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메이저, 뜨는 독립지
지는 메이저, 뜨는 독립지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6.06.2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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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퍼스트·디지털 웨이’ 매거진 시장의 상반된 표정

[더피알=이윤주 기자] 최근 메이저 잡지가 줄줄이 폐간하고 있다. 달라진 미디어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재정난에 시달리다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반면 독립잡지는 불모지를 개척하며 힘차게 줄기를 뻗고 있다. 저마다 독특한 꽃을 틔우며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라지는 기성잡지와 피어나는 독립잡지의 속사정을 살폈다.

‘디지털 전환, 미디어 융합 등으로 미디어 시장은 격변하고 있고 국내 잡지업계도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다. (중략) 재정비를 통해 다른 포맷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겠다.’ 지난 4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을 선언한 <레이디경향>의 ‘편집장 레터’ 일부분이다. 짧은 문장에도 잡지업계가 처한 고민과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다른 메이저 잡지들도 잇따라 휴·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 보그의 자매지 <보그걸코리아>가 작년 12월 폐간했고, 문학계간지 <세계의 문학>과 장애인 문학잡지 <솟대문학>이 같은 길을 걸었다.

IT 전문매체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휴간에 들어갔지만 조선비즈에 인수돼 겨우 살아남았다. 이밖에 휴간을 알린 몇몇 잡지들은 “독자들과 온라인에서 재회하겠다”며 기약 없는 재정비에 돌입했다.

메이저 잡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한국언론진흥재단 ‘2015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잡지 휴간 경험이 있는 언론사 중 45.3%는 휴간 원인으로 ‘재정악화’를 꼽았다. 이어 ‘내부사정’(36.0%), ‘판매부진’(10.7%), ‘인력부족’(6.7%), ‘기사 소재의 한계’(1.3%) 순으로 나타났다.

▲ 최근 폐간한 <레이디경향> <보그걸코리아> <솟대문학>

특히 잡지사 중 연간 매출액 1억원 미만이 절반(49.4%)을 차지할 정도로 산업 전체가 쪼그라들었다. 잡지사의 영세화는 앞으로 더 가속화돼 콘텐츠 질 하락과 독자의 외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 연명하는 잡지사도 늘어날 전망이다.

유승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잡지가 많은 편이라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출혈경쟁은 발행부수 감소와 잡지의 품질 하락, 독자의 외면으로 이어져 결국 폐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잡지 산업의 몰락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매년 펴내는 <소비자행태조사 보고서>에서 신문, 방송 등 10대 매체 이용시간 분석에 잡지 항목이 사라진 것.

최준혁 순천향대 교수는 “10대 매체 이용시간 분석에 2011년 잡지가 빠진 대신 2013년부터 모바일인터넷 항목이 새롭게 추가됐다”고 밝혔다. 잡지를 읽는 시간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네 카페 같은 독립잡지

잡지 산업이 고전하는 가운데 독립잡지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뚝심 있는 ‘마이웨이’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일상의 맛깔스런 취미를 다룬 <쏘-스>, 퇴직금을 털어 만들었다는 <사표>, 헤어진 여자 친구들의 수다 <9여친>, 여성을 위한 도색잡지인 <젖은잡지>, 엄마도 읽을 수 있는 건축 잡지 <매거진 파노라마> 등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콘텐츠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제각각의 매력을 뽐낸다.

▲ 독립잡지 <덕지덕지> <월간잉여> <boshu> 

독립출판 전문서점 ‘유어마인드’가 매년 개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는 ‘이런 게 책이 될 수 있나?’고 생각할 만한 독창성 있는 출판물들이 총집결한다. 참가자들의 수는 매년 늘어 작년에는 1만3000여명을 기록했다. 소규모 출판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유승철 교수는 이러한 독립잡지 출간 열풍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미디어가 파편화되면서 플레이어들이 많아지고 출·폐간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경쟁력을 가진 잡지도 탄생할 것”이란 분석이다.

독립출판인들 역시 이러한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연극배우들의 화보집을 만들겠다는 팬심 하나로 시작한 <덕지덕지>의 원종은 발행인은 “기존 잡지들이 폐간하는 것은 종이책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그럼에도 독립 출판물이 떠오르는 이유는 콘텐츠의 차이에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보던 책이 아닌, 나만 가질 수 있고 혼자만 알길 바라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한 것”이라며 독립잡지의 매력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독립잡지들은 ‘디지털 퍼스트’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 메이저지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플러스사이즈 사람을 위한 패션 잡지 <66100>은 많은 독자와 언론의 관심의 관심을 받았지만 곧 인쇄를 종료할 계획이다. 운영상의 어려움과 늘지 않는 독자층이 주된 이유.

