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포커싱하라”
“본질에 포커싱하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5.11.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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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PHY 대표

[더피알=강미혜 기자] 사실 좀 걱정했었다. 모범답안 같은 이야기만 나올 것 같아서. 스타강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니 듣기 좋은 말만 척척 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꿈틀댔다. 근데 웬걸.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격한(?) 단어들도 툭툭 나왔다.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깨어지니 그를 향한 관점이 달라졌다.

▲ 박용후 pyh 대표. 사진: 성혜련 기자

새롭게 정의

“보통 인터뷰를 하면 내용이 딱 정해져 있어요. 관점디자이너가 뭐예요? 월급은 얼마 받아요? 어느 회사의 어떤 일들을 하세요?”

식상한 질문은 거절이라도 한다는 양 먼저 훅 들어왔다. 자칭타칭 ‘관점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박용후 PYH 대표. 그는 홍보인이나 PR인, 마케터라는 정형화된 명칭을 거부하고 자신을 새롭게 브랜딩 했다.

“PR이든 마케팅이든 핵심은 내가 원하는 대로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쉬운 지렛대가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점을 디자인해서 내가 일하는 회사를 사람들에게 새롭게 인식시키자,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내리니 제 직업이 다시 해석됐어요.”

그는 한 달에 18번 급여 받는 사람으로도 이미 꽤 알려졌다.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 블레이드 개발사 네시삼십삼분 등에서 커뮤니케이션 총괄이사로, 본아이에프와 FM커뮤니케이션즈, 브레오코리아 등에서 전략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18개의 명함을 갖고 있다.

재능기부하는 곳까지 더하면 그 수는 21개사로 늘어난다. 여러 사람의 표현대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 "착한 회사가 우선이에요. 싸가지 없는 회사랑은 절대 일 안 해요." 사진: 성혜련 기자
어떻게 그 많은 회사들과 한꺼번에 연을 맺게 되신 건가요?
거의 다 소개에요. 카카오에서 네시삼십삼분에 저를 추천했고, 판도라TV에서 배달의민족을, FM커뮤니케이션즈가 육영재단을 연결해주는 식으로… 그러다 보니 18개까지 됐네요. 

일도 일이지만 속된 말로 떼돈 버실 것 같아요.
월급 18번에 강사료까지 있으니 적진 않죠. 구체적인 금액을 공개하는 건 좀 그렇고 한 달에 대기업 과장급 이상의 연봉은 받아요.

들어오는 일을 다 맡진 않으실 텐데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착한 회사가 우선이에요. 싸가지 없는 회사랑은 절대 일 안 해요. 직원들 함부로 대하고 고객 배려 안 하는 그런 곳은 노(no)입니다. 이제 골라서 할 정도는 됐으니까.(웃음)

하루 스케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각 회사와의 업무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대면·비대면 회의를 다 하는데요, 평상시엔 주로 카카오톡으로 커뮤니케이션해요. (카톡창 하나를 보여주며) 방금 전에도 이런 식으로 쭉 업무 지시를 했어요. 세세한 방향 설정이나 일상적 업무는 개별 담당자들이 다 하는 거고, 저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게 조언해줍니다.

관점을 달리한다는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든다면요?
음… ‘쌀눈쌀’이라고 아세요? (고개를 저으니) 기존 백미보다 영양분이 13배 더 많다고 하는데 대부분 잘 모릅니다. 제가 컨설팅하는 본죽에서 쌀눈쌀을 메뉴에 넣었어요. 근데 사람들에게 쉽게 인식되질 않는 거죠. 그래서 쌀눈쌀 대신 ‘눈을 뜬 쌀’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친환경 용기는 ‘지구로 돌아가는 그릇’, 냉이바지락죽은 ‘바다에 뿌리내린 봄’ 등 이런 식으로 카피라이팅에까지 다 관여하는 거예요.

관점이 달라지면 남들이 못 보는 걸 보게 되고, 그게 바로 경쟁력이 돼요. 물론 해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작은 차이 때문에 달라집니다. 그 차이를 캐치해내는 힘이 필요한 거고, 많은 회사들이 저를 찾는 이유가 되겠죠.

