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책자로 만들어서 보냈던 거요. 반응들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해.”

신 교수가 한국 PR을 이야기하며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숫자의 부재이다.

“PR산업이라고 하면서 그 규모가 금액으로 나와 있나? PR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홈즈리포트 조사에 국내 몇몇 업체가 참여했는데, 글로벌 기준의 피 인컴(fee income, 매출이익)으로 하지 않고 그로스(gross income, 총수입)로 기재했다고 논란이 있어. 좋아, 거짓말이라고 하면 다른 회사도 거짓말해서라도 올려봐라 하고 싶어. 빌링(billing, 취급액) 뻥튀기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거든. 70년대 후반엔 광고회사들도 다 그랬어. 일단 PR산업이 산업으로써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가장 기본인 숫자부터 내놓아야 해. 필요하다면 협회에서 나서야 할 거 아닌가?” ▷관련기사: 한국PR이 ‘산업’이 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역사

신 교수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그때부터 2시간 반 가량 인터넷 뉴스 모니터링과 이메일 체크, 원고 작성 등을 하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골든아워(golden hours)’다. 요즘엔 주로 조선일보 광고사 저술에 매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신인섭 교수가 조선일보 광고사 저술을 위한 자료를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조선일보는 1964년 조일광고상(조선일보 광고대상)을 시작해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어요. 나보다도 광고를 1년이나 먼저 했어.(웃음) 언론사 광고가 한국광고 발전에 미친 영향이 아주 큰데 당사자인 신문사도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선 안 되겠다 싶어 방일영문화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하고 있지.”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도 신 교수의 손에는 광고사에 필요한 자료들이 한 움큼 손에 들려 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유교문화권에선 전통적으로 광고가 상인의 도구였어요. 과거 일본에선 광고회사를 광고대리점이라고 불렀는데, 심지어 ‘사농공상, 그리고 광고대리점’이라는 표현까지 있었어. 사회 네 계층에도 속하지 못할 만큼 최하층으로 간주하는 일본의 광고관(觀)이 반영된 것이지. 물론 지금은 달라졌지만. 50년 전에 내가 신문사 광고부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야. 광고부장이라고 해서 편집부장이랑 같은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전혀 아니었어. 그땐 내가 그 정도로 뭘 몰랐어.(웃음)”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신문사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신 교수는 <한국광고사> <눈으로 보는 한국광고사> <미국광고사> <한국광고발달사> <한국의 국제광고사> <한국ABC 15년사> 등 유달리 역사와 관련된 집필활동이 많다.

“신문사에 갔더니 해방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 일본말 표현들을 계속 쓰고 있더란 말이지. 왜 그럴까 하고 일본광고 서적들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어요. 일본말에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있는데 가만 보니 외래어는 모조리 가타카나를 쓰더라고. 주로 영어를 번역해 놓은 거였어. 영어로 된 책을 직접 보지 뭣 하러 일본말로 된 번역본을 보는가 싶어서 영어책으로 점프해서 공부했지.”(참고로 신 교수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다)

“이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만큼 문화는 오래간다는 거야. 정치적 관계는 하루아침에 적이 되고 동지가 되기도 하지만, 문화는 수십년이 지나도 쉽게 못 바꿔. 지금 광고계에서 통용되는 CM, CF라는 표현도 라디오광고의 커머셜메시지(commercial message), TV광고의 커머셜필름(commercial film)을 일본 사람이 발음하기 쉽게 만든 거야. 근데 공영방송에서도 CF라는 말이 지금도 사용되잖아. 일본식 표현이라는 걸 잘 몰라서 그런 걸 테지. 그래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야.”

“소통, PR의 본질 보면 돼”

동시에 신 교수는 영어의 중요성도 거듭 힘줘 말했다. 특히 PR과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겐 영어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오랜 소신이다.

“나는 ‘너저분하다’ 할 정도로 영어를 강조해 오고 있어요. 이번 ‘뉴욕페스티벌 in 여주’만 해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국내 퍼블리시티는 엄청나게 잘 됐는데 국제적으론 잘 안됐다는 거예요. 이유는 간단해. 그놈(?)의 영어 때문이지. 영어를 더 이상 영어로 보지 말고 제2 모국어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또다시 먹히는 일이 없어. 사대주의라고 생각하면 안돼.”

광고제 수상 얘기로 시작한 신 교수와의 두 번째 인터뷰는 글로벌과 역사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또다시 점철됐다. 머쓱해진 기자가 마무리를 위해 던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뻔하디뻔한 물음에 “생각해 본 적 없어(웃음)”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로 응수하는 신 교수.

“퍼블릭 릴레이션즈(Public Relations)라는 PR의 정의를 보면 돼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상대방을 설득해서 ‘아, 그렇다’ 하는 동의를 얻는 거지. 그게 안 되니깐 자꾸만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기자를 설득하는 친절한 덧붙임에 비로소 그와의 세 번째 인터뷰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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