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주려 말고, 덜 주는 느낌부터 없애라
더 주려 말고, 덜 주는 느낌부터 없애라
  • 황부영 (cowell@dreamwiz.com)
  • 승인 2015.10.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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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영의 Unchangeable] 손실혐오성향 ②

[더피알=황부영] 예전에는 만들어내는 기업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도 질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별로 제품 질이 거의 비슷한 등가제품화 시대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있어 기념비적인 저작인 <포지셔닝>에서 알 리스(Al Ries)와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포지셔닝 이론의 배경으로 등가제품화를 지목한 것이 이미 1971년이었다. 우리 제품만의 특장점인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독점제공)에 집중하면 된다는 주장은 이로써 죽음을 맞게 됐다.

등가제품화의 시대가 되면서, 그러니까 어떤 제품이 경쟁제품을 완전히 압도하기 어려워지면서 등장한 대안 중의 하나가 고객만족경영이다. 제품 자체로 고객을 만족시키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미 등가제품화의 시대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대치 이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고객만족인데 제품이 비슷해졌으니 그걸로 기대치를 넘을 순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서비스를 통한 만족이다.

따라서 고객만족이라는 목표는 제품에서보다는 결국 ‘서비스’에서 달성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고객만족(CS, Customer Satisfaction)의 개념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집착과도 같은 이상적인 방향성과 결합한다.

우리가 제품을 사고 서비스를 받으면서 감동마저 느끼는 경험을 한 적은 없으면서도 거의 모든 소비재 기업은 고객감동을 외쳐댄다. 고객만족이 고객감동으로 개념의 인플레이션이 이뤄지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한 것이 ‘진실의 순간’이다.

기업이미지 결정하는 ‘15초’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MOT)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짧은 순간을 의미한다. 1980년 스칸디나비아항공(SAS) 사장인 얀 칼슨(Yan Karlson)이 회사경영에 처음 도입해 성공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87년에 그가 펴낸 <Moment of Truth>라는 책의 성공을 계기로 유명해졌다.

핵심은 기업의 종업원이 고객에게 서비스의 품질을 보여주고, 고객은 순간의 인상으로 상품구매를 결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매장에서 고객을 접하는 순간 판매원의 행동이나 안내원, 경비원, 교환원 등 최일선 서비스 요원들의 태도가 회사 이미지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후 MOT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종업원의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게다가 그런 순간은 매우 짧아서 7초 혹은 길어야 15초 남짓이라고 한다. 얀 칼슨은 15초 안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해 적자에 시달리던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흑자로 전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적자에 시달리던 이유가 ‘오일쇼크’ 때문인데 흑자전환의 이유는 MOT 관리가 잘 되어서라는 얘기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MOT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듯.

문제는 CS(고객관리)와 MOT의 변질과 과장, 그리고 그 결과물인 고객감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그동안 기업은 종업원들에게 고객과 접점에서 진실의 순간에 어떻게든 고객을 감동시키라고 계속해서 요구해왔다.

▲ 등가제품화 시대에 기업들은 너도나도 고객만족을 기치로 내세운다. (자료사진) 한 유통업체의 cs(고객만족) 율동 경연대회 장면. ⓒ뉴시스

물건 하나 살 때 접점에서의 대응과 서비스에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는 우리도 기업의 그런 요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로써 CS와 진실의 순간이 가졌던 긍정적 의미는 퇴색되고 고객감동의 압력은 감정노동을 불러왔다.

‘소비자가 왕이다’는 말도 안 되는 명제는 블랙컨슈머가 자라나는 토양으로 작용한다. 고객감동 때문에 접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더 힘들어졌는데 막상 감동하는 소비자는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왜 이런 걸까?

이제는 고객감동이란 집착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고객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고객감동의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감동해야 만족할 것이란 전제에서 벗어나 보자. 애초에 감동이란 쉽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감동까지 가지 말고 만족을 추구해 보자.

고객만족의 출발은 고객감동을 위한 노력, 까놓고 말해 고객감동을 추구한답시고 접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들볶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불만족을 줄이도록 애쓰는 것이다. 이것이 실용적인 접근이다. 손실혐오의 성향을 활용해 솔직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자는 말이다.

고객감동 집착 벗어나야

“인간은 이익을 보기 위해 행동하기 보다는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행동한다.” 이것이 손실혐오 성향의 핵심이다. 접점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6000원짜리 백반집이 있다. 우리는 언제 그 집에 안 가게 되는가?

6000원 백반집의 음식 맛이 감동적이어서 계속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맛있을 순 있지만 6000원짜리가 6만원짜리 음식과 같을 순 없다. 반대로 너무 맛이 없어 다시는 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런 식당이면 등가제품도 못 만들어 내는 곳이니 생각해 볼 여지도 없다. 결국 맛있어 봐야 6000원이고 맛없어 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손해 보는 느낌을 받게 되는가? 우리 테이블이 먼저 왔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음식이 먼저 나갈 때 손해 보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테이블은 다 반찬이 다섯 가지인데 우리만 네 가지로 나올 때 손해 본 느낌을 강렬히 받고 그런 불만족으로 다시는 거기에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받은 이익보다는 자기만 덜 받았다는 손해에 훨씬 더 민감하다. 하물며 약간의 이득 때문에 감동을 느끼지는 않는다.

핵심은 다시 손실혐오의 성향이다. 손해 보는 느낌을 줄이면 된다. 딱히 더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주려고 하기 보단 덜 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공평함이 필요하다.

접점에서 소비자들이 손해 받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중요하다. 바로 ‘매뉴얼’이다. 접점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적인 응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매뉴얼에 숙달되는 것이다. 국어책 읽는 발연기만 아니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 일본 모리오카에서 재일동포들이 세운 냉면집 주인은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김치를 담으라고’ 얘기한다. 사진: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 화면 캡처

일본 이와타현 모리오카 시는 재일동포들이 세운 냉면집으로 유명한 도시다. 모리오카에서는 대표 특산물로 냉면을 선정하고 도시 관광지도를 아예 ‘냉면지도’로 만들었다. 몇 년 전 모리오카 냉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국내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서빙하는 직원이 한 손님에게 냉면을 갖다 주면서 함께 제공하는 김치를 반찬그릇에 예쁘게 담고 있었다. 그때 사장이 그걸 보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김치를 담으라고’. 한 손님 좀 더 만족시키겠다고 다른 손님 손해 보는 느낌 주지 말라는 얘기다. 손실혐오의 성향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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