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이윤주 기자] 지난 3일 수원대에는 ‘지나가던 휴학생이 답답해서’ 쓴 ‘수원대 사태는 누가 잘못한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같은 날 중앙대에는 ‘김무성 대표님, 당신은 위선자입니다’라는 다소 센 발언으로 청년실업 문제 해결책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걸렸다.
그에 앞서 지난달 27일 고려대에는 ‘우리가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 둬야지!’라며 근로조건조차 규정돼 있지 않은 대학을 꼬집는 글이, 같은 달 25일 동국대에는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로 숨진 고(故) 박세원(21)씨의 죽음에 대해 ‘왜 아무도 이 억울한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가’라고 적힌 대자보가 붙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은 각기 달랐다. 다만 그들은 타자를 두드리는 대신 펜을 들었다. 인터넷·모바일 시대에 전통적인 아날로그 커뮤니케이션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대자보는 언론 통제가 심했던 1970-80년대 대학가에서 자주 나타났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소식을 전했고 진실을 알렸다. 하지만 점차 인터넷 등 손쉬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정착되며 대학가에서 대자보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려대 재학생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는 대자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불씨와 같은 역할을 했다. (관련기사: 불통과 무관심을 깨운 ‘안녕들’ 열풍) 이후로 대학생 등 젊은층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다시 대자보가 각광받고 있다.
요즘 시대는 교내 포털 사이트와 개인 페이스북, 트위터 등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쉬운 수단들이 많다. 대자보를 찍은 사진이 다시 SNS를 타고 퍼지는 경우도 다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표현의 수단으로 펜을 들었을까.
이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손글씨로 된 편지를 받을 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면 된다”며 “인터넷 활자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 닿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읽고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어 울림의 정도가 크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신선함과 새로움의 이유도 있다. 최 교수는 “부모님 세대에는 대자보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젊은 세대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대자보라는 복고적인 표현요소를 찾아낸 것”이라며 복합적 감정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한 자 한 자 눌러쓴 대자보. 그 커다란 종이와 펜이 젊은 세대의 지성을 깨우며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도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