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사태, ‘선제적 이슈관리’의 뼈아픈 교훈
롯데 사태, ‘선제적 이슈관리’의 뼈아픈 교훈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08.1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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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일본기업 이미지, 보수적 기업문화 등 해묵은 이슈 한꺼번에 돌출…“대단히 안일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지난 11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신 회장은 세 번이나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관련기사: 신동빈 개혁안, 반전카드로 통할까?)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롯데그룹 리스크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지난 11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진행되는 시간 서울역 대합실 모습. ⓒ뉴시스

그도 그럴 것이 롯데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가족 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반(反)롯데 정서가 급속히 확산됐고 소비자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정치권과 정부 또한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부랴부랴 지배구조 개선 및 투명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롯데는 이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기업 가치를 잃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뼈아픈 것은 아마도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일 것이다.

신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서 롯데호텔에 대한 일본 계열회사들의 지분 비율 축소 안이 강조된 것이나, “롯데는 우리나라 기업” “롯데호텔은 국부 유출 창구가 아닌 투자창구” 등의 내용이 언급된 것만 놓고 봐도 일본기업 논란을 희석시키기 위한 롯데의 고민과 노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직원의 근무환경, 복지가 짜다’는 세간의 인식과 지난해 불거진 롯데자이언츠 구단의 선수 CCTV 불법사찰 건까지 더해지며 경직된 기업문화도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명성과 평판관리에 있어서 총체적인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돌이켜 보면 롯데를 향한 이같은 부정적 여론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본기업’ ‘직원복지’ 등은 오래전부터 롯데에 따라다닌 이슈들이었다.

201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자.

‘롯데라는 회사 이미지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공기업 아닌 공기업이죠.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 연봉은 적지만’ ‘개이(인)적으로는 일본회사 느낌이 나네요..’ ‘짠돌이, 보수적인 기업문화 이름만 대기업인 중소기업…’ ‘직원 짜내서 회사, 정확히는 신격호 일가 배불려주는…’ 등의 부정적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 201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롯데 관련 질문과 댓글.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직원복지' 등이 일반 네티즌들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거론됐다. 사진: 해당 화면 일부 캡처.

즉, 수년 전부터 롯데의 기업이미지를 상당히 나쁘게 인식하는 일반 네티즌들이 적지 않았고, 그러한 얘기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회자된 것이다.

이는 지난해 PR컨설팅업체 에스코토스가 서울과 수도권 및 5대 광역시의 성인남녀(19~60세)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4년 기업 신뢰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해당 조사는 온라인 설문을 기반으로 소셜네트워크분석 방법으로 진행됐는데, 롯데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에 대한 비신뢰 요인으로 ‘서비스’ ‘브랜드’ ‘이미지’ ‘공헌’ 등의 키워드가 도출됐다. 그리고 그 맥락에는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신뢰 요인 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키워드는 ‘직원’이다. 그와 연관된 단어로 ‘대우’ ‘복지’ ‘근무’ ‘환경’ ‘미흡’ 등이 있다.

롯데에 덧씌워진 일본기업 이미지, 경직된 조직문화, 인색한 직원복지 등의 뒷말은 오래전부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이슈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꿔 생각하면 그룹 차원에서 선제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 관리했다면 충분히 개선 가능했다는 얘기가 된다.

▲ 서울, 수도권 및 5대 광역시 성인 남녀(19-60세 미만) 600명을 대상으로 한 2014 기업 신뢰도 조사 결과. 온라인 서베이(조사기관 : 마크로밀엠브레인) 기반 소셜네트워크분석. /자료제공: 에스코토스

이와 관련, 롯데그룹 사정을 잘 아는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는 30년부터 제기돼왔던 것이다.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악재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는 그간 국내 그룹사 중에 유일하게 큰 이슈나 분쟁에 휘말리지 않았던 곳”이라며 “그런 만큼 충분히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했어야 하는데 대단히 안일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롯데가 기업이미지 제고나 평판관리에 인색했던 것은 ‘돈 번 것을 바깥으로 티내지 말라’는 신격호 회장의 지론이 크게 작용했다. 자연히 기업 규모에 비해 대언론관계를 비롯한 홍보활동에도 소극적이었다”며 “결과적으로 이번 롯데 사태에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전방위에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의견을 표했다.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됐지만 롯데의 내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과 경영 투명성 관련 등 신동빈 회장 측이 제시한 안건 2개가 모두 통과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해당 결과를 놓고 언론들은 ‘신동빈의 완승’ ‘원톱 굳히기’ 등의 표현들을 써가며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는 ‘신동빈의 승리’일지 모르나, 중장기적 기업평판 차원에선 어느 것 하나에도 승리를 엿보기 힘들다.

순식간에 무너진 기업명성과 상처 입은 기업이미지. ‘선제적 이슈관리’를 놓친 롯데가 ‘사후 이슈관리’는 과연 어떻게 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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