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 폭스바겐, 위기 끝이 안 보인다
‘양두구육’ 폭스바겐, 위기 끝이 안 보인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5.11.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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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휘발유 차량도 조작 가능성…위기관리 주체 실종

[더피알=박형재 기자]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이 있다.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폭스바겐 사태에 어울리는 말이다.

‘자동차 1100만대 리콜+주가 40% 증발+소송 쓰나미=손실 86조원 이상.’ 배출가스 조작으로 폭스바겐이 받아든 손익계산서다. 무너진 신뢰의 값은 계산 불가다.

▲ 미국 미시간주 환경보호국(epa)에서 폭스바겐 suv 투아렉 디젤 자동차의 배기가스배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ap/뉴시스

폭스바겐은 2009년부터 ‘클린 디젤’을 내세워 승승장구했다. 디젤엔진은 가솔린에 비해 ‘힘 좋은’ 엔진으로 불리지만 유해가스가 더 많이 배출되는 것이 단점이다. 특히 1급 유해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이 문제인데, 이를 최소화하고 연비까지 개선했다는 게 폭스바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모두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폭스바겐은 골프, 제타, 파사트, 비틀, 아우디A3 등의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꼼수를 썼다.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자동차 검사 때만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고 도로주행 때는 멈추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연비를 높인 것. 이에 따라 도로주행시 기준치보다 40배나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됐다. 클린 디젤의 실체는 ‘사기’였던 셈이다.

폭스바겐은 전세계에서 1100만대의 차량이 조작됐다고 시인했고, 한국 등 세계 각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에 나섰으며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휘발유 차량에서도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눈속임’ 청구서 86조원…수습비용은 ‘계산불가’

이번 사태는 2009년 토요타 급발진 사고와 비교된다. 토요타는 당시 미국에서 렉서스 차량의 급발진 사고로 미국인 일가족 4명이 숨지자 운전석 바닥 매트가 가속 페달을 눌러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부품 결함 의혹을 철저히 부인하다 뒤늦게 인정해 손가락질을 받았다.

급발진 관련 리콜로 자동차 업계 최대인 12억달러(1조4300억원)의 벌금을 내고도 수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관련기사: 도요타 PR의 10대 문제점) 폭스바겐은 사고나 기술 결함이 아닌 일부러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무겁다.

▲ 폭스바겐은 1996년부터 친환경 브랜드를 앞세워 경쟁사들과 차별화를 강조해왔다. 사진출처: www.cargocollective.com

클린 디젤이란 핵심 홍보 전략도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폭스바겐은 친환경 브랜드를 앞세워 경쟁사들과 차별화를 강조해왔다. 1996년부터 기후변화 대응과 자원보호, 대체연료 개발 등의 기술력을 꾸준히 홍보했으나 이제는 공허한 울림이다.

그들은 미국 환경당국의 발표 직전까지 친환경을 외쳤다. 조작 파문 나흘 전인 지난달 14일에는 전세계 공장을 친환경 공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씽크블루팩토리(ThinkBlue Factory)’ 프로젝트를 진행해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어찌됐건 물은 엎질러졌다. 누군가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폭스바겐 위기론이 확산되는 이유다.

먼저 위기관리 주체가 실종됐다.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전 회장은 9월 18일 조작 파문이 터진 직후 두 차례 공식 사과한 뒤 여론이 악화되자 23일 전격 사퇴했다. 그는 물러나면서도 “배기가스 조작을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8년 넘게 폭스바겐을 이끈 CEO가 수년간 광범위하게 이뤄진 조작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빈터콘 회장의 후임으로 선임된 마티아스 뮐러 신임 회장의 리더십도 의심받고 있다. 위기 구원투수로 야심차게 등판했으나 그는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은 내부 인사일 뿐만 아니라 창업주 가문의 측근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책임자 처벌 등 투명한 해결이 가능할지 의문이 나온다.

폭스바겐의 소극적 커뮤니케이션도 아쉽다. 사건 추이를 보고 신중히 대응하는 측면이 있으나 오랜 침묵은 불안을 키우고 소비자를 외면하게 만든다. 조작 파문 이후 폭스바겐 그룹차원의 공식 사과는 단 두 차례. 모두 빈터콘 전 회장이 사과한 것이다. 뮐러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전면개혁으로 ‘도덕적 재앙’을 극복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보상이나 리콜 조치에 대해선 함구했다.

▲ 폭스바겐 코리아가 지난달 8일 주요 일간지에 게재한 공식 사과문(왼쪽)과 홈페이지에 마련한 faq 게시판.

늑장 대응은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 폭스바겐코리아는 조작 발표 이후 3주가 지난 후에야 사과문을 띄워 빈축을 샀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달 8일 일부 일간지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도 소비자 보상이나 리콜 시점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사과문 중간에 “현재 판매중인 모든 차량은 금번 이슈에 해당 사항이 없다”거나 “이슈와 관련된 차량 또한 주행상 안전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해명해 사과문인지 변명문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일었다. (관련기사: 폭스바겐의 공식사과, 타이밍·진정성 아쉽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조작 파문에 대해 소비자들과 소통하겠다며 홈페이지에 마련한 ‘FAQ 게시판’도 다분히 형식적이다. 이곳에는 ‘차 수리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비소에 예약을 해야 합니까?’ ‘수리는 얼마나 걸립니까?’ 등의 질문이 올라왔지만 “해결책이 마련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만 답하고 있다.

국내 폭스바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 하종선 변호사는 “소비자들은 화가 많이 나있는 상태”라며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배신감은 물론 중고차 가격하락, 리콜시 연비 저하 등에 민감하다. 특히 회사가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각종 논란에 대해 “현재로썬 아무것도 드릴 말씀이 없다”며 “리콜시점, 보상계획 등 구체적인 방침은 추후 정리되는 대로 공지할 예정”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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