단소리·쓴소리

박 대표는 잡지사 기자 시절 관점을 달리하는 법을 배웠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난 덕분이었다. 당시 자동차생활의 김재관 회장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저를 미스터박이라고 부르셨는데, 종종 ‘미스터박! 저 잡지는 잘 되고 왜 이 잡지는 안 될까?’라고 물어보셨어요. ‘모르겠는데요’ 하면 ‘책 12권씩을 꽂아놓고 다시 봐봐’ 그러셨어요. 세네카(앞표지와 뒷표지 사이 책등)를 보면 일 년 열두 달 동안 걔들(주제)이 흩어졌는지, 한 방향을 보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무슨 얘길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이후 박 대표는 <PC사랑> 편집장과 <씨넷코리아> 지사장 등을 지내며 미디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기자라는 업으로 옮겨갔다. 단소리와 쓴소리가 오갔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관점 디자이너에요. 야마(핵심주제)를 잡으니까. 그래서 기사가 되게 할 수도, 반대로 안 되게 할 수도 있어요. 일부러 관점을 틀어서 사안을 왜곡되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사이비(기자)죠. 사이비(似而非)는 겉으론 진짜인 듯 하지만 본질은 가짜라는 의미인데,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요. 사적(私)인 이익(益)을 위해서 아닌(非) 거를 기라고 왜곡하는 놈들이 진짜 사이비에요. 기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 많아요. 요즘 지적되고 있는 포털 저널리즘 문제도 그런 사이비들이 날뛰기 때문이에요.”

일부 ‘건방진’ 기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도 이어졌다.

“간혹 매체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기자들이 있어요. OO일보 타이틀 떼는 순간 저도 바로 일반인인데 끝까지 ‘OO일보 기자님’으로 불릴 것처럼 함부로 행동해요. 사람들은 그 뒤 부처님(언론사)을 보고 합장하는 건데 자기한테 그러는 줄 알고 착각하면서. 그런 애들은 현직 떠나면 주변인들이 번호 삭제하거나 차단하기 일쑤에요. 참 불쌍하게 사는데 본인들은 그걸 몰라요.”

▲ "사적(私)인 이익(益)을 위해서 아닌(非) 거를 기라고 왜곡하는 놈들이 진짜 사이비에요." 사진: 성혜련 기자

기자로 활동하다가 어떻게 PR분야로 넘어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원래부터 기자는 딱 10년만 하자 생각했어요. 더 하면 사람이 이상하게 될 것 같더라는…(웃음) 계획보다 1년을 더한 뒤에 개인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리먼 사태가 터지면서 잘 안됐어요. 친구한테 투자금까지 받았는데 못 갚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 친구 회사가 홍보·마케팅에 영 죽을 쑤고(?) 있길래 돈 대신 내가 그 일을 해주겠다, 월급 대신 매달 빚을 삭감해달라고 했어요. 그가 바로 김범수 의장이에요. 당시 회사는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IWILAB)이고요.

사연이 뭔가 드라마틱한데요,(웃음) 카카오톡에선 언제까지 무급으로 일하셨어요?
2010년 5월에 들어가서 2011년 1월부터 월급을 제대로 받았어요. 고맙다고 주더라고요.(웃음)

어떤 식으로 카톡 홍보를 하셨길래?
카카오톡은 착한 회사였어요. 김범수 자체가 착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카톡도 착한 서비스가 됐으면 했어요. 일단 무료여서 이용자 입장에선 문자메시지 비용을 아낄 수 있었기에 ‘착하다’는 건 어렵지 않게 성립됐고요.

한 발 더 나아가 ‘땡스카카오’로 포지셔닝되길 바랐습니다. 카톡 이모티콘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상황에서 스토어를 만드는 대신 선물하기 기능을 넣었고, 당시엔 광고도 일절 안 했어요. 강제로 우리 메시지를 노출하기보다 이용자들과 자연스레 대화하길 원했거든요. 친밀감을 위해 공지사항도 어린아이 말투로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용자들이 기꺼이 저희 친구가 돼줬어요.

