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_결국_who의_문제 1
#브랜드_결국_who의_문제 1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6.06.10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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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텔링 1+1] 불신의 시대, 확장되는 고객의 시선

브랜드텔링 1+1이란..?
같거나 다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나의 브랜딩 화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해석.

[더피알=원충렬] 브랜드는 무엇(what)에 해당할까, 아니면 누구(Who)에 해당할까? 당연히 무엇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거나 브랜드가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데 많은 브랜드들이 고객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고자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노력한다. 의인화된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브랜드를 대변하는 화자를 통해 페르소나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거나, CEO를 비롯한 내부 직원이 직접 커뮤니케이션 일선에 나서는 것들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브랜딩이라는 일이 결국 감성 영역의 상호작용이라고 한다면, 사물과 사람의 관계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유대가 추구해야 할 상위목표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같은 브랜드’라고 이야기하면 언뜻 살가운 느낌이 들어도, ‘사람인척 하는 브랜드’라고 표현하면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브랜드의 민낯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토 박사가 말한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라는 현상이 있다.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기계를 볼 때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나 혐오감을 의미한다.

외양에 대한 거부반응이긴 하지만 형태가 따로 없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해서도 비슷한 집단 포비아가 나타났던 걸 보면 반드시 눈에 보이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문득 브랜드에도 언캐니밸리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경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가 웃는 얼굴로 전하는 약속이 영혼 없는 기계적 수사로 느껴지는 순간, 목적했던 친근함과 신뢰의 이미지가 오히려 강렬한 반감으로 전이될 수 있겠다는 우려다.

최근 ‘사람인척 했던 브랜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다. 해당 사건이 주는 파장은 컸다.

물론 이전에도 땅콩회항이나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 같은 일들이 종종 일어나며 공들여 가꾼 브랜드가 어떻게 한방에 훅 가는지 목격했고, 줄기차게 외쳐왔던 브랜드의 진정성이 어떻게 코미디로 변하는지도 봤다.

하지만 옥시 사건은 ‘단지 네가 하는 말을 다 믿기는 어려워’라는 불신의 영역을 뛰어 넘어, ‘네가 하는 말을 믿다가 내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구나’하는 위협과 공포를 경험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전과 달랐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이번 사태를 쭉 지켜보다 공식 사과 자리에 선 임원이나 내부 담당자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뜬금없이 ‘왜 이런 자리엔 해당 브랜드의 광고모델이나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타 울라시드 샤프달 옥시 대표가 지난 5월2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5년 만에 첫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라면 광고모델 설현이, 에스오일이라면 캐릭터 구도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보 같은 질문일 것이다. 애초에 모델이나 캐릭터가 책임을 지거나 사과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그러한 사실에 대한 환기다. 결국 브랜드 너머에는 반드시 실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 이를 모르는 소비자는 없다. 딱히 골똘히 생각할 상황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얼마 전 영화 ‘곡성’을 관람했다. 신경이 온통 곤두선 채로 봤던 영화의 포스터에는 ‘절대 현혹되지 마라’라는 카피가 있다. 나홍진 감독 역시 영화를 설명하는 인터뷰 중에 “대문 밖의 적을 식별할 수 없으니 의심해야 하고, 믿음과 의심은 쉽게 뒤섞인다”고 말했다.

‘당연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이 깨진 이후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을 향한 의심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며 작금의 사회상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고객으로 하여금 ‘브랜드에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되새김해주는 근래의 사건들을 보면서 친근한 동반자이거나 친절한 조력자로 포지셔닝한 많은 브랜드들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효력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고객들은 점점 더 잘 쓰인 카피와 세련된 패키지, 매력적인 성우의 내레이션을 헤집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넌 누구니?”

내부자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지니는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뜻한다. 많은 브랜드들은 완벽하거나 강력해야 하기에 의외로 이러한 인지상정에서는 쉽게 벗어나곤 한다.

너무나도 경쟁이 치열하기에 벌어지는 세상사의 일면이다. 불신은 그런 기계적 완벽함의 추구에서 더 쉽게 싹틀 수 있다. 완벽한 것은 없기에 완벽하다고 하면 오히려 뻥치지 말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브랜드는 결국 ‘무엇’이지 ‘누구’가 아니라 하지 않았나. 애초에 그러한 인지상정이, 인간다운 자연스러움(혹은 빈틈)이 용인될 대상은 아니다.

이제는 진짜 사람이 등장해야 할 차례일지 모른다. 이후의 브랜딩은 점점 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실체와 그에 대한 고객의 니즈뿐 아니라, 그 제품·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요구에 부응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이다. 실은 이미 그것을 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 웨그먼스 푸드마켓. 사진=공식 홈페이지.

미국 동북부 지역의 프리미엄 슈퍼마켓인 웨그먼스 푸드마켓(Wegmans Food Market)이 대표 케이스다. 해마다 경제전문 미디어에서 발표하는 ‘가장 일하고 싶은 미국 기업’의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이곳은 ‘고객보다 직원을 우선시한다’는 모토로 운영된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허울뿐인 공수표는 내부 직원과 고객 모두를 동시에 배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비로소 좋은 서비스와 완벽한 품질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철학은 일하는 직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쉽게 공감되고 납득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식료품을 파는 곳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맥락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의 문제이다.

브랜딩에 있어 그 안의 사람이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애초에 단기간에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형성된 개개인의 개성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의 문화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라는 것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거나 정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차별화되고 특별해 더욱 가치가 느껴지는’ 조직문화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점점 더 ‘스스로 현혹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나왔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자면,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충렬

브랜드메이저, 네이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등의 회사를 거치며 10년 넘게 브랜드에 대한 고민만 계속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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