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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잊혀져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문방구·헌책방·구둣방·오락실 탐방기

[더피알=이윤주 기자] 하루걸러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일상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화려하지만 삭막한 도심, 그 속에 추억을 안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가는 아날로그 향내 가득한 가게들. 가을과 함께 추억을 따라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효제문구점

주렁주렁 매달린 돼지저금통과 가지각색 불량식품. 안팎이 빼곡한 문방구에서는 주인아줌마와 초등학생 3학년 승원이, 철민이의 실랑이가 한창이다. 4500원짜리 큐브를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이유는 단돈 500원이 부족해서다.

“아휴, 진짜! 때 타겠네. 그만 좀 만져. 그냥 4000원에 해.”
“안돼요. 그럼 정직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 각양각색의 문구들이 쌓여있다.

효제초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효제문구점>은 33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정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학교준비물을 인터넷으로 대량주문하라고 한 후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문방구 앞에서 줄 서 준비물을 구입해 등교하던 때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짜증나요. (장사가) 안 되니까.”

이내 주인아줌마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하도 장사가 되지 않아 100~300원짜리 과자와 음료수도 들여놨다며 연신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놨다. 바로 옆 문방구도 이젠 ‘슈퍼와 문방구’가 됐다.

지나가던 아이가 몇 백 원을 주인아줌마의 손에 떡하니 쥐어 준다. “나 이제 외상값 갚았어요!”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장사는 소액에 머물고 있다. 월세내기도 빠듯하다. 이런 현실에 학교 앞 문방구는 점점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심각한 분위기도 잠시. “우리 아빠도 35년이나 일하고 있는데..!”라는 승원이의 장난 섞인 허풍에 모두 웃음이 터진다. 너희 아버지는 5살 때부터 일하셨냐는 주인아줌마의 질문에 승원이 얼굴이 빨개진다.

이어진 “내가 매일매일 몇 백 원씩 꾸준히 돈 쓰니까 괜찮다”는 철민이의 위로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나저나 큐브는 어떻게 됐느냐고? 거센 실랑이 끝에 기자가 200원을 ‘빌려’주며 일단락된 걸로.


#기억속의 서가 헌책방

단독주택으로 둘러싸인 골목. 헌책방에 들어서자 눅눅한 책 냄새와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주인은 15년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5번째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 4만권에 달하는 책을 포장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우려에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난 폭우 때 이사를 가 본 후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고.

▲ '기억속의 서가' 헌책방의 모습.

‘기억속의 서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 부분을 본따 지은 이름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기억을 남겨두기 위한 작은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이 있다는 것.

단골이 가끔 걸음하긴 하지만 무모하게 환승하면서까지 찾아오는 이는 많지 않다고 했다. 택배기사의 얼굴만 보게 되는 하루가 일상이 됐다. 지나가며 장사 잘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 정도.

곧 택배기사가 온다며 기자에 양해를 구하고 책을 포장하는 손놀림이 익숙하다. 헌책방을 운영하며 무너진 모래성을 몇 번이고 다시 쌓았다고 덤덤히 말하는 그.

“지금은 모든 걸 다 내려놓았어요. 힘이 되는 만큼 버틸 거에요. 무너지면 다시 또 쌓는 거죠. 스트레스를 풀러 헌책방을 들르시는 분도 계시고, 오랜 단골들이 가끔 찾아와요.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었던 건 그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에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의 아버지는 ‘대양서점’이란 또 다른 헌책방을 운영한다. 그곳에서 100m 거리의 새 터전으로 곧 이사한단다. 간판도 없이 15년 전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는 “모두들 헌책방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숙제를 내줬다.

헌책방을 나서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그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구두 명장의 집

“요즘 젊은이들은 구두를 안 신어. 운동화를 많이 신지. 어른들도 갈색 구두를 주로 신으니 구두 닦으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나.”

▲ 구두 장인의 구두 닦기.

올해 나이 74세인 주인은 18년째 구둣방과 함께 하고 있다. ‘디자인 서울’ 일환으로 외관이 통일된 구둣방이었다.

1년에 도로점령사용세 40만원, 임대료 60만원을 더해 총 100만원이 넘는 돈을 지출한다. 하루에 버는 돈은 3만원 남짓.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모든 일의 원인이 그렇다는 듯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말이 이어진다.

“용돈 만원 받아서 담배 한 갑사면 뭐가 남겠어.”

다른 구둣방과 소통은 하지만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젊은이들이 구둣방을 이어받거나 새로 만들지도 않는다며 아쉬움을 내뱉는다.

그는 1972년 국제기능대회 제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서울 시내에 국제기능대회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뿐일 거라며 입구 벽면에 붙어있는 입상 확인서와 오래된 은메달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대회는 73년에 사라졌다.

금세 할머니가 어제 고친 구두 한 켤레를 들고 들어왔다. 인사를 하고 구둣방을 나서는 기자의 발을 내려다보니 편하게 신은 운동화가 오늘따라 겸연쩍다.


#목마오락실

“나는 항상 젊어요.”

게임을 좋아하는 주인은 27년째 오락실과 동고동락한다. 88올림픽 시절에는 지금의 커피숍마냥 몇 걸음마다 오락실이 있었다. 진입장벽도 낮고 소득도 짭짤했던 그 시절 오락실은 옛말이다.

▲ 정신없이 오락하는 뒷모습.

PC방, 컴퓨터게임, 스마트폰이 생겨나면서 오락실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루 수익 5만원 가량. 한 달에 150만원을 벌어도 전기세와 관리비를 제하면 용돈벌이 정도다.

오락실을 둘러보니 확연히 과거와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큰 오락기구와 1인용 부스 노래방이 있을 뿐 예전처럼 요란하지 않다.

“작은 오락기기들은 다 처분했어요. 기계가 대형화되면서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게 많아요. 천만원 가까이 하는 기기들이 대부분인데, 한 판당 500원이니 수익구조를 못 맞추고 있죠.”

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다보니 특정한 게임기기를 찾아 지방에서도 올라오기도.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마니아층의 발길도 이어진다. 고등학생이었던 손님은 군대에 다녀와서도 종종 찾는다고 한다.

노래방 부스에서는 고음이 울리고, 한쪽에서는 화면에 빠져들 듯 기판을 튕기는 손놀림이 신의 경지에 가깝다.

“저 친구는 자주 오지만 B급이에요. 점수가 항상 B만 나와.(웃음) 저 게임하는 손을 보면 예술이잖아요. 그래도 B야. 대학교로 따지면 B학점인거지.”

하교길에 잠시 들려 게임 한 판 하는 곳이 아닌,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임 오락실이 된 듯했다. 요즘 학생들은 손도 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시도조차 못하고 나와야만 했으니.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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