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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김영란법 시행 이후 어느 기자의 하루
[IF] 김영란법 시행 이후 어느 기자의 하루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08.0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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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평준 접대’ 일반화…달라진 생활패턴, 적응 어렵기만 해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기자들의 접대문화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자 스킨십이 잦은 홍보팀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인데요. 현 상황을 바탕으로 김영란법 시행(9월 28일) 이후 벌어질 변화를 가상으로 꾸며봤습니다.

[더피알=문용필 기자] 2016년 10월 하순의 어느 날, A일보 산업부의 B기자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출입처인 C기업으로 향한다.

한 달 전에 비해 날씨는 다소 쌀쌀해졌지만 출근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다. 기사 마감 후 습관처럼 피우는 담배 한 개비의 맛도 그대로다.

그러나 생활패턴은 다소 달라졌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담당하는 기업 홍보담당자들과 고급음식점에서의 점심약속이 날이면 날마다 빽빽하게 잡혀있었지만 이제는 주변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자료사진. 뉴시스

지난달 말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홍보인들의 접대를 받을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3만원 이상의 가격을 초과한 식사는 할 수 없다. 이전에 홍보인들과 자주 드나들던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에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관련기사:김영란법 합헌에 술렁이는 홍보인들…“기자관계 어쩌나”)

더치페이를 하자니 습관이 들지 않아 영 어색하다. 하지만 제돈주고 가기는 부담스럽다. 자신이 몸담은 A일보가 나름 중견 축에 속하는 언론사이기는 하지만 B기자도 결국 월급봉투에 울고 웃는 샐러리맨이다. 기자와 홍보인의 만남이 끊이지 않았던 종로의 한 고급음식점은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B기자, 오늘 점심은 일식 어때”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D부장은 가까운 식당 가자는 말을 하기가 민망한 눈치다.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몇몇 기업들이 홍보비를 삭감했다는 이야기가 들린 지는 오래됐다.

아내에게도 “비싼 선물 받지 말라” 단도리

그렇지만 기자와 홍보인의 만남은 단순한 접대 이상의 정보교환의 장이 아닌가. 가용금액이 줄었다고 안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은 싸고 맛있기로 소문난 백반집을 찾는다. 다만 시끌시끌한 탓에 내밀한 정보교환은 인근의 조용한 커피전문점에서 이뤄진다. 점심시간을 피해 차 한잔으로 때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사 홍보예산이 작아 평소 기자들에게 비싼 밥을 사지 못하던 모 기업 홍보담당자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밝아졌다. 이제는 다른 기업도 자신보다 큰 규모의 접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사자리는 하향평준화 됐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고급 일식집이나 레스토랑을 드나들 때는 왠지 빚을 진 듯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부담이 덜하다. 어차피 내가 바꾸지 못하는 세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응하는 게 속 편하다.

요즘 동료기자들끼리 모이면 화두는 자연스럽게 김영란법이 된다. 다들 고충을 토로한다. “그때가 좋았어” 류의 쓸모없는 넋두리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이제는 밥 한번 잘못 먹거나 선물 한번 잘못 받으면 검찰조사를 받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내에게도 단도리를 해놨다. 김영란법은 기자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적용대상이다. 괜히 어디서 잘 모르고 비싼 선물 받지 말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결혼식 때 하객으로 줄을 잇던 홍보담당자와 대기업이 보낸 화환을 보며 으쓱했던 기억은 옛말이 됐다.

명절 때면 이어지는 선물택배를 보며 흐뭇해하던 아내는 이제 “기자 부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아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내 손으로 아내를 신고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술자리도 ‘내돈’으로…라운딩은 이제 그만

점심식사 뿐만이 아니다. 김영란법이 통과되기 이전에는 몰려드는 홍보인들과의 저녁 술 약속에 매일같이 ‘꽐라’가 됐다. 그러나 접대비 3만원 한도 내에서 갈수 있는 술집이 몇이나 될까. 자연히 이들과의 술자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것이 몇 년인데 하루아침에 술을 끊을 수 있겠는가. 기자에게 술은 필수덕목. B기자는 오늘도 동료들과 십시일반 쌈짓돈을 털어 단골 고기집으로 향한다.

안주는 주로 삼겹살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때는 돼지껍데기도 감지덕지다. 구제역이 퍼져 돼지고기 값이 비싸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나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술자리는 끝난다. ‘2차’ ‘3차’를 외치던 모습은 옛말이다.

그래도 다음 달 결혼을 앞둔 후배 E기자가 “아무리 신세가 처량해졌어도 선배는 축의금 넉넉히 받았잖아요”라고 항변할 때는 할 말이 없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받을 수 있는 축의금은 10만원이 최대한도다. 그나마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은지 출입처마다 열심히 청첩장을 돌린다.

동기이자 모 정부부처에 출입하는 정치부 F기자는 그곳 홍보담당자로부터 “우리가 공무원윤리강령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이제 실감하겠느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 헛웃음만 지었다고 말하는 동기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

데스크를 보는 G부장은 골프를 끊었다. 기업 홍보임원과 초원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이따금씩 스윙자세를 연습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주말마다 등산가는 것으로 취미를 바꾼 모양이다. 저러다 언젠가 골프채를 팔지 싶다.

달라진 세상 공기, 이제는 김영란법 시대

김영란법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이도 있다. 1년 선배인 H기자다. 원래부터 접대 받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게다가 체질 탓에 술도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필력은 좋아 아는 홍보담당자들이 “밥 한번 먹자”고 몇 번이고 요청할 때는 마지못해 그러더라도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던 사람이다. 예전에는 “저 선배는 왜 저렇게 고지식하냐” “기업 담당자들과 술자리 한번 안하고 어떻게 정보를 따겠느냐” “지가 무슨 청백리인줄 아느냐”고 비웃으며 뒷담화를 했지만 지금은 문제없이 적응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김영란법 시대에 적응하는 사람은 또 있다. 지난달 막 수습딱지를 뗀 I기자다. 과거의 관행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그런데 홍보담당자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B기자도 할 말이 없다. 자신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기본적인 취재요령을 알려주고 알아서 잘 하라는 충고밖에.

양주가 아닌 소맥폭탄주 몇 잔에 취기를 느끼면서도 B기자는 다시금 달라진 세상의 공기를 실감하고 막차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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