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와 영화 밀양의 기시감
위안부 합의와 영화 밀양의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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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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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할머니들께 먼저 용서 구했어야

한·일 외교장관의 12·2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양국 정부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학가에서도 합의 폐기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통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과 그에 따른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박근혜정부가 기왕에 내세웠던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준이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피해자인 할머니들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고 본다. 할머니들이 수용할 만한 합의를 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수용할 만한 합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먼저 고려해야 했던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이었다.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달래드려야 했다.

만약 두 나라 외교 당국자가 합의 전에 할머니들을 한두 차례라도 찾아가 진행 상황과 내용 등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미흡하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면 할머니들이 이토록 섭섭해 하고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의 울분은 비판 여론의 진앙지가 됐다.

▲ 새해 첫날인 1일 경기도 광주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유희남 할머니가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뉴시스
일련의 사태 추이를 보며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아들이 유괴·살해된 엄마로 분한 전도연은 개신교 신자들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어렵게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교도소에 수감된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려는 순간, 그는 이미 하나님께 회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얘기한다.

전도연은 자신에게 용서를 청하지도 않은 범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셨다고 얘기하는 데 분노를 느끼며 자신은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열연한 전도연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태복음 5장 23~24절도 떠오른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 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물을 드리기 전에,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에게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청해 화해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전도연이 분한 엄마와 같은 소외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았을까. 정작 할머니들에게는 사죄하지 않았고 할머니들이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는 일본 정부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과연 할머니들의 대변자이자 중재자로서 제 역할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할머니들을 도외시하고 합의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새누리당에 대해 지적했듯이, 정부도 ‘무대뽀’ 정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심 대표는 지난해 11월 국정교과서 강행 처리를 예로 들며 “여당이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이라며 “갈등적 현안에 대한 이해 절충과 타협을 위한 최소한 노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사실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 어떤 사죄의 표현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전장을 전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처절하게 짓밟힌 그 한이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전에 위안부 소녀상 옆에 할머니상이 함께 설치돼 있다. ⓒ뉴시스

게다가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정부도 할 만큼 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합의문 중 일본 외상이 읽은 ‘군의 관여’, ‘정부의 책임 통감’, ‘일본국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표현은 진일보한 것이다. “위안부는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일본 극우세력들도 이번 합의에 대해 ‘끓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할머니들을 더더욱 참여시켰어야 했다. 협의과정을 설명하면서 할머니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어야 마땅했다.

일본의 일·한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이 오는 5월 일본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을 방문해 할머니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를 청한다면 할머니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늦었지만 우리 외교부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할머니들을 방문해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이다. 할머니들은 제3자가 아니다.

다만 12·28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인 만큼 앞으로 우리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재론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우리 정부가 주장해서 넣었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 일이고, 사실이 그렇다면 당국자들의 기본 소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일한 합의 강력 항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ap/뉴시스

어찌됐든 민간 차원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재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간에서 재론하는 것을 우리 정부가 막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소녀상 이전을 막기 위해 범국민 모금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전제로 10억엔(한화 약 97억원)을 건넨다는 것은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다름 없다.

이번 합의는 일본 정부가 스스로 사죄하는 것을 막지 않고 있다. 독일은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책임에 대해 사죄를 멈추지 않는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현 메르켈 총리도 기회가 될 때마다 사죄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은 반인륜적 범죄다. 위안부 피해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만, 중국,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에 이르는 만큼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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