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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에 필요한 또 하나의 ‘골든타임’[유현재의 Now 헬스컴] 의사-환자 ‘신뢰 파트너십’ 쌓으려면

[더피알=유현재] 그동안 자주 다뤄왔던 매스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것이 아닌, 조금 다른 영역의 건강 소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중매체를 활용, 상대적으로 널찍한 타깃층을 상정하며 논의되는 헬스커뮤니케이션(이하 헬스컴) 분야 말고(관련기사: 어디까지가 헬스커뮤니케이션인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규모 커뮤니케이션, 즉 인터퍼스널 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에 방점을 둔 의사-환자 간 소통에 대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헬스컴, 즉 건강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소통’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 분야 자체가 그다지 활발한 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건강과 관련된 주요 인력 간, 더불어 의료인과 의료소비자인 환자 등의 관계에서 행해지는 헬스컴은 대표적인 미개발 분야라고 할 것이다.

의사-환자 간의 소통은 헬스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 지향점이자 목표인 환자의 건강권 추구라는 측면에서 판단해볼 때, 대단히 활발하게 연구돼야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료전문가가 의료서비스를 받는 환자에게, 그리고 환자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소중한 편익은 의료행위, 다시 말해 기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의료전문가들이 명확하고 타당한 과정을 거쳐 신속하게 진단을 내리고, 가장 효과적인 처치 방법을 추천, 결정해 환자를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일련의 작업은 의사-환자 간 가장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의사의 지식과 판단, 그리고 기술적 능력과 치료행위 자체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수들의 효과적인 개입도 특정한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다.

파트너십을 쌓는 과정

주요 변인들 가운데 논의돼야 할 필수사항이 바로, 의료 행위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두려움에 휩싸인 환자 사이에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의사-환자 간 원활한 소통이야말로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 변수로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의사와 환자, ‘친해지길 바래~’)

이같은 중요성을 인지하는 배경에서 의사들은 ‘의료커뮤니케이션’ 등의 과목을 수강했을 것이고, 현업에 투입돼서도 CST(Communication Skill Training) 등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의사소통 기술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사-환자 간 효과적인 소통은 궁극적으로 ‘신뢰’라는 환산하기 힘든 결과물로 귀결될 것이며, 이는 곧 질병 회복을 위해 환자와 의사가 한 팀이 돼 준수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는 현재 환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정확하고 쉽고 충분하게 설명해야하며, 현실적 어려움과 현 상황에서 최선으로 판단되는 선택을 현명하게 추천해야할 것이다.

   
해당 의사의 경력과 명성 등에 의해 기본적 신뢰를 가지고 있던 환자는 능숙하고 진정성 있는 의사의 헬스컴을 경험하며 더욱 증폭된 신뢰를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의사가 행하고 환자가 받아들이는 제반 의료행위가 가장 효과적인 상태로 적용되기 위한 중요 동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시행되고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환자와 의사 사이에 발생하는 신뢰와 반복되는 효과적 소통은 환자의 회복성과 및 속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보고하는 사례들도 존재한다.

물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회복 및 완치 간에 엄밀한 인과관계를 상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치료과정에서 결코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요인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는 말이다.

쫓기는 의사, 눈치보는 환자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의사-환자 간 발생할 수 있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모든 환자-의사의 만남과 관계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으나 언론 혹은 일부 연구와 보고서 등을 통해 전해지는 현실은 심각할 정도다.

종합병원의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자조 섞인 보도들도 있었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환자 1인당 외래 진료 시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주요 국립대학병원의 사례를 보자면, 서울대 병원은 환자 1인 당 평균 4.4분을 기록했고, 전남대 병원은 이보다 부족한 3.8분이었다. 부산대병원도 7.3분에 불과했다. 

이런 수치는 단순히 의료 인력의 근무시간과 환자 수를 나눈 결과로써, 현실적으로는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의사가 자리를 비운 시간, 간호사의 업무시간 등을 추가 변인으로 적용할 경우 상기 수치보다 더욱 낮은 시간이 산출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농후하다. 관련 사안을 취재한 TV보도에 따르면 채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의사와 마주했다는 환자들도 있다.

국가가 보전해주겠다는 진찰료의 기준을 봐도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의사 1명 당 75명까지 진찰료를 보전해주겠다는 의미는 현재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진료시간을 정상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짧은 시간 탓에 환자들은 의사를 향한 질문은 고사하고, 의사의 충분한 설명도 들을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는 자체가 사치일지 모르겠다는 자괴감도 든다.

   
▲ (자료사진) 한 병원의 응급실 입구. ⓒ뉴시스

이 현상이 병원이나 의사만의 잘못이라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다. OECD 국가 중 대단히 낮은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인구 당 의사 수, 질병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우리들, 의료기관 접근이 쉬워서 타 국민들에 비해 너무나 병원에 자주 가는 트렌드, 성과급 보상 등 의사가 다수의 환자를 응대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장치들 등등 다양한 배경이 합쳐져 대단히 ‘이상한’ 상황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 이외에도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침윤되어 있는 위계, 즉 하이어라키(Hierarchy)도 한몫을 한다는 생각이다.

고도의 교육을 받은 최고 전문가이자,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있는 바로 그 의사 ‘선생님’과 고요한 진료실에서 마주했을 때, 묻고 싶은 사항을 속 시원하게 질문할 수 있는 환자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주눅 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는 의사만을 향해 놓여있던 모니터가 환자 쪽으로 일렬 배치된 병원들도 많아졌고, 과거 공고했던 벽이 다소 낮아진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평보다는 수직관계에서 진행되는 의사-환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많다고 판단된다.

마주보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

환자-의사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극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이해도의 극심한 차이다. 소위 리터러시(Literacy)의 차원이 의사와 환자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의사가 사용하는 다수의 용어와 개념은 환자에게는 먼 우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래서 큰일입니까, 아니면 괜찮다는 겁니까?”라고 투박하게 묻는 환자들에게, 경험적 방법론에 입각해 극도의 훈련을 거친 의사들은 확률과 수치를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 원천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지식의 차이도 엄연히 인정해야 하는 공간이요 순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모든 사항들은 궁극적으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만나는 의료인력, 즉 의사와 간호사 등과의 조우 시간이 너무나 비상식적으로 짤막하다는 데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있어야 소통의 스킬(skill)도 연마하고 적용할 것이며, 어려운 용어 또한 차근차근 예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간헐적이었지만 일부 의사들은 양심선언(?)을 하며 환자 1인 당 15분을 준수하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한 경우도 있었다. 답답한 환자들도 이해가 가지만 현실에 지친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들 입장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 중에 ‘AIDMA’가 있다. Attention(주목)-Interest(흥미)-Desire(욕망)-Memory(기억)-Action(행동)의 머릿글자를 사용한 이론으로, 소통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주목이요 노출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일단 약간의 시간이라도 보유한 상태에서 주목하고 노출돼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야 고급 단계인 흥미도 생기고, 이해하려는 욕망도 생기며, 마침내 상대에게 ‘신뢰’라는 감정적 행동을 행하게 된다.

주무부처, 당국자, 정치인, 대형병원, 국회,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 호소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으면 한다. 당장은 아니라도 변화가 예견되는 상황이라도 제시되기를 바란다. 환자-의사 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중한 시간, 이것이 바로 또 하나의 중요한 ‘골든타임’이 아닐까 싶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현재  hyunjae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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