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세상, 잠시 멀리하셔도 좋습니다”
“스마트 세상, 잠시 멀리하셔도 좋습니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6.07.29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멍때리기 대회, 언플러깅 캠페인 등 디지털 거리두기 속속

[더피알=이윤주 기자] 24시간 끼고 사는 스마트기기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디지털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가지려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서 생겨나고 있다. (관련기사: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디지털 디톡스’)

4회째 열린 ‘멍때리기 대회’가 대표적이다. 이 대회는 참가자들이 1시간 30분 동안 넋을 놓은 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룬다. 심박수 등을 체크해 주변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가장 ‘멍을 잘 때린’ 사람이 1등이 된다.

▲ 멍때리기 대회에서 2등한 참가자가 멍하니 앉아 있다.

예술가 웁쓰양은 개인적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난 이후 뇌를 쉬게 해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다 이 대회를 기획했다. 흔히 멍하게 있거나 아무것도 않고 쉬는 것이 게으르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이는 옳지 않으며 오히려 삶에 여유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란 지적이다.

웁쓰양은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멍을 때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려서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뇌가 쉬고 싶어서 가만있는 건데 그것을 모두들 무시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립청소년 인터넷드림마을 역시 비슷한 취지로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위험군 청소년에게 디지털과 멀어지는 시간을 갖게 한다. 상담 치유는 물론 자연과 만나는 대안활동을 장려하며 캠프 참가일만큼 학교 수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디지털 해방 움직임이 국내에서 이제 걸음마 단계지만 서구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뉴욕 비영리 시민단체 리부트(Reboot)는 2011년부터 매년 하루를 정해 NDU(National Day of Unplugging)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언플러깅 운동에 동참한 두 명의 참가자가 '나는 자기 위해 플러그를 뽑는다'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 nationaldayofunplugging.com
24시간 동안 모든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뽑고 생활하자는 운동이다. 그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언플러깅 서약에 서명하고 안식일을 선언한 채 휴식을 취하라고 권유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기 ‘난 OO를 위해 언플러깅한다(I unplug to OO)’라고 쓴 팻말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는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디지털 사회를 공부하기 위해,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등 그들이 동참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단기간 디지털과 멀어지는 캠프도 등장했다. 캠프 그라운디드(CAMP GROUNDED)는 어른들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다. 2박 3일간 참가자들은 자연에서 어울리고 활동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오직 아날로그 활동인 공예, 명상, 별보기, 만화책 만들기 등 50개 이상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연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몸속에 쌓인 디지털을 배출한다.

변화에 발맞춰 숙박업체도 디톡스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일부 호텔은 머무르는 동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숙박료를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특정한 방에는 아예 디지털 기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단절’ 아닌 ‘조절’

디지털 디톡스는 일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IT회사 대표들이 ‘디지털 기기 멀리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연설해 화제를 모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 2월 “페이스북에는 13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는 확고한 방침이 있다. 내가 페이스북의 방침을 깬다면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딸에게는 당분간 페북을 못쓰게 하겠다는 뜻을 암시했다. 이밖에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가끔씩 디지털 기기 없이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IT기업 직원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디지털 교육을 시작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디지털에 대한 과도한 몰입의 반대급부로 '디톡스'(해독) 움직임이 일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스마트폰 없이 사는 사람들 중 하나다. 일정은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적고, 외부 연락은 집 전화와 이메일로 한다. 다만 이러한 선택이 반(反)디지털 때문만은 아니다.

박 교수는 “디지털은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대상이지, 피해야 할 현상이 아니다”며 “디지털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복해야할 소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식개선과 제도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중독된 사람만 치료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 전체가 변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기기를 적게 쓰자는 움직임보다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디지털을 멀리하는 방법론보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조 교수는 “근대화된 과학기술의 풍요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많아져야 한다”며 “거부감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한발 더 나아가 풍요가 가져오는 위험, 불확실성, 통제의 어려움 등을 사회적으로 성찰할 때”라고 말했다.

디지털 디톡스가 확산되고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 디지털과 단절을 선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생활 전반에 디지털이 퍼져 나 혼자서만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디지털 사용량을 적절히 조절해 삶의 여유와의 균형추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디지털 자체는 죄가 없다. 이롭게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