▲ 플러스 사이즈 사람을 위한 패션 잡지 <66100>

반면 독립지라고 해서 종이로만 제작해야 한다는 편견은 없다. 김지양 발행인은 “종이잡지를 만들자는 것이 대전제가 아니고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종이매체로 만들지는 것은 상관없다”며 “조만간 웹 매거진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무가지 <보슈>의 서한나 발행인 역시 “종이잡지가 죽고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를 담아내는 게 종이냐 인터넷이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방법론보단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겉은 ‘무성’ 속은 ‘휘청’

독립잡지는 너도나도 뛰어들어 베이비붐 시대를 맞았지만 그들에게도 숙제는 있다. 수익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성이 급속히 낮아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2014년 휴간한 <바로그찌라시>의 발행인 김도현 씨는 “잡지는 연속성이 생명인데, 최근 등장하는 잡지들은 예술 행위처럼 단발성에 그치는 듯하다. 창간호는 거창하지만 점점 콘텐츠가 부실해지고 발행주기도 늘어진다”고 우려했다. 이는 “독립잡지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1년 출간한 <바로그찌라시>는 20호를 채우지 못한 채 2014년 중반 휴간했다. 내부적으로 버티는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의견과 변화가 필요한 정체기라는 주장이 엇갈렸지만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김 씨는 당시 잡지를 접을 수밖에 없던 이유로 ‘독립잡지 카테고리로서 독자층 확대의 한계’와 ‘수익성’ 두가지를 꼽았다. 그는 “소수독자의 취향에 (콘텐츠를) 맞추기엔 범위가 한정되고, 배제하려니 잡지의 근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수익성의 문제 역시 “독자들이 많지 않아 광고를 유치할 수 없을뿐더러 <바로그찌라시> 컨셉이 한 장짜리 찌라시기 때문에 광고를 실을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고민은 다른 독립잡지들도 비슷하다. 수익성은 독립잡지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어려운 숙제다. 독립잡지는 독특한 콘셉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엔 좋지만 쉽게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지도가 낮아 광고주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원종은 발행인은 “독립잡지는 기존 잡지와는 다르게 볼 수 없었던 콘텐츠를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그러나 실제 구독으로 연결되기에는 걸림돌이 많다”며 “광고를 받으면서도 광고주가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전했다.

<월간잉여>의 최서윤 발행인은 결국 광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잡지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단행본과 비슷한 성격을 띠는 잡지로 오래도록 낡지 않을 지식과 정보가 들어있고,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워 소장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독립적으로 살길 찾기

▲ <월간잉여>가 한국사회를 빗대어 만든 보드게임 '수저게임'.

과거보다 독립출판 시장이 훨씬 유연해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천 단위로 찍어내야 했던 대량인쇄 대신 소량디지털 인쇄방식의 적용에 따라 50부만 찍어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책을 유통할 수 있는 독립출판 서점들도 대학로와 홍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진 점은 잡지를 손에 받아보지 않고도 SNS를 이용, 잡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홍보가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얼핏 독립 출판 시장의 밝은 미래를 축하해야 할 것 같지만 변죽만 울리고 사라지는 독립 출판물들이 허다하다. 보이지 않는 벽이 많다.

독립출판물은 초기자본을 위해 ‘텀블벅’ ‘와디즈’ 등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주로 이용한다. 독립적인 창작·생산 생태계를 위한 플랫폼과의 협업인 셈.

하지만 모인 기금으로 잡지를 제작한 후 다시 배송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익을 얻기는 어렵다. 거기에 수수료 5%, 결제회사 수수료, 부가세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제로(0)다. 그러다보니 독립출판물 발행인들은 수익은커녕 적자라도 면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원종은 발행인은 “독립출판물은 일반 서점에 배치되기 어렵다. 독립 출판 서점에도 15군데 이상 입고했지만 그 중 4~5군데가 문을 닫았다”며 유통망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또 “(발행인이 잡지를 제작할) 여건이 힘들어지고 지칠 때, 누군가 이 콘텐츠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비슷한 콘텐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콘셉트를 표방한 유사한 잡지가 등장해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독립잡지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하는 모습이다. 최서윤 발행인이 불평등, 청년주거, 민주주의 등을 소재로 보드게임 ‘수저게임’을 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 발행인은 “관련 다큐멘터리 필름도 제작하고 싶어 독학도 하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해 외연을 확장하고 싶다”며 “게임, 영상, 음악과 같이 감각을 자극하는 매체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기 위해서 개인적인 욕망을 마음껏 발산할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김지양 발행인 역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의의를 뒀다. 기록하고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나쁘다, 의미 없다, 수익이 안되니까…’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독립잡지들의 발행 목적이 다르듯 각자의 형편도 다르다”면서도 “<66100>을 읽고 누군가의 삶이 변화됐다면 이 책은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변화될 사람들을 늘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기에 이만큼 온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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