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與 현수막, ‘교과서 여론전’ 승부수? 무리수?
‘주체사상’ 與 현수막, ‘교과서 여론전’ 승부수? 무리수?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10.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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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 반대진영 반발 심화…논리적 ‘자승자박’ 소지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더피알=문용필 기자] 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선언함에 따라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여당인 새누리당의 국정교과서 관련 현수막이 도마에 올랐다.

‘교과서 여론전’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한 대국민 홍보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문구인 데다 논리적 ‘자승자박’이 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면서 국민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 무리수가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 새누리당이 국회의사당 근처에 내건 현수막./사진제공: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새누리당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내걸었다.

앞서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기존 검정교과서의 ‘이념 편향성’을 내세운 바 있다. 이같은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해 강하고 자극적인 문구로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셈이다.

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내용과도 일치한다.

당시 김 대표는 “시중에 고등학교 한국사 참고서를 보면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표 문제로 주체사상에 대한 문제를 출제해 놓고 ‘김일성 유일지배체제 확립과정을 국제정세 속에서 이해해야한다’고 하거나 수령의 개념정비 문제를 통해서 주체사상, 유훈통치, 선군정치, 사회주의 강성대국론 등을 학습하게 하는 등 우리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하는가. 이게 지금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의 현실”이라며 “이것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현수막이 촬영된 사진이 공개되면서 야당과 야권성향 네티즌 등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SNS상에는 “새누리당은 어떤 내용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인지 근거를 제시하라”(‏@he******) “김일성 주체사상 배운 아이들 군대 보내 나라 지키라 해놓고 잠이나 오나? 지금부터라도 김일성 주체사상 배운 아이들 군대 보내지 마라”(‏@so*****),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는게 걱정되면 새누리당 의원들 자녀는 왜 학교에 보냅니까? 홈스쿨링이나 하지”(@ygoo*****)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su***)은 “이 현수막 아래 이런 문구의 현수막을 달고싶다. ‘현상 공모: 중고등학교에서 주체사상 배우신 분. 보상금 있음.’”(‏@su***)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네티즌‏(@chi****)은 “‘우리 아이들에게 나찌즘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의 군국주의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의 노예제도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러고 다 내다 걸어라”고 비꼬았다.

문제는 현수막에 담긴 내용이 자칫 새누리당에 자충수로 작용할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좌편향’이라고 지적한 현행 한국사교과서들을 검정한 것은 현 정권하의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현수막 내용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이면 교육부 장관부터 당장 구속해라”(@js*****’) “자기들의 집권시 검정한 역사교과서마저 부정하는 건 자기부정”(@kch*****) “새누리당 현수막처럼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면 현 교과서 집필자와 교과서를 심의한 검정위원은 국보법으로 처벌하고, 발행책임자인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사퇴해야지요”(@mi******) 등의 글들이 봇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기존 논리를 굽히지 않는 모습이다. 김무성 대표는 14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금성교과서가 발간한 교사용 지도서에 대해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표현을 하고 있다”며 “우리 학생들이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가”라고 언급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2013년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한 수정보완 명령은 무려 829건이었다”며 “안보가 중요한 우리 현실을 무시한 채, 북한 천리마 운동에 대한 무비판적 설명이나 북한 핵실험 사실에 대한 누락, 주체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서술, 천안함 등 도발주체에 대한 명시를 누락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도 새누리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4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해당 현수막 내용의 사실왜곡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재 교과서가 주체사상과 관련해 등재돼 있다는 말씀을 드렸도 그걸 고치기 위해 (교과서)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 14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현행 한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제기한 김무성 대표.ⓒ뉴시스 

정부와 새누리당의 이같은 입장은 ‘교과서 여론전’에 있어서 반대진영에 대한 설득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더욱 무게를 두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향후 대국민 홍보에 있어서도 ‘좌편향 교과서’의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가 계속 유지될 경우,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촉발된 국민갈등과 의견대립을 봉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좀 더 유연한 자세로 국민들의 여론을 청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국회의사당 앞에 걸려있던 해당 현수막은 하루만에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관계자는 ““영등포구청에서 불법게시물로 철거한 것으로 다시 걸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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