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랑가몰라] 제일기획, 잘하면 YG 경쟁사 될 뻔?
[알랑가몰라] 제일기획, 잘하면 YG 경쟁사 될 뻔?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8.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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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봇물 이룬 광고회사들의 음반시장 진출…그 의미는

[더피알=문용필 기자] 오늘날 광고회사들의 영역은 단지 TV광고나 지면광고 등에 머물지 않는다. 상업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공익적인 캠페인을 기획하고 타 업계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주도하기도 한다. 미술, 음악 등 예술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대의 광고는 종합 대중예술의 집결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회사의 활동영역이 다양해진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 전,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분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가요’였다.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역사가 됐지만 이들의 쉽지 않았던 시도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시계를 1990년대로 돌려보자. 단언컨대 이 시기가 한국 음반산업의 최전성기였음을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인기 아이돌의 위상이 부럽지 않았던 스타가수들의 신보가 출시되면 몇 십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오렌지’ 들고 가요계에 뛰어든 제일기획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기만 했고 mp3도 음원사이트도 없었다. 음악을 듣기위해서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거나 음반을 구입해야 했다는 의미다. 청소년들에게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는 필수품이었고 대형 음반매장들은 대도시 핫 플레이스에 속속 들어섰다.

음악산업의 파이는 점점 커져갔지만 당시 가요계는 몇몇 메이저 음반사들과 연예기획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지구, 아세아, 서라벌 같은 전통적 강자들의 위상은 이 시기에도 유효했다. TV에 잘 나오지 않는,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는 푸른하늘,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등의 아티스트를 앞세운 동아기획의 위세가 대단했다.

▲ 제일기획이 오렌지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음반들.

이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의 음악을 표방하며 가요계에 용감히 뛰어든 회사가 있었다. ‘오렌지 파퓰러’(이하 오렌지)라는 브랜드 레이블을 앞세워 대중음악사업에 진출한 제일기획이었다.

손으로 그린 듯한 독특한 레이블 로고가 인상적이었던 오렌지는 첫 작품으로 독특한 음반을 내놓았다. 길어야 1분 미만인 CM송을 일반적인 형태의 가요로 재탄생시킨 ‘CM송 모음집’이었다. 광고회사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은 셈이다. 출범 초기 오렌지는 박춘삼, 김승기, 박정수 등의 음반을 제작, 발매했다. 이들 모두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실력파 가수들이었지만 이른바 인기가수들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오렌지가 가요계에서 명실상부하게 자리잡게 된 것은 ‘X세대 아이콘’ 김원준의 데뷔앨범이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김원준은 1992년 데뷔앨범에서 ’모두 잠든후에‘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언제나’  ‘짧은 다짐’ 등의 히트곡을 오렌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후 오렌지에서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좋은 가요음반들이 이어졌다.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 이상은의 ‘언젠가는’, 이문세의 ‘조조할인’,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등이 모두 오렌지에서 발표돼 히트한 곡이다.

1995년 삼성그룹 산하에 삼성영상사업단이 발족되면서 제일기획은 음반산업에서 손을 뗐지만 오렌지는 삼성뮤직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말까지 존속했다.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수록된 토이의 4번째 정규앨범(1999년)은 오렌지 레이블의 마지막을 장식한 명반이 됐다.

음반에 획기적 마케팅 방식 도입

비록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 됐지만 국내 음악산업에서 오렌지가 남긴 발자취는 작지 않다. 지금이야 SM, YG같은 메이저부터 마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 레이블이 존재하지만 오렌지가 태동할 당시만 해도 국내 음반시장에서 레이블의 개념은 희박했다. 레이블이란 특정 가수가 속한 음반사의 브랜드 네임을 의미한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레이블의 성립 조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체적으로 음악 콘텐츠 제작 및 유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소속 가수의 매니지먼트가 가능해야 한다. 또한, 음악소비자에게 각인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음반시장은 메이저 음반사가 전반적인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고 매니지먼트는 연예기획사가 맡는 형태로 이분화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수와 상관없이 이름만으로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지닌 제작사도 흔치않았다. 그나마 앞서 언급한 동아기획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오렌지는 초기에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명실상부한 레이블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음반사들과 차별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음악콘텐츠 제작에는 제일기획 광고파트에서 활동했던 오디오 PD들을 기용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강인봉과 송문상이었다.

