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 실천한 YS의 직설어록
‘대도무문’ 실천한 YS의 직설어록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11.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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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정치스타일 걸맞는 직설화법…패러디 대상 되기도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 ⓒ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대한민국 제 14대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이 88세를 일기로 22일 서거했다.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에 이어 YS까지 영면에 들어가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던 ‘양김 시대’도 역사에 종언을 고했다.

YS의 정치인생은 파란만장했다. 1954년 약관 26세의 나이로 첫 금배지를 달았고 47세에는 제1야당의 총재자리에 올랐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함께 9선의 최다선 주인공이며 최다선(5선) 원내총무(現 원내대표) 기록도 YS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당분간, 어쩌면 꽤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1979년에는 당시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에 의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대통령에 도전한 것은 세 번이었다. 첫 도전은 1970년.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YS는 필생의 라이벌인 DJ와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었지만 패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다.

▲ 1985년 3월 6일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서울 동교동 자택에 연금되어 있는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찾아 회동한 모습. ⓒ뉴시스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DJ와의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결국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대권을 내줘야 했다. 그리고 3수 끝에 YS는 1992년 대선에서 DJ를 누르고 제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YS는 대통령이 된 이후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정치군인들의 온상이던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 인사들을 몰아내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해 우리사회의 투명성 강화에 나섰다.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한편,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집권초기 YS의 지지율은 90%를 웃돌 정도였다.

그러나 임기 마지막은 초라했다. 외환위기라는 암초를 만나야 했고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초유의 경제대란을 맞았다. 차남 김현철 씨가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8년 대통령에서 퇴임한 YS는 굴곡진 정치인생을 끝내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신군부 회유에 “시체로 만들어 부치라” 일갈

YS는 저돌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정치인이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라이벌인 DJ가 꼼꼼하고 논리적인 유형의 정치인이었다면 YS는 결정이 되면 밀어붙이는 ‘불도저’ 스타일에 속했다.

이같은 YS의 모습은 그가 남긴 말에도 고스란히 녹아나 있다. 요즘말로 ‘사이다’(시원하게 할 말은 한다는 뜻) 같은 직설들을 쏟아내는 화법을 사용했다. 경상도 억양이 잔뜩 묻어난 칼칼한 목소리에 실린 그의 작심발언들은 세간의 화제가 되곤 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은 '직설화법'에 다름 아니었다. (자료사진) ⓒ뉴시스

YS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말은 아마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고야 만다”일 것이다. 1979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자 남긴 이 말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명언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1983년 단식투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해외로 출국할 것을 회유하자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는 말로 응수했다. 가택연금 중 23일간에 걸쳐 실시한 YS의 단식은 이후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기폭제가 됐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YS를 향한 야권지지자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다. 1987년 대선 당시 ‘군정종식’을 부르짖던 YS가 군사정권 인물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S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YS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하나회 멤버들을 군요직에서 몰아내면서 이 약속을 지켰다.

대통령에 취임해서도 YS의 직설화법은 그대로였다. 1995년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이어지자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외교적 언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적절한 멘트였지만 국민들에게는 속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이었다.

뭐니뭐니해도 YS를 상징하는 말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사자성어다. ‘사람이 지켜야 할 정도에는 거칠것이 없다’는 뜻으로 YS의 정치적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YS는 이 말을 붓글씨로 자주 남겼고, 1993년 방한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YS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통합’과 ‘화합’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김현철 씨에 따르면 YS는 2013년 필담을 통해 이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같은 표현을 쓴 이유를 묻자 YS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리고 이는 사실상 국민들과 정치권을 향한 YS의 유언이 돼버렸다.

클린턴에게 “Who are you” 인사

자의든 타의든 YS는 유머러스한 면모가 부각된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의 몇몇 발언들은 개그 소재로 패러디 돼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가장 좋은 예는 지난 1993년 나온 “우째 이런일이”. 자신의 최측근인 최형우 당시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의 아들이 대입 부정의혹을 받자 나온 말이다. YS 입장에서야 측근발 악재로 인한 장탄식이었겠지만 이 말은 시중에 유행되며 TV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했다.

▲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투표소에서 환하게 웃음짓는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 ⓒ뉴시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발음도 패러디 대상이 됐다. YS를 성대모사하던 개그맨이라면 누구나 포인트로 생각했을 ‘학실히(확실히)’라는 표현이 그랬다. 대통령이 된 후 어린이날에 열린 청와대 초청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YS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확실히”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경제를 의미하는 ‘갱제’도 있다.  

의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Who are you”라는 다소 황당한 인사말을 건넨 스토리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왜 그런 인사를 했느냐”고 묻자 YS는 “경상도에서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이게 누꼬(이게 누구냐)’라고 한데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YS는 갖가지 패러디의 대상이 된 거의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를 소재로 한 유머집 <YS는 못말려>는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심지어 YS가 등장하는 PC게임도 만들어졌다. ‘YS는 잘맞춰’라는 이름의 격투게임이었다. 그만큼 YS는 국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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