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에 던지는 원초적 질문, ‘누가 그대를 만드는가’
트렌드에 던지는 원초적 질문, ‘누가 그대를 만드는가’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9.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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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파악은 모든 마케팅의 기본”…정해진 답 없어

[더피알=문용필 기자] 우리는 지금 ‘트렌드 월드’에 살고 있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소비자 니즈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고, 경쟁자 움직임까지 간파해야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꼭 마케터가 아니더라도 트렌드에 무관심하다면 친구나 직장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트렌드가 정말 트렌드일까? 그렇다면 그 트렌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 관련 이미지: 뉴시스, 삼성전자

‘가족마케팅’ ‘할랄마케팅’ ‘향기마케팅’ ‘숫자마케팅’ ‘핀셋마케팅’ ‘가면마케팅’… 올 8월까지 <더피알>에서 소개한 마케팅 트렌드다. 하지만 기사를 쓰면서 한결같이 품어왔던 의문이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트렌드를 만들거나 짚어내는 것일까’.

대형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른바 ‘트렌드 북’이다. 실제 연말만 되면 서점가에는 다음해의 소비자 트렌드나 마케팅 키워드를 전망하는 책들이 쏟아진다. 심한 궁금증은 때로 엉뚱한 질문을 낳는 법. 그래서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무작정 뜬금포 질문을 쐈다. “트렌드, 그거 누가 만드는 건가요?”

‘욕망의 흐름’ 캐치

의문을 풀기 전에 현대인들이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유를 먼저 짚어보자. 트렌드 자취를 더듬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는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트렌드 파악은 모든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운을 뗐다.

“과거에는 기업이 어떤 물건을 만드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트렌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기업 입장에서는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일반 소비자들은 그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삼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트렌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1년 단위로 ‘트렌드 북’들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소장은 “트렌드는 수시로 발생하고 기업들은 연중 내내 트렌드를 소비한다. 연구자들의 연구도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일반인들은 트렌드의 기준을 1년 단위로 파악하기 때문에 연말쯤 되면 내년에 어떤 일이 생길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그런 문화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게 있어 트렌드는 어떻게 보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김 소장은 “과거에는 좀 더 앞서가려고 트렌드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며 “트렌드를 원하는 저변도 확대됐고 SNS나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이 노출된다. 그러다보니 매년 새로운 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남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렌드 홍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했다면 트렌드를 만드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할 차례. 다소 허무한 결론부터 꺼내놓자면 정해진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해 발간된 2015 트렌드 전망서들.

윤덕환 트렌드 모니터 수석부장은 “트렌드의 형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실체가 없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 마케팅 아젠다 자체를 마케터들이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마케팅 현상도 있는 것처럼 기업이 조장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한) 네이밍 형태의 트렌드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마케팅 트렌드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다. 때문에 일반적인 트렌드 형성의 공식화된 과정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향은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도 비슷한 생각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트렌드에 출처라는 것은 없다. 굳이 출처라고 하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렌드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대중들의 선망을 받는 연예인이 될 수도, 자사의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고도의 기업전략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홍대나 종로 길거리에서 마주친 평범한 갑남을녀가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트렌드세터는 옛날이야기

물론 과거에는 ‘트렌드세터’라는 개념이 엄연히 존재했다. 해마다 유행을 창조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패션분야가 트렌드 형성의 중요한 축이 되는 사례가 많았다. 여기서 이종업계로 마케팅 내지는 소비자 트렌드가 파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향은 교수는 “예전에는 트렌드세터와 그 추종자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대중들이 따라왔다. 하지만 이런 이론이 현재는 맞지 않다”며 “지금은 수많은 경로가 있다. 개인의 파워가 강해졌기 때문에 (트렌드 형성자가)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들이 선점해 세팅해놓은 것을 사람들이 따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트렌드 형성이 다변화된 큰 이유 중 하나는 IT기술의 눈부신 발전이다. 인터넷과 SNS는 정보의 바다다. 과거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들이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 해외에서 유행조짐이 보이는 트렌드도 거의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김준모 엠코어컴퍼니 대표는 “트렌드가 점점 지역화되는 것 같다. 일본에서 휩쓰는 트렌드라면 우리나라에서도 트렌드가 됐는데, 이제는 트렌드 범위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며 “트렌드 주체들이 세분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트렌드가 장기적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작은 트렌드들이 뒤섞여서 모자이크처럼 큰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본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트렌드 북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이유도 이같은 다변화 현상과 무관치 않다. 흔히 트렌드 북이 트렌드를 만드는 주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트렌드를 형성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자료사진:뉴시스

이향은 교수는 “책이 트렌드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트렌드를 읽어서 책을 내놓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석해서 책을 펴낸다. 현상을 분석한 결과물이 트렌드 책”이라고 전했다. 즉, 창조자가 아닌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 트렌드 북이라는 이야기다.

트렌드 북이 나오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 교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행동패턴, 기업의 매출액, 히트상품 등의 객관적 자료, 공신력 있는 각종 기관들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며 “선거, 스포츠이벤트 등 전망하는 해의 이슈나 팩트를 조사, 분석하고 라이프스타일과 의식주 기술 환경들도 다 나눠 분석한다. 몇 가지가 그루핑 되면 그 중 10가지 정도를 골라서 키워드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트렌드 분석을 위한 리서치를 담당하는 회사들도 여럿 존재한다. 다만 조사기법이나 툴은 저마다 다양하다. 윤덕환 부장은 “트렌드를 연구하는 기관에 맞게 뉴스정보나 데이터를 각자의 방식으로 수집해 분석한다”며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회사들은 포털사이트 같은 곳에서 데이터 키워드를 모아 현상을 보기도 한다. 정형화된 기법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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