한때 통신사들이 망 과부하를 이유로 카톡에 맹공을 퍼부은 적이 있었는데요. 저희는 거대기업들에 맞서 싸울 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어요. 대신 ‘억울하다’고 고객들에게 일렀죠. 통신사들이 문자메시지 사용 급감을 우려하고 있다는 쪽으로 관점을 바꿔주면서… 그러자 고객들이 나서서 통신사들과 싸워주셨어요. 통신사들이 자기네 이익 때문에 착한 서비스를 괴롭힌다는 인식이 잡히자 여론은 저희 손을 들어줬습니다.

▲ "지식 못지않게 생각도 진화해야 해요." 사진: 성혜련 기자
잘 나가는 카카오톡 홍보이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야인이 되셨는데.
원래부터 이용자 1억명이 넘으면 졸업하겠다고 공언했었어요. 그 정도 되면 제 역할은 다 하고, 다른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카톡을 착한 서비스로 포지셔닝한 것처럼 관점을 새롭게 디자인해 성공한 다른 사례가 있다면요?
배달의민족이요. 처음 자문을 맡았을 때 배달의민족 회사 슬로건이 ‘최첨단 전자찌라시’였습니다. 기발했지만 소왓(so what)이었어요. 그래서 슬로건을 ‘배달의 습관을 바꾸는 앱’으로 바꿨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직접 배달을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음식을 주문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니까 그 본질에 포커싱한 거죠.

대다수 직장인들이 그렇듯 PR인들 중에서도 현재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요. 박 대표님의 일반적이지 않은 궤적이 귀감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강 기자께 질문 하나 해볼게요. 지금껏 벌어놓은 게 뭐에요? 돈이에요, 명예에요, 사람이에요? (글쎄요라고 답하니) 저희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전 46살까지 벌어놓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근데 스스론 사람을 벌어놨다고 자신했어요. 돌아보면 제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신병철 전 CJ그룹 부사장에게서 들은 얘기인데요, 자기가 삼성전자 대리 시절 미국으로 연수를 갔는데, 부장으로 모시던 분이 UCLA 앞에서 호떡장사를 하더래요. 명색이 삼성 부장이셨는데 좀 창피하시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분 말씀이 ‘호떡장사가 창피한 게 아니라 남과 다른 호떡을 못 만드는 게 창피하다’였대요.

PR하는 사람도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내 위치에서 벌어놓는 것을 밑천으로 앞으로 벌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해요.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창피한 게 아니라, 조그만 회사에서조차 자기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그걸 더 창피해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몇 년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분야도 많은 변화가 있어왔는데요. 관점디자이너로서 지금과 같은 때 꼭 바꿔야 할 관점을 꼽는다면.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이 성공의 재료도 되지만 그 앎이 성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지식 못지않게 생각도 진화해야 해요. 특히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터들은 더 진화해야 해요. 내 생각이 현재 맥락에서 통하는 것인지 늘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야 합니다. 같은 패턴으로 보고, 일하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봐요.

두 개 더 보는 놈

앞으로 세상에 없는 독특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A트리플(A-Triple)’이라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브랜딩, PR, 마케팅, 디자인이란 네 가지 축에 펀딩을 더해 분야별 전문가 7명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은 액티베이션(Activation, 활성)·액셀러레이션(acceleration, 가속)·앰플리피케이션(amplification, 증폭)의 3A로 시너지를 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5개 영역이 합쳐지는데 왜 하필 7명이냐는 질문에 “동양을 대표하는 숫자가 5인데 비해, 서양은 7이다. 7은 완전수이자 행운의 숫자”라며 “(5보다) 두 개 더 보는 놈이 있어야 잘 될 것 같다”는 엉뚱하지만 그럴싸한 답변이 돌아왔다. 관점디자이너로 벌어들이는 지금의 밑천을 A트리플에 어떻게 쏟아놓을지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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