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명성회복전략 vs 침묵 PR전략
공격적 명성회복전략 vs 침묵 PR전략
  • 최영택 (admin@the-pr.co.kr)
  • 승인 2010.12.0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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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택의 PR 3.0

얼마전 주말을 틈내 고교동창 및 부인들 70명과 함께 무박3일 29시간 동안 완도, 청산도, 신지도, 중도 등 4개 섬을 둘러 봤다. 우리 나이에 다소 무리하다 싶은 여행이었지만 완도출신 친구가 주선하고, 날씨도 좋고, 먹거리가 풍부하기에 참가해 짧지만 멋진 추억거리를 남겼다. 금요일 밤 10시 반에 서울을 출발한 3대의 우등버스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밤새운 대화와 소주를 싣고 달려 새벽 4시 반 완도에 도착했다. 잠시 찜질방에서 눈을 붙이고 남도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청산도행 배에 올랐다. 선착장 앞 무인도의 곱게 물든 단풍을 촬영해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사진을 올리며 새삼 소셜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했다.

초겨울 날씨인데도 갑판 위를 스치는 바람이 그리 춥지 않을 정도로 남녘바다는 따뜻함을 머금고 있었고 오랜만의 바다 나들이에 연방 카메라 셔터들을 눌러 댔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청산도는 가을 단풍이 한창이었다. 여의도 6배 크기에 인구는 2300명, 대부분이 노인들로 아기 울음소리가 반가운 섬이었다. 비어있는 집들이 많고 폐교된 학교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추구하자는 슬로우시티용 건물로 재활용되고 있었다.

서편제를 촬영한 초가집 옆 방앗간에서는 통통거리는 방아가 추수한 쌀을 찧어대고, 마음씨 좋은 아낙은 바가지에 쌀을 담아와 여행객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모습이 호랑이를 닮았다는 범바위에서 내려다본 김, 미역 양식장은 평화로웠고, 돌담길을 걸으며 안내원이 들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의 얘기가 정겨웠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어린 남녀 아이들이 뛰어 놀던 노란 유채꽃밭을 상상하면서 갓 자란 보리밭과 마늘밭 이랑 사이를 걸었다. 청산도를 이탈리아 카프리섬처럼 노래하는 기사가 안내하는 관광버스 투어와 케이블카로 꾸미면 좋은 관광상품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완도를 떠난 지 40여년이지만 고향은 언제나 고향이라고, 완도출신 친구 덕에 완도군청 과장이 앞장서고 영어학원을 경영하는 부부가 안내원으로 나서 완도타워, 해신 촬영지, 장보고 박물관 등을 모두 무료로 관람했다. 또 모래가 고운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해변가에서는 어둠 속 합창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고향출신 한 명이 70여명을 동원하고 그 70여명이 또 다른 수백명에게 연결하는 다단계 홍보도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홍보방안이 아닐까 한다. 도, 시, 군 등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홍보를 위해 축제를 열기도 하고, 버스 지하철 광고를 이용하고,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활용해 여행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완도군 공무원들은 주말임에도, 사적인 방문임에도 스스로 나와 유적지와 특산물 장터로 안내하고 저녁자리까지 함께하며 내 고장 PR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 시간 한 울타리에서 갈라진 두 그룹간에는 비방과 침묵의 대조적인 홍보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자체도 내 고장 PR에 총력전

고 정주영회장이 세운 현대그룹의 모체 현대건설을 놓고 지난 몇 달 동안 벌였던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간 인수전은 현대그룹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지난달 16일 채권단은 인수가격에서 4100억 원을 더 써낸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는데, 이에 대해 재계는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다윗(현대그룹)이 골리앗(현대자동차그룹)을 이겼다는 비유도 하고 언론에서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즉 명분에서 소리를 내고 자금으로 공격해 이겼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이전 몇 달 동안 TV CF와 신문 전면광고로 명분과 적통성을 강조하며 홍보전에 나섰고, 모 회사 사장은 이에 대해 차라리 광고비를 인수자금에나 쓸 일이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친필 위임장까지 공개하며 명분쌓기에 올인하면서도 실제적으로 가격 면에서 승부를 건 현대그룹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체절명의 배수진을 치고 그룹역량을 총동원해 비가격 요소에서 뒤지는 부분까지도 가격으로 커버한 역발상과 절박함의 승리였다.

이번 인수전을 PR전략 면에서 볼 때 현대그룹은 적통성을 내세우고 명분을 강조하며 광고를 통해서라도 공중들에 읍소하는 공격적인 PR전략,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에 반해 현대자동차그룹은 명분에서 뒤지지만 인수전은 홍보전이 아니라 결국은 자금과 가격에서 결정된다고 판단하고 홍보전에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 침묵전략을 세우고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PR전략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침묵전략에 대해 필자는 대학 강의시에도 학생들에게 지금처럼 모든 것이 투명하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시기에 침묵전략이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가르쳤다.

침묵→소통으로 바뀌는 현실 간과 말아야

현대차그룹은 상대편의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홍보전략을 수립하고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논리에 의한 주장을 펼쳐나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기업의 홍보가 무대응에서 대응으로, 침묵에서 소통으로 바뀌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침묵전략 보다는 이슈전환, 신규이슈 창출이나 신뢰회복 전략을 써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전략수립도 기업문화나 총수의 스타일에서 비롯되므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PR전문가에 의해 PR전략이 수립되지 않고 단순히 윗사람의 지시나 판단에 의해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될 때 오류나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는데, 결국은 그 책임이 윗사람보다는 PR담당임원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현대그룹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장의 예상보다 무려 1조5000억원을 더 써내 막대한 자금부담을 안고 있고, 외환은행과의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문제도 풀어야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처럼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전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결과 진정한 승리자로 남기를 바란다. 경쟁의 결과로 초래된 인수자금의 낭비가 또 다시 기업성장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분에서 홍보에서 가격에서 이기고도, 자금에서 지는 사례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한쪽은 인수전의 승리를 챙겼고, 다른 한쪽은 주가 등 실리를 챙겼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간의 갈등, 시아주버니와 제수씨의 대결, 출혈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입찰가격과 채권단의 배불림 등에 대해 국민과 업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두 그룹은 이러한 점들을 인식해 지금부터라도 이미지회복 전략을 세워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승자와 패자, 앙숙관계가 아니라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양쪽 홍보진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 공동PR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아직까지 현대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에 감히 건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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