강인봉은 현재 포크그룹 ‘자전거 탄 풍경’에 몸담고 가수로 활동 중이다. 유년시절 가족밴드인 ‘작은별가족’을 통해 일찌감치 가수로 데뷔했다. 송문상은 김광석과 이윤수의 노래로 유명한 ‘먼지가 되어’의 작사가다. 이들은 초기 오렌지의 음반제작을 이끈 핵심 스태프였다.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전면에 나선 셈이다.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답게 제일기획은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마케팅, PR방식을 시도하기도 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이 청취율이 높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사이에 CM을 내보냈던 것. 폴리그램 같은 일부 외국계 음반사들이 간혹 시도했던 방식이지만 순수 국내 음반사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게다가 특정 가수나 곡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브랜드 네임을 각인시키는 CM을 만들었다. 오렌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큼함이 느껴지는 소녀의 목소리가 오렌지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레이블 자체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티저광고였던 것이다.

1992년 발표한 데뷔앨범에서 ’모두 잠든 후에‘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김원준은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카운트다운‘의 1기모델로 활동했다. 제일기획과 제일모직 모두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류브랜드와 음반산업의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을 시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오렌지가 발표한 곡들은 CF 테마곡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제일기획이 제작한 광고들이었다. 광고회사의 이점을 크게 살린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김승기의 1집 앨범에 수록된 ‘햄’. 이 곡은 배우 유호정이 출연한 커피 CF에 삽입된 이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김승기의 대표곡이 됐다. 프랑스 가수 아나이스의 ‘les clouches de Bourgogne(부르고뉴의 종)’도 제일기획이 만든 화장품 광고에 삽입돼 히트했다.

광고회사들의 가요계 진출 러시, 그 결과는?

오렌지의 성공에 어느 정도 고무된 탓일까. 1990년대는 국내 굴지의 광고기획사들이 음반시장에 뛰어든 시기이기도 했다. 오리콤의 ‘포엠’, 대홍기획의 ‘비앤비’ 등 광고기획사 레이블이 쏟아졌다. 금강기획도 음반사업에 합세했다.

포엠은 블랙신드롬, 블랙홀 등의 록밴드가 합세한 앨범 ‘파워투게더’, 그룹 ‘EOS’ 출신 강린의 프로젝트 음반 ‘LYNN O&X’ 등을 발매했다. 금강기획도 동물원과 피노키오 등 비교적 인지도를 갖고있던 그룹들의 음반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비앤비의 경우 ‘이 밤의 끝을 잡고’ ‘나만의 친구’ 등이 수록된 그룹 솔리드의 2집이 크게 히트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비앤비의 레이블 마크를 단 다른 가수의 음반들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오렌지를 제외한 다른 광고회사 레이블이 실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홍보 및 마케팅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분석된다. 여타 음반사처럼 대중음악 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 외에 다른 홍보활동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광고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사의 콘텐츠를 알리는 데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력한 스타파워를 가진 가수를 영입하거나 대중음악 트렌드를 바꿀만한 음반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도저도 아니었던 오렌지의 후발주자들은 어느샌가 음반시장에서 손을 뗐다. 지금은 이들이 음반산업에 진출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 오리콤이 발매했던 강린의 앨범과 대홍기획이 내놓은 솔리드의 2집앨범./사진:매니아db(www.maniadb.com)

다만, 90년대 광고회사들의 음반시장 진출은 돌이켜보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대중음악의 지형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몇몇 메이저 음반사들과 연예기획사들이 좌지우지했던 국내 대중음악산업이 확장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기업들이 가요, 더 나아가 대중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들이 일으킨 날개짓은 작았지만 마치 나비효과처럼 2000년대 이후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원이 활성화되면서 음악산업 전반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메이저 음반사들은 대부분 간판을 내리거나 명맥만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몰락했다. 남은 것은 서울음반(현 로엔 엔터테인먼트) 정도. 반면, 대기업인 CJ와 SK텔레콤 등은 현재 가요계의 가장 큰 영향력자 중 하나가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CJ와 SK모두 1990년대 각각 ‘녹스’와 ‘메탈포스’라는 레이블을 설립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광고회사들이 또다시 대중음악 시장에 뛰어드는 날이오지 않을까. 현실화된다면 좀 더 크리에이티브하고 획기적인, 그리고 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여년 전 오렌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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