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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키우고 분열 야기한 정부의 ‘교과서 소통’[기자토크]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충분한 ‘여론수렴’이 아쉽다
   
▲ 민간 출판사들이 발간한 한국사 교과서들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정부가 중·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기로 공식 선언함에 따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쉽게 말해 출판사에서 여러 종의 교과서가 발행되던 현 체제를 국가가 만드는 단 한권의 교과서만 쓸 수 있도록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12일 브리핑을 통해 “많은 논의와 고민 끝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정부가 직접 개발해 보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중, 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 인정 기준 고시안을 행정예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검정체제로 완전히 전환된 역사교과서가 6년만에 다시 국정화된 명분은 이른바 ‘이념적 편향성’이다.

황 장관은 “지금의 역사 교과서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내용이 많아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나아가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이날 오전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내용의 행정예고 공고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중학교는 ‘역사 1,2’ 교과서와 지도서가 모두 국정도서로 발간되며 고등학교의 경우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도서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오는 2017년부터 중·고등학생들은 정부가 만든 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 12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 ⓒ뉴시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정부의 이번 발표를 보면서 과연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든다. 황우여 장관은 “교육부는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460여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12일 성명을 내고 “황 장관이 공론화 과정이라며 시간을 질질 끄는 동안 교육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작년 교육부가 발표자와 토론자를 섭외하고 2차례에 걸쳐 진행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를 돌아보자”며 “일부 뉴라이트 인사를 빼고는 대부분 발표자와 토론자는 국정화가 세계화 추세에도 맞지 않으며 북한 등 극소수 국가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것이 공론이었다”고 비판했다.

‘여론전’ 보다는 반대 의견에 귀기울여야

혹자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상당수 시민단체들이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에 속해있다는 점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보수, 혹은 중도의 시각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13일자 몇몇 일간지 사설이 그 근거다.

<세계일보>는 “그동안 국정화에 관한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한 차례도 열지 않다가 20일 남짓 불과한 기간에 의견 수렴 과정을 밟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고 <헤럴드경제>는 “야당 등 정치권과 학계, 교육계 등 각계의 거센 반발에도 한국사 국정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그 흔한 공청회나 토론회도 한번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또다른 증거는 역사학자들과 교사들의 반대성명이 빗발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부터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각 대학의 교수들과 역사학도, 일선 교사들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선언에 순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국립대 국정감사에 앞서 전국 8개 국립대(서울대, 강원대, 경상대, 부산대, 인천대, 전남대, 제주대, 충북대) 총장에게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결과, 5개 대학 총장들이 반대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국정화에 대한 국민여론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의견이 42.8%, 기존의 검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의견이 43.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같은 세간의 비판을 현 집권세력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와 함께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도했던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 오류, 왜곡 사례집을 발간하는 한편 세미나와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전에 돌입할 태세다.

교육부는 새 국정교과서에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했다. ‘국정’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인 의미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자료사진) ⓒ 뉴시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여론전을 편다고 해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논리에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는 까닭이다. 국정화된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5.16’을 미화하고 친일파들의 부역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물론 정부는 누가봐도 ‘공정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황우여 장관은 “이념 편향성을 불식시키고 청소년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인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헌법 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진보 성향 역사학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정화를 반대하는 학자의 참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집권세력에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씻어내기에는 미흡하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수반됐다면 불신을 어느정도 덜어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정부와 여당의 행보는 이와는 다소 멀어보인다. 효과적인 국정 커뮤니케이션이 이번에도 문제가 된 셈이다.

국민통합 위한 선택? 이대로는 요원

미흡한 여론수렴과 강경한 ‘교과서 드라이브’ 정책으로 나타난 역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 이념적 프레임에 갇혀 국론이 극명히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교과서를 매개로 한 보수와 진보의 ‘끝장 매치’ 양상으로 변질되는 형국이다. 정부는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통합은 요원해 보인다.

검정이든 국정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서에 담길 내용이다. 향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과거를 올바르게 조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교과서의 본질이자 본분이다.

여기에는 권력의 이해관계도, 이념적 프레임도 배제돼야 한다. 정부든 반대 진영이든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 행정예고 기간은 보름 이상 남아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부가 열린 태도로 반대진영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이들과 대화하는 현명한 커뮤니케이션 해법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정부가 소통이 아닌 일방적 ‘밀어붙이기’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불신만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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