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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장발장들이 사라질때까지…벌금 못내 옥살이 위기 처한 이들을 위한 '장발장 은행'
승인 2015.12.11  09:03:56
이윤주 기자  | skyavenue@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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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질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청년. 형제가 세 명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 예비군 불참을 이유로 벌금 100만원이 부과됐다. 급기야 지명수배까지 내려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한다. 

#2.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가장.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생활이 힘들어 대포통장에 손을 대 10만원을 벌었지만 벌금 200만원이 부과됐다. 대부업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더 이상 돈 구할 곳은 없다. 휴대폰 요금도 미납된 상태이지만 이마저 정지되면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단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하지만 죄질이 나쁜 것이 아님에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하는 기구한 사연은 현 시점에도 유효하다.

실제 벌금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낼 형편이 안돼 옥살이를 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돈없고 ‘빽’없다면 당신의 이웃이나 우연히 버스 옆 자리에 앉은 청년, 혹은 당신도 21세기의 장발장이 될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월 설립된 ‘장발장은행’은 이 시대의 장발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벌금 미납으로 인한 교도소 구금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이 은행의 취지다. 

   
▲ 장발장 은행에 걸려있는 '철수'작품./사진: 이윤주기자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현금으로 내지 못하는 사람은 교도소 내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이른바 환형유치를 당해야만 한다. 장발장은행은 후원금을 모아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운영은 인권연대가 맡고 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온 사람이 적지않다는 사실을 알게된 오창익 사무국장이 지난 2013년 결성한 ‘43199위원회’가 그 시작이다. 43199라는 숫자는 노역장 유치건수를 의미한다. 이 모임이 장발장은행으로 발전해 현재에 이르렀다. 

<더피알>과 만난 오 국장은 “감옥 가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 위기다. 힘든 시기에 손을 잡아준다면 그들은 평생 그 손의 온기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12월 10일 기준 장발장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이들은 총 272명. 액수는 수십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다양하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상환금액과 금액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추가로 상환기간과 액수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장발장은행 측은 기약없는 대출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오 국장은 “얼마가 걸릴지는 몰라도 그들은 결국 다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믿음을 표했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후원금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까닭이다. 

‘사람살리는 은행’ 목표

장발장은행의 대출은 7명으로 구성된 대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다. 대출기준은 ‘얼마나 더 절실한가’이다.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그리고 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와 차상위 계층이 우선 대상이다. 물론 ‘죄질’도 고려대상이다. 성폭행이나 음주운전 같은 범죄는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현재 장발장은행이 후원받은 금액은 5억원에 달한다. 실명 대신 ‘좋은일 감사해요’ ‘OOO고 1-4반’ ‘장발장은 내친구’ 등의 이름으로 후원한 이들도 있다. 이들 개인후원자는 장발장 은행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큰 힘이기도 하다. 

   
▲ 지난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 ⓒ뉴시스

장발장은행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이다.

지난 6월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로 간 장발장’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염수경 추기경이 1일 은행장을 맡아 뜻을 함께했다. 

채무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주고있는 비영리단체 주빌리은행과도 10일 업무협약식을 통해 손을 잡았다. 이에 따라 장발장은행 대출신청자 중 채무상담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주빌리은행이 심층적 채무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또한, 채무상담 진행 중 필요한 경우에 한해, 주빌리은행이 개별 채권 매입을 진행하고 상담자는 본인 상황에 맞게 금전 또는 재능 기부를 통해 주빌리은행에 상환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다. 

장발장은행의 역할은 단지 돈을 빌려주는데만 국한돼있지 않다. 벌금분납제, 벌금형 집행유예, 소득 차이에 따른 벌금액 차등 등 이른바 ‘장발장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9일 ‘장발장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경제적 사정에 따른 벌금 산정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오 국장은 “국내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장발장법’이 2년 뒤에야 시행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발장은행의 목표는 단순하지만 원대하다. 오 국장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은행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은행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많은 ‘21세기 장발장’들이 벌금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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