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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기본’으로 돌아가자”[인터뷰] 20여년 ‘대추씨’ 연재한 <서울신문> 조기영 화백

[더피알=문용필 기자] 일간지 한 켠에 자리 잡은 시사만화는 ‘3초의 미학’이다. 단 한 컷, 또는 네 컷만으로 그날의 이슈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독자들에게 촌철살인의 짜릿함을 안겨준다.

물론 ‘신문의 꽃’은 톱기사지만 신문만화는 텍스트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풍자의 묘미를 선사하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고바우 영감’와 ‘왈순아지매’ 등 주옥같은 시사만화들은 한국 만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 조기영 <서울신문> 화백. 사진:성혜련 기자

그러나 최근 들어 시사만화의 인기는 한풀 꺾인 모양새다. 국내 9대 종합일간지 중 4컷 만화를 연재하는 신문은 두 개에 불과하다. 1컷짜리 만평은 여전히 건재한 듯 하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마저도 싣지 않은지 오래다. 왜 이렇게 신문 시사만화가 ‘찬밥대우’를 받게 된 것일까. 앞으로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

“안타까울 뿐이에요. 요즘에는 만화하면 웹툰을 보지, 신문만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조기영 화백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시사만화의 현실에 대해 한숨을 내쉬었다. 시사만화가라는 직업을 ‘천직’처럼 생각한다는 조 화백은 “예전에는 시사만화가 큰 역할을 했는데 현재 한국시사만화가협회 회원 명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이름 앞에 ‘전(前)’자가 붙는다”고 했다. 그만큼 시사만화가의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조 화백은 현재 9대 종합일간지에서 4컷 만화를 연재중인 ‘유이(有二)’한 시사만화가다.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대추씨는 지난 1993년 6월 1일 연재를 시작해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자들을 만났다. 횟수로만 7000회를 넘길 정도로 장수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머지 한 명은 <경향신문>에서 ‘장도리’를 그리고 있는 박순찬 화백. 이들의 연재가 중단되면 한국 신문 역사와 궤를 같이했던 4컷 만화의 명맥이 위태로울 판이다.

조 화백도 이같은 현실에 적잖은 위기의식을 갖는 듯했다.

   
▲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효시로 꼽히는 <대한민보> 이도영 화백의 만평.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실 한국 시사만화는 곧 한국 만화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한국 만화의 효시로 불리는 작품이 1902년 <대한민보>에 연재된 이도영 화백의 한컷 만평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은 1955년 2월 1일 <동아일보>에서의 연재를 시작으로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등을 거치며 1만4000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화려한 과거를 가진 한국의 시사만화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데에 조 화백은 인터넷, 혹은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전통적인 올드미디어인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인터넷 영향이 가장 커요.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신문이 사양화되다보니 신문만화도 내리막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요. 요즘은 또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가 많다보니 사람들이 그걸로 재미를 해소하잖아요. 그래서 신문만화에 눈길을 안 주게 되는 거죠.”

4컷 만화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는 다른 사연도 있다. “몇몇 메이저 신문사들 (무관심) 때문인 것도 있어요. 가장 큰 신문사들이 4컷 만화를 연재하지 않다보니 다른 신문사들도 안하게 되는 거죠.”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했던 조 화백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4컷 만화의 위상이 여전하다고 조 화백은 말했다. 그는 “강한 정치색보다는 가정적인 분위기의 만화가 주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치풍자를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정치인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다. 4컷 만화의 천국이다”며 부러움을 표했다.

“모바일 시대 변화 두렵기도 해”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따지고 보면 시사만화는 모바일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콘텐츠 중 하나라는 점이다. 한 컷, 혹은 네 컷으로 무엇보다 짧다. 특히 4컷 만화의 경우 비교적 간단한 그림체와 특징적인 캐릭터로 구성돼 있기에 스마트폰의 작은 스크린에서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 조 화백이 가장 기억나는 회차로 꼽은 2008년 6월 4일자 ‘대추씨’. 이미지 제공: 조기영

이는 모바일 시대의 주요한 콘텐츠 소비경향인 ‘스낵컬처’에 충분히 부합한다. 재미 면에서는 몰라도 가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웹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신문사들도 시사만화에 아예 신경을 끊은 것은 아니다. 조 화백은 “독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잘) 볼 수 있도록 SNS에 올려주기도 하고 홈페이지에서도 노출이 잘 되도록 재미있는 기사 중간에 배치하기도 한다”며 “나름대로 신문만화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스타작가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드라마와 영화화가 속속 진행되는 웹툰의 위상에 비하면 신문 시사만화에 대한 관심은 비교할 수 없이 작다.(관련기사: 둘리의 후예들, 온라인 ‘효자 콘텐츠’ 되다)

시사만화의 형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떤 분들은 시사만화가 전형적인 4컷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광수생각’처럼 컷을 넓혀서 자유롭게 구상하는 것처럼요.”

