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21 18:08 (목)
위기관리 독이 된 중앙집권화
위기관리 독이 된 중앙집권화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10.07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적 위기관리의 현실적 조언 下] “리더가 밀어줘야”

[더피알=문용필 기자]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대형 악재들은 매번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세월호 참사,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메르스 사태, 롯데 경영권 분쟁 등을 겪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위기, 반복되는 관리의 부실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근본적 해결책 보다는 ‘땜질식’ 대처에 급급한 까닭이다. (관련기사: ‘설마’가 매번 사람 잡았다)

▲ 연이은 대형 악재 속에서 사회적으로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사진은 위기관리와 관련한 언론보도들.

위기에 대한 안일한 인식 못지않게 위기관리를 어렵게 하는 한국적 요인은 ‘톱다운(top-down, 하향식)’ 방식의 업무체계다. 실무자의 조언보다 오너나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내리는 지시에 순응하는 문화가 뿌리박혀있는 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실질적 개선은 요원하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실무자들이 어떻게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윗선에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가 있다”며 “잘못 꺼냈다가 ‘책임지겠느냐’는 말이 나오면 자신의 ‘잡(job)’을 걸어야 한다”며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리더십 작동 위한 ‘레드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실무자들의 관심은 커졌지만 리더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아무것도 안 터지는데 미리 호들갑떨고 귀찮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무자들이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위기관리의 성패는 리더의 지지 여부에 따라 갈린다. 김 대표는 “리더가 밀어줘야 한다. (위기상황이) 생기든 안 생기든 진행하라고 사람들을 움직여 줘야 한다”며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장 실무자들이 바로 대응하면서 이들이 권한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영숙 플레시먼힐러드 대표도 “위기관리는 최고의사결정자의 빠른 결정과 판단이 중요한데 내부 직원들은 상하관계 등에 영향을 받아 솔루션을 표현하기 힘들다”며 “위기관리에 전문성이 있는 에이전시가 외부 의견을 사전검사(audit)해서 CEO에게 자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사상 최대 위기를 겪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대국민 사과한 모습. ⓒ뉴시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국내에 잘 정착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부서 간 불협화음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이에 박영숙 대표는 유사시 유관부서 간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정보(intelligence)와 커뮤니케이션의 결합”이라며 “다양한 부서가 참여하는 컨트롤타워나 ‘워룸(war room, 상황실)’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기가 발생한 사업부서가 주도하거나 홍보부서에서 주도하다 보니 이 두 요소가 함께 보완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홍보와 법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러면서 “사이버 보안, 금융, 기업 지배구조 등 기술적인 내용이 중요한 분야의 위기에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관계 파악이나 기술적인 설명 등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없이)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위기관리를 주도할 경우에는 미흡하거나 적절치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90% 차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선진사례를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준비자세’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 리허설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몸이 기억하는 단계까지 준비, 훈련한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라고 말했다.

박영숙 대표는 “해외 기업들은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을 위기관리의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부정적인 기사를 어떻게 막느냐’ ‘소셜미디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 문제해결과 테크닉 중심이라는 이야기다. 박 대표는 “결국 위기관리를 대하는 진정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도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정 대표는 “선진기업이나 정부의 경우 위기관리에 있어서 사전 평시 연습이나 훈련에 가용시간의 90%를 들인다. 거의 정기적으로 상당시간을 할애해 위기를 상정해서 훈련하고 시뮬레이션 한다”면서 “그에 비해 우리는 가용시간의 90%를 위기대응으로 소비한다. 평시에는 별로 큰 노력이나 시간, 예산을 들이지 않는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선진 기업이나 정부의 VIP들은 개개인이 확실한 위기관리와 위기 커뮤니케이션 철학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기관장이나 기업 CEO가 훈련받는 경우가 드물다”며 “훈련행사라고 해도 인사말만 하시고 훈련과정에는 잘 참석하지 않는다. 훈련을 받지 않고 어떻게 실제 위기를 리드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해외 카툰. 여객기 비행도중 위기상황이 닥치자 기장이 기내에 위기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있는지 묻고 있다. 출처: www.coolrisk.com/risk-cartoons/risk-communication

종합하면 우리나라에서 위기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상식적인 결론이 나온다. 결국 상식이 통하지 않기에 매번 같은 위기에 똑같이 당하는 꼴이다.

장기적으론 전문가 풀 조성을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마련돼 전문가들이 양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지원해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정부도 그렇고 기업들도 그렇고 대체로 한번쯤은 위기상황을 경험해보는 것 같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경험을 자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유 대표는 “이례적 사건으로 넘기지 않고 새로운 혁신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최근 땅콩회항 등의 사건 이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