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수 혹은 파트너? 기자들이 말하는 요즘 홍보인
웬수 혹은 파트너? 기자들이 말하는 요즘 홍보인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6.07.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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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기자-금성홍보인 下] ‘기브 앤 테이크’ 논리...‘뒷통수형’ ‘뺀질이형’ 등 승부욕 자극

화성남자와 금성여자는 자주 싸운다.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잘 지내려면 상대방을 바꾸는 대신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자와 PR인도 마찬가지다. 한솥밥 먹는 사이지만 이해득실만 따지다 오해가 깊어졌다. 관계 회복의 싹은 상대를 관찰하는 노력에서 움튼다. 기자 눈에 비친 요즘 PR(홍보)인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上> 기자가 기피하는 홍보인-선호하는 홍보인
<下> 웬수 혹은 파트너? 이런 홍보인 원한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기자들이 기피하는 홍보인과 선호하는 홍보인이 있듯, 이 사람은 홍보하면 안 된다 싶은 이상한(?) 유형도 있다.

현직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①질문의 핵심을 빗겨나 말장난으로 일관해 기분 나쁘게 하는 ‘뺀질이형’ ②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다 너무 오버해 부담스럽게 만드는 ‘기승전ME형’ ③친한 기자에게 회사욕이나 상사욕을 해 기본소양의 의심되는 ‘누워서 침뱉기형’ ④팩트에 맞게 기사 썼는데 막무가내로 내려달라고 떼쓰는 ‘징징이형’ 등이 대표적이다.

언론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홍보담당자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①기자들을 만나면서 거래처 사람처럼 상대하거나 ②기업 이슈에 대해 질문했는데 오히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고 반문할 때 ③기업 홍보를 위해 자료 달라는데 “줄 수 없다”거나 ④신문 인쇄 전 기사 쓴 거 미리 보여달라고 문의하는 경우 당황스럽다.

기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홍보인들은 ‘승부욕’을 불태우게 만든다. 인터넷신문 D기자는 “모 홍보인은 평소 말투도 틱틱대고 취재 질문에 자꾸 꼬투리를 잡아 별로였는데, 하루는 아픈 기사가 나간 뒤 곧바로 윗선에 연락해 기사를 날려버렸다”면서 “기자를 제치고 그런 식으로 대응하면 속된 말로 기분 더럽다. 기자로부터 ‘언제 한번 걸려봐라’고 주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픈 기사에 대해 협찬을 약속해놓고 ‘생까는’ 사례도 있다. 주간지 E국장은 “안티성 기사에 대해 협찬한다기에 일단 기사를 막아놨는데, 나중에 계산서 발행하려고 연락했더니 전화기 꺼져 있고 문자에 답도 없었다”며 “시의성 있는 이슈라 결국 기사는 못 내보냈다”고 황당해했다.

본업을 싫어하는 홍보인들도 간혹 눈에 띈다. 경제지 F기자는 “대기업 홍보팀 김 아무개는 그렇게 홍보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다 결국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고 회상했다. 업무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고 기자 쫓아다니며 아픈 기사 막는 게 일이라 회의감이 컸다는 설명이다.

요즘 기자들과 홍보인 관계는 어떨까? 대부분 기자들은 “예전보다 스킨십이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언론환경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터넷 매체가 급증하고 기자도 덩달아 늘면서 기업 홍보팀이 기자를 일일이 관리할 수 없게 됐다. 기자들도 언론사 생존 전략에 따라 ‘속보경쟁’과 행사의전 등 가욋일에 시달린다. “죽겠다”는 비명이 언론계 곳곳에서 들리고 홍보인은 “더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형국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기자와 홍보인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바쁘니 약속잡기 귀찮고 꼭 필요한 상황 아니면 전화로 ‘퉁 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저녁 술자리도 요즘은 점심에 간단한 반주로 대체하고, 인간적 관계보다 기계적 친분만 유지하는 ‘기브 앤 테이크’ 논리로 움직인다.

일간지 A부장은 “불황에 기업들은 홍보예산을 줄이고, 언론사 내부에서는 경영 악화를 기사로 풀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일선 기자들의 부담이 커진 건 사실”이라며 “홍보인 입장에서도 기자와 친해져봤자 광고요청만 거절하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깊은 관계 맺기를 꺼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종합지 B기자 역시 “경제지 기자들은 매일 속보치고 쓸데없는 데 팔려 다니기 바쁘다”면서 “기록자로서 역할이 아닌 부수적인 업무에 치이다 보니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과거처럼 서로 속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10년 이상 알고 지내는 홍보인들과는 육아, 교육, 이사문제 등 인간적 토크도 주고받지만, 지금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고로 기자에 ‘갑질’하는 기업도 생겨났다는 전언이다. 중소매체의 경우 “이 기사 안 내리면 연간 광고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홍보인을 원한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홍보인상(像)은 어떨까. 일단 기자나 홍보 모두 섣불리 예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눈길을 끈다. 한두 명 겪어보고 ‘모든 기자는 이렇다’, ‘모든 매체는 이럴 것이다’ 예단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상대를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A부장은 “예단하지 않으려면 서로의 매커니즘을 잘 알아야 한다”며 “홍보는 기자를, 기자는 홍보의 생리를 이해하고 상대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기자는 “홍보가 좀 더 쿨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건사고나 부정적 이슈에 대해 무조건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대신 ‘맞을 건 맞고 가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그는 “사이비언론이 계속 생겨나 언론 물을 흐리는 이유는 나쁜 기사가 돈이 되기 때문”이라며 “사이비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봤다. 이어 “악순환 고리를 끊는 건 솔직히 일선 기자들은 할 수 없다”면서 “홍보에서 버텨내면 좋은 언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잡지사 C기자는 “홍보인들도 공부 좀 하라”고 일침했다. 명색이 회사의 얼굴인데 내부 이슈에 대해 기자보다 모르는 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종합지 G부국장은 “급할 때만 찾고 사정 들어주면 나몰라라 하는 홍보인들은 안쓰럽고 불편하다”면서 “언론에 광고로 갑질말고 태세전환도 하지 말라”고 쓴소리를 냈다.

H논설위원은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좀 들어주고, 그렇지 않더라도 안 되는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는 게 기자와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광고든 협찬이든 부탁할 게 생기는데 이때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면 감정이 상할 수 있으니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이밖에 “자기들끼리 기자 뒷담화하는 홍보인들 있는데, 한 다리 건너면 귀에 다 들어온다”며 입조심을 당부하는 의견과 “기자가 한직에 갔다고 무시하다가 나중에 일선 복귀 후 큰 코 다친 홍보인이 여럿”이라며 한결같은 태도를 강조하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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