웹툰에 대해서도 그는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조 화백은 “만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만화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만화 자체가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웹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짤 수 있을까. (스크롤을) 내려서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너무 잘하더라고요. 보통 상상력이 아니라서 감탄했어요. 실력을 떠나서 저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조 화백은 현재 연재되고 있는 4컷 만화에 선뜻 변화를 주기는 두렵다고 했다. “20여년 간 유지해온 틀이 있는데 갑자기 다른 형식을 들고 갈 용기가 선뜻 안 생겨요. 오히려 반응이 안 좋아지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고요.” 현재로썬 가급적 ‘전통적 시사만화’의 틀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씨’

이쯤에서 조 화백이 <서울신문>에 대추씨를 연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그의 기억이 20여년 전 청년시절로 돌아갔다.

“한국일보에서 ‘심마니’를 연재하신 심민섭 화백께서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당시 서울신문에 연재됐던 작품이 윤영옥 화백의 ‘까투리여사’였는데 그 분이 정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어요. 후임을 서울신문 이사께서 구하고 계시던 차에 중앙일보 정운경 화백과 친해서 부탁을 하셨고, 정 화백이 심 화백께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했던 거죠.”

뜻하지 않은 제의를 받은 조 화백은 4컷 만화 30개를 그려 정 화백을 찾아갔다. 정 화백은 다시 5개의 작품을 추려 추천서와 함께 그를 <서울신문>에 소개했고 그렇게 그는 신문사에 입사해 대추씨를 연재하게 됐다.

대추씨라는 이름에 거창한 뜻은 없다.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지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고. 여기에 사람을 부르는 ‘~씨’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캐릭터의 경우 처음에는 코가 큰 편이었지만 현재는 조금 작아졌다고 조 화백은 설명했다.

   
▲ 조 화백은 “만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만화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웹툰의 성장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진:성혜련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조 화백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그렸던 만화 하나를 소개했다. 집권 100일을 맞아 청와대에서 축하케이크를 켰는데 촛불을 아무리 불어도 꺼지지 않는 내용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등 이명박 정부 초기 잇달았던 촛불집회를 풍자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완구 전 총리의 이름을 갖고 삼행시를 만든 만화가 반응이 괜찮았다고 조 화백은 말했다.

조 화백의 작업 스타일은 다소 특이하다. 그날 연재할 작품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 개를 그린다. 그 중 편집국장이 선택한 한 작품이 신문에 실리게 된다.

버려지는 작품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저 매일매일 시사만화를 그리는 게 즐거울 뿐이다.

“선배들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 것을 보고 작품을 스트레스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연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만화를 안 그리고 쉬는 날은 (하루가) 싱거울 정도에요. 20여년을 했어도 처음과 같이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조 화백은 신문사 시스템처럼 ‘데일리형’ 만화가이기도 하다. “일을 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평소에는 일을 잊는 스타일이에요. 포털을 통해 기사를 열심히 보면서 만화화될 포인트를 찾고 아이디어를 짜죠. 평소에 길을 걷다가 신문가판 제목을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는 시사만화의 인기는 결국 ‘재미’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4컷 안에서 짜릿한 재미를 주기 때문인데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제아무리 특이한 형식을 빌린다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어요.”

“논조 벗어나 독자 위한 만화 그려야”

   
▲ 조 화백이 <더피알>을 위해 그린 ‘대추씨’ 캐릭터.

그렇다면 조 화백이 제언하는 한국 시사만화의 발전방향은 무엇일까. 조 화백은 신문만화가 정파성을 띄기 보다는 그날의 이슈를 재미있고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느 순간부터 신문만화가 진보와 보수로 갈리더라고요. 물론 너무 중립적으로만 그리면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잘못된 점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고 저는 배웠거든요. 신문사 논조에만 치우치지 말고 독자를 위한 만화를 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시사만화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조 화백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쩌면 초심을 잃지 않고 기본을 지켜온 그의 고집이 대추씨의 20년 연재를 가능케 했던 가장 큰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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