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그림자 여전…대한항공의 기업문화 숙제
‘땅콩회항’ 그림자 여전…대한항공의 기업문화 숙제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08.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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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부 잡음으로 기업명성 또다시 도마에, 최고경영자가 강력한 의지 보여줘야

“유연한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잘못된 시스템과 문화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자.”

[더피알=안선혜 기자] 지난 1월 말 열린 ‘2015년 임원 세미나’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주문한 내용이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이후 지적된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강조된 발언이었다. (관련기사: ‘비행(非行)’이 돼버린 ‘비행(飛行)’, 누구 책임인가?)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뉴시스
올 초 사과를 겸한 신년사에서도 조 회장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불합리한 것에 대해 임직원이 ‘그것 보다는 이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소통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쇄신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쇄신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7개월여를 넘어선 지난 4일, 대한항공 사내 게시판에는 최고경영자의 불통 행보를 지적하는 쓴소리가 올라왔다. 퇴사를 열흘 앞둔 부기장이 남긴 돌직구였다.

이 부기장은 “대한항공은 철저히 회장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움직인다”며 “그 밑에 임원들, 보직을 맡고 있는 각 본부장 및 팀장들은 회장님의 눈치만을 보기 바쁘다”며 일침을 놓았다.

이어 “처음부터 직언을 하는 충신들(듣기는 싫을 수는 있겠지만)을 곁에 두셨다면 이들(아첨꾼들)이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한항공은 회장님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당한 장문임에도 이 글은 게재된 지 이틀만에 조회수 2만회를 넘기며 직원들은 사이에서 크게 회자됐다. 조 회장 또한 “회사를 떠나면서 준 진심이 느껴지는 제안 고맙다”며 “더 이상 대한항공 안에서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겠지만 최 부기장의 의견은 참고해 반영토록 하겠다”고 직접 답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바깥으로 알려지면서 대한항공의 기업문화가 또 한 번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땅콩회항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며 사회적 감시와 비판의 눈초리가 여전히 매섭게 움직인다.

그만큼 땅콩회항 사건은 대한항공의 기업 명성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돼버렸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구치소 편의 제공’ 의혹이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사내의 크고 작은 이슈도 여과없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에는 대한항공 사내 게시판에 주차장 요금에 대한 불만의 글이 올라오자 “말 많은 주차장은 없애겠다”는 댓글이 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뒷말을 낳았었다. 해당 글의 톤앤매너(tone&manner)로 볼 때 경영진이 직접 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익명 게시판이기에 댓글을 단 사람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당시 회사의 공식입장이었지만, 싸늘했던 여론에 불통 이미지를 또 한 번 덧씌운 건 말할 것도 없다.

▲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 ⓒ뉴시스

상황이 이렇지만 대한항공의 조직문화 쇄신 작업은 더뎌 보인다. 땅콩회항 이후 회사 내 덕망 있는 인사들을 섭외해 의견 수렴 기구로 만들겠다던 ‘소통위원회’는 현재까지 세팅되지 못한 채 7개월 이상 표류 중이다.

물론 대한항공이 소통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익명 기반의 ‘소통광장’을 오픈,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주목을 끈 부기장의 항변 또한 해당 게시판에 게재된 것이다.

소통광장과 관련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금까지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올라온다”며 “직원들이 제언하고 회사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원하는 조치를 취해주면서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기업명성을 회복하려면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 아래 보다 혁신적인 변화와 쇄신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주된 시각이다. 

위기관리 전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기업문화는 최고경영자의 의중이 90%를 차지한다”며 “나머지 10%가 실행에 옮기는 것인데, 그러려면 일단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오너가 인사에서부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정직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를 내세운다면, 그에 반(反)하는 반고객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위기관리는 상황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로 나뉜다”며 “대한항공의 경우 (익명게시판에 올라간) 부기장 글이 알려진 이후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이뤄졌을지 모르지만,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해결하는 상황관리는 여전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핵심은 역시 오너(조양호 회장)의 의지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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