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사 페북지기의 고백
어느 언론사 페북지기의 고백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6.03.24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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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운영 회의감이 나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SNS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언론들도 ‘페이스북 마케팅’에 뛰어든지 오래입니다.

각 언론사가 너나 할 것 없이 페이지를 열고 ‘좋아요’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문제는 뚜렷한 목적과 차별화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흥미위주의 정보천편일률적 카드뉴스, 종잡을 수 없는 드립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개별 언론사의 브랜드는 사라지고 뉴스 소비자와의 관계구축이라는 본질과도 멀어진 상황입니다. 포털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묻지마 클릭경쟁’이 페북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쓴소리도 들리는데요.

이와 관련, 언론사 SNS 채널을 운영했던 한 페북지기는 “자조와 열패감이 날로 더해졌다”는 말로 국내 언론의 현주소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의 동의를 얻어 해당 글의 전문을 공유합니다.

언론사 SNS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감이었다. 사실 에디터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조와 열패감은 날로 더해졌다.

A라는 기사가 있다고 치자. 이게 괜찮은 소재라면 아마 거의 모든 언론사 SNS 계정이 큐레이션을 해서 자신의 계정을 통해 소개할 것이다. 큐레이션은 분명 언론사와 에디터마다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수많은 언론사가 같은 뉴스에 대해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차별성이 존재하기 어렵다. 포털 뉴스와 마찬가지로 SNS에서조차 독자들은 여전히 언론사 브랜드와는 큰 상관없이 뉴스를 소비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SNS에서 기사를 소개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고, (오히려 광고를 위해 돈을 쓴다. 에디터 인건비도 들어간다. 자사 홈페이지로 유입되는 비중은 무척 낮고 그중에서도 광고로 전환되는 비율은 더더욱 낮다) 그렇다고 언론사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큐레이션과는 별개로 콘텐츠 그 자체가 위대하지 않다면 흥행은 오래가지 않는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S사가 잘 했던 것은 콘텐츠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돈을 벌지는 못했다. 다만 브랜딩이라는 관점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되려면 돈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언론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돈, 시간 그리고 인력. 그렇기 때문에 S사는 위대했다. 다만 인력의 상당수를 비정규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에서 몇 퍼센트 모자란 아쉬움이다.

C사는 S사와는 다른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콘텐츠가 아니라 큐레이션 영역이었다. C사의 ‘패드립’(패륜적 드립)이 인기를 얻으면서 언론사 SNS 계정은 드립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설프거나 어색한 드립이 난립한 것도 이때부터다.

드립은 위에서 괜찮다고 하라고 해서 갑자기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의 행태와 언어, 분위기들을 충분히 읽고 거기에 맞는 짤이나 멘트를 구사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에디터의 센스와 감각 그리고 오랜 기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드립 그 자체가 아니라 언론사의 품격에 대한 것이었다. 언론사가 SNS에 기사를 공유하면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사실의 전달 혹은 여론의 형성이다. 말장난으로 사용자들과 키득키득 거리는 부분은 때로는 필요하지만 일부에 그쳐야한다.

물론 고객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사는 일반 기업과 성격이 다르다. 홍보와 커뮤니티는 부수적인 일이다. 무엇보다도 C사의 SNS 에디터는 누가 봐도 ‘일베코드’, 그러니까 여성혐오와 약자혐오, 지역차별 등에 기반해 큐레이션에 나서고 있다. 이는 품격 있는 언론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기업이 타깃을 정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지켜야할 선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 언론사라면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C사의 페이스북은 낙제점에 가깝다. 특정 유저를 열광시킬 순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패륜’이다.

S사처럼 콘텐츠로 승부를 걸지 못했던 점, 그리고 패드립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느냐는 회의감이 나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그건 참 슬픈 일이었다.

한편, SNS를 운영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역설적이게도 사용자들과의 교감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여론 형성이었다. 그게 없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흡사 마약과도 같다. (이용자) 반응에 이끌려 이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고민과 주의를 요구한다.

내가 생각하는 언론사 SNS 에디터의 미덕은 저널리즘과 사회에 대한 고민 그리고 끊임없는 모니터링이다. 드립은 정말로